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스캐너 다클리>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토탈 리콜><마이너리티 리포트><페이첵><임포스터> 등의 원작자로 유명한 필립 K. 딕이 자신의 마약 중독 경험을 바탕으로 1977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비포 선셋>의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필립 K. 딕은 자신의 유명세에 비해 꽤 많은 시간을 불안정한 상태로 보내게 되는데, 1960년대는 생활을 위해 하루 60페이지씩 글을 쓰느라 계속 복용하던 각성제 때문에 심각한 신경쇠약에 걸린다. 이 와중에도 그의 문학적 성과는 더욱 빛을 발하여 이후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는 <높은 성의 사나이>로 휴고상을 탄다.
하지만 과거 그의 각성제 중독 경험은 더욱 심각해져서 마약에도 손을 대기 시작해 급기야 마약 중독자의 길을 걷는다. 게다가 1971년 캘리포니아 그의 집이 CIA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습격을 받자, 안전에 대한 편집증에 시달리게 된다. 더불어 계속되는 협박전화에 시달려 1973년에는 캐나다로 피신을 하고,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과 뱅쿠버 SF컨벤션에서 유명한 '인조인간과 인류'라는 강의를 한다.
이때에 와서야 그는 불안정한 시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되는데, 그의 유일한 자전적 소설 '스캐너 다클리'에서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안정했던 바로 그 마약 중독 시기의 경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1982년 필립 K. 딕이 사망한 후, 미국에서 페이퍼백으로 출간된 과학소설을 대상으로 매년 수여되는 '필립 K. 딕 기념상'이 제정되었다. 아쉽게도 소설 <스캐너 다클리>는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못한 작품이다.

<스캐너 다클리>는 실사로 영화를 촬영한 후에 로토스코핑(실사로 촬영된 움직임을 바탕으로 덧그려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활용해 프레임 단위로 애니메이션 장면을 덧그려 작품 특유의 몽환적이며 현실적인 분위기를 표현해 냈다. 감독은 이전에도 <웨이킹 라이프>를 통해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전미 비평가 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기법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이중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데 <스캐너 다클리>에 이르러서는 보다 세밀하고 정교해져 배우의 표정이나 동작이 보다 잘 살아난다.
애니메이션 기법 외에도 호화 출연진을 자랑하는데,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를 중심으로, <가위손>의 위노나 라이더, <래리 플린트>의 우디 해럴슨, <굿나잇 앤 굿 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이 연기대결을 펼친다.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극장개봉을 생략하고 DVD로 바로 발매된 것이 아쉽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7년이 지난 시점이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애너하임.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 자신의 외모와 의상을 시시각각으로 변화시키는 스크램블 옷을 입은 언더커버 경찰인 프레드는 위장임무를 수행하다가 ‘서브스텐스 D’라는 약물에 중독된 요원 중 한 명이다.
이 약물은 복용 시에 자아의 영혼과 인성을 변화시키며, 뇌세포를 파괴하는 치명적인 증상을 가진 약물이다. 프레드는 이 약물의 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평소에는 첩보요원 프레드지만, 서브스텐스 D로 인해 악명 높은 마약딜러 밥이라는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같은 또 다른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동료들과 함께 밥의 체포 작전을 계획하게 된 프레드는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을 알게 된 후에 엄청난 정신적 혼란을 겪게 된다. 과연 프레드를 그렇게 몰아간 진실은 무엇일까.

필립 K. 딕의 자전적 이야기를 녹여낸 이 영화에서 링클레이터 감독은 특유의 애니메이션 기술 및 각본, 연출과 함께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어떠한 과장이나 허세 없이 담담하게 바라보며, 몽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와 마약중독자들이 우글대는 암울한 세계가 서서히 겹치면서 그 경계선이 흐릿해지고, 미래를 통해 현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모든 영상을 디지털로 제작한 만큼 화질은 흐트러짐 없이 깨끗하고 색감은 몽환적인 현실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특히 로토스코핑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특유의 부드럽고 세밀한, 현실감 넘치는 움직임이 잘 살아있다.
사운드 역시 만족스럽게 다가온다. 돌비 디지털 5.1로 제공되는 사운드 트랙은 비교적 채널의 활용이 적은 편이지만 상황에 따라 확실한 방향성을 가지며, 수다스런 배우들의 대사도 명확하게 전달된다. 또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이 묘하게 어우러져 몽환적인 현실감을 자아낸다.
비록 1장의 구성이지만 다양한 부가영상을 수록한 <스캐너 다클리> DVD에서는 필립 K. 딕의 작품세계와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감독과 키아누 리브스, 프로듀서인 토미 팔로타, 필립 K. 딕의 딸인 이사 딕 해켓, 필립 K. 딕의 연구자이면서 자문역할을 담당했던 조나단 레덤이 함께한 코멘터리가 담겨있어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1977년 당시 필립 K. 딕의 인터뷰를 담은 메이킹 필름과 애니메이션 후반작업과정을 기록한 다큐 등이 수록되어 알찬 구성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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