[데스크칼럼]
창작자나 예술가가 다른 창작자나 예술가를 비판하는 것은 금기다. 그게 본업도 아닐뿐더러 예의도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 음식점 주인도 옆 집 음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게 상도의다.
작품이나 음식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평하는 것은 만든 사람의 몫이 아니다. 소비자 몫이다. 또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라고 비평가라는 것도 있다. 만든 사람이 비판이나 비평에 참여하는 순간 혼란은 불가피해진다.
간혹 예외는 있다. 작품이 정치 사회문제로 비화하는 경우다. 최근 논란이 됐던 ‘디워 현상’이 대표적이다. ‘디워 현상’은 단순한 작품론이 아니라 영화란 무엇이고 영화에 대한 대중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인 이슈로 발전한 경우다. 그럴 때 비판과 비평은 유의미한 담론을 만들어 낸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된 기사만 잠깐 훑어보자.
정원관은 “가수는 얼굴이 잘생겼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수는 가수다워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룹 신화의 멤버 김동완도 “연기를 위해 가수를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더더밴드는 "외국곡 리메이크한 이벤트 가수도 가수냐"고 질타했다. 소찬휘는 "(가수가) 어떻게 자기 노래 가사를 잊을 수가 있냐"며 개탄스러워 했다.
체리필터는 “쉽게 돈 벌려는 리메이크가 가요계를 망친다”고 했고, 박강성은 “가수가 이벤트화 되는 건 광대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심지어 배우인 김자옥까지 나서서 "거기(거액이 들어간 뮤직비디오)에 쓸 돈이 있으면 새롭게 곡이나 좀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요즘 어디서 많이 들었다 싶으면 다 리메이크 곡이더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비판은 매우 중요한 사안들이다.
노래보다 얼굴을 팔려는 풍토와 그런 가수들, 창작의 고통은 외면하고 손쉽게 남의 노래를 적당히 바꿔 부르는 분위기와 그런 가수들, 노래보다 이벤트로 유명해지려는 추세와 그런 가수들이 적잖은 게 사실로 보인다. 그래서 “요즘엔 살 만한 음반이 없다”는 소비자의 불만에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비판이 전혀 준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비판의 주체는 있지만 비판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비판 받을 대상은 분명히 실존한다. 그런데 대개 그 대상은 ‘요즘 가수들’이나 ‘후배 가수들’로 표현될 뿐이다. 그것은 분명히 있으나 없는 것과 같다. 사실 그 비판에 자유로울 가수가 많지 않을 텐데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이유가 그러한 까닭이다.
그래서 이런 비판은 공자님 말씀처럼 대개 옳아 보이지만, 공허하다. 분명히 비판이 가해졌는데도 아무런 논쟁도 일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수들은 왜 공허한 비판을 계속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두 가지 뿐이다.
먼저 비판이 공허한 일이라 하더라도 순간순간 발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가요계 풍토가 심하게 망가졌다는 방증이다. 비판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은 가수들 또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또 하나 이유는 비록 공허하지만 비판을 통해 그런 가요계의 풍토에서 자신을 구별 지으려는 생각이 있었을 수 있다. 그것은 일종의 마케팅이다. 온통 검지만 “나는 하얗다”는 선언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또렷한 철학을 드러내며 지속적으로 가요계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놓지 않고 담론을 주도하는 신해철은 좀 특별하다. 적어도 그의 쓴 소리는 신해철이라는 이미지와 분리되지 않는 집요함을 갖기 때문이다.
[사진: 쓴소리로 가요계 담론을 주도하는 신해철]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