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영화 <괴물>은 제목 그대로 한국영화계에 괴물처럼 등장해 수많은 기록들을 세웠다. 2006년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였던 <괴물>은 현지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한껏 기대를 높였다. 그리고 2006년 7월 극장에 간판을 올린 후 불과 40일 남짓만에 1천2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흥행관련 모든 기록을 경신했다. 결국 1천300만 관객이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남긴 <괴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국영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됐다.

한강시민공원에서 매점을 하며 살아가는 박희봉(변희봉 분). 예순에 가까운 그는 자식들 건사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그는 삼 남매의 아버지이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다. 둘째 아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대학에 보냈고, 딸은 전도유망한 양궁선수로 키웠다. 그러나 첫째인 강두(송강호 분)가 문제였다. 다른 자식들에 비해 야물지 못하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강두. 희봉은 강두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아버지가 하는 매점에서 일을 거들어주고 있는 강두. 그는 매사에 별 열의가 없다. 손님에게 갖자줘야 할 오징어의 뒷다리를 슬쩍 뜯어먹기도 하는 그는 아버지에게 눈칫밥을 얻어먹기 일쑤다. 하지만 강두는 개의치 않는다.
강두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 현서(고아성 분)가 있다. 중학생인 현서는 똑똑하고 속이 깊은 딸이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아온 아빠를 부끄러워 할 만도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강두는 그런 딸에게 휴대폰을 선물하기 위해 틈틈이 잔돈을 모으며 행복해 한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 괴물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그만큼 풍부한 은유와 상징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괴물>의 관람 포인트를 CG로 창조해낸 괴물 자체에 두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봉준호 감독의 사회비판과 풍자가 <살인의 추억>보다 훨씬 직설적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한다. 그런 평가들의 한편에는 <괴물>이 반미영화가 아닌가 하는 시선도 있다.
반미 영화나 괴수 영화보다 그저 재미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라고 보는 이도 있다. 사실 <괴물>은 웬만한 코미디 영화보다 더 웃음보를 자극한다. 영화 전반의 합동 분향소 장면은 희봉 가족들의 난장판으로 인해 슬퍼야 할 분위기가 오히려 웃음을 참아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한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은 영화 곳곳에 웃음을 숨겨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괴물>의 CG나 혹은 봉 감독의 풍자나 블랙 코미디에서 비롯된 웃음이 아니다. 영화 속의 두 아버지 희봉과 강두의 가족에 대한 눈빛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괴물에 맞서는 한 가족의 고군분투
영화 속에서 희봉은 강두를 보며 아들의 모자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어린 시절 강두를 키우다 사고가 나서 똑똑했던 아이가 그 이후부터 달라졌다고. 첫째 아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젊은 날에 죄책감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는 자식들보다 배우지 못했고 세상물정에 어두웠다. 희봉은 공무원들이 하는 말이라면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의 정당치 못한 요구에도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둘째인 남일(박해일 분)이 욱하는 성질에 공무원들에게 대들려 하면 아들을 제지하며 대신 사과했다.
한 평생 가진 것 없는 소시민으로 살아온 희봉에게 권력을 지닌 자들은 두렵기만 했다. 행여 그들이 자기의 자식들에게 해코지를 할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봉은 세 남매의 아버지이자 손녀를 둔 할아버지였다. 그는 손녀를 구하기 위해 평생 모은 것을 모두 다 내놓는다. 늙고 지친 몸이지만 개의치 않고 손녀를 찾기 위해 식구들을 독려한다. 비록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지 못하는 한 없이 약한 아버지였지만 희봉은 마지막 순간에도 가족들에게 의연한 모습으로 손녀를 납치해간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강두 역시 마찬가지다. 병원에 감금되어 당국의 음모에 휘말릴 때 생전 알아듣지 못한 영어 대화의 의미를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은 딸을 구하기 위한 집념 때문이다. 오직 딸을 구하기 위해 강두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괴물 앞에 두려움 없이 맞선다. 자신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다. 영화가 전개 될수록 강두의 눈빛은 살아나고 독기가 서린다. 강두는 약했지만 아버지는 강했던 것이다.
사투 속에 그려진 가족의 사랑
희봉과 강두는 영화 속에서 결코 멋있게 보이지 않는다.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손녀와 딸을 찾기 위해 빗속의 한강변을 뛰어다닌다. 그들을 도와주는 이들도 없다. 오직 가족의 힘으로만 괴물과 맞서 싸워야 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아버지로 성장하는 강두에 대한 영화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영화 초입 한강둔치의 매점에서 풀린 눈으로 잠을 자고 있던 강두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초반과 다른 눈빛으로 눈 내리는 한강을 응시한다. 강두가 아버지로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봉 감독은 말한다.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희봉과 강두는 둘 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강해져간다. 변변치 못한 자신들이지만 가족을 지키고자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 아버지가 그렇게 강해져 가는 과정이 <괴물>이 여타 SF 괴수영화와 차별화된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 구조가 <괴물>의 작품성의 근간을 이뤘다.

영화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준다
한국영화 역대흥행최고작답게 3장의 디스크로 나온 <괴물> DVD에는 풍성하고 다양한 부가영상들이 가득 담겨있다. 이를 통해 영화 <괴물> 제작에 대한 궁금증과 개봉 후 논란이 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볼 수 있다.
본편 디스크에 수록된 세개의 코멘터리 가운데 봉 감독이 단독으로 참여한 감독 코멘터리에서는 <괴물>개봉 이후 일어났던 몇 가지 논란에 대해 확실한 입장을 밝힌다. 그중에서 괴물의 모습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모방했다는 논란은 한 마디로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한다. 1년3개월 간 괴물을 디자인한 장희철씨의 모습을 옆에서 봤던 봉 감독은 만약 괴물의 모습이 일본 카피본이라면 판타스틱 영화제로 손꼽히는 시체스영화제에서 과연 장희철씨에게 상을 주었겠느냐고 반문한다.
봉 감독은 <괴물>에서 등장하는 소품 가운데 PPL 방식으로 협찬 받은 것을 없다고 강조하며 현장에서 소품팀과 미술팀이 가져온 물품들이라고 말한다. 개봉 후 몇 몇의 제품들이 영화의 인기를 탔지만 해당 회사로부터 연락이 없었다고.
또한 영화 촬영에 협조를 해주지 않은 특정 통신업체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개봉 후 논란이 되었던 ‘반미영화’라는 규정에 대해 특정 장면에서 이라크 침공 등 미국의 현재 모습을 풍자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었음을 밝힌다. 특히 바이러스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미군의 모습은 미국의 이라크 전 침공에 대한 비판이었음을 명백히 한다.
봉 감독과 송강호, 배두나, 박해일이 참여한 감독-배우 코멘터리를 듣다보면 출연 배우들이 실제 가족처럼 영화 촬영에 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배우와 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들이 몰입하는 바람에 후반에 들어갈수록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듀서와 미술감독 및 조명, 촬영감독이 참여한 스태프 코멘터리는 영화를 찍으며 현장 스태프들이 겪었던 여러 어려운 점과 이를 해결했던 방법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간다.
이들의 음성해설 중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전트 옐로우’라고 뿌려진 분말제는 다름 아닌 황토분말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물 속에 빠진 송강호가 사실 수영을 못해 밑에서 세 명의 잠수부들의 그의 발을 받치고 있었다는 것. 괴물이 한강 둔치에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당시 현장에 있던 900여대의 주차된 차들이 영화를 위해 모두 섭외했다는 사실 등은 현장 스태프들의 노고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봉감독은 아예 '봉준호 사과합니다'라는 부가영상을 따로 삽입해 현장 스태프들과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동시에 전한다.

최고 흥행 영화에 걸맞는 완성도
약 400여분 간의 부가영상은 그 자체만으로 완성도를 가졌다. 부가영상 특유의 저렴한(?)화질과 음질도 많이 개선됐다. 본편은 색보정을 통해 극장에서 봤을 때보다 화질의 선명도가 더 좋아졌다. 전반적으로 환해진 느낌이며 인물들의 윤곽선이 보다 뚜렷해지고 괴물의 질감 또한 훨씬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6.1EX와 dts로 녹음된 음질 또한 만족스럽다. 극장에서는 상영 초반 부 대사가 음향과 사운드 스코어에 먹히는 느낌이었지만 DVD에서는 그런 부문이 개선됐다. 이 밖에 시각,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자막과 해설 또한 의미 있게 다가온다.
또한 DVD를 제작한 스태프들의 크레딧을 따로 넣어준 것 역시 인상적이다. 애초 <괴물>은 제작 전부터 DVD에 들어갈 구성을 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타 타이틀 보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양질의 부가영상을 자랑한다. 이런 <괴물> DVD가 영화 개봉 당시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에 밀려 위기상황이었던 한국영화계에 반격의 홈런포를 날린 것처럼 침체된 국내 DVD 시장에도 활력을 불어 넣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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