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국가에서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입니다.
무슬림들은 오직 알라만이 미래의 일을 알고 주관한다고 믿고 있기에 이 표현은 다분히 종교적인 의미를 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듣기에 따라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기도 합니다. 아랍인들은 시간과 약속 개념이 비교적 약한 편인데, 약속을 못 지키거나 시간을 어길 때 이 표현이 책임 회피나 핑계의 수단으로 외국인들에게는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일 만나자, 인샬라"라고 말하면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21일 오전 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알 샤밥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2차전을 치른 울산 현대도 '인샬라'라는 말의 의미를 절감했습니다.

경기 전날 울산 현대와 알 샤밥 구단 관계자들 간의 팀 미팅 시간에 경기 공인구 문제를 놓고 한바탕 실강이가 있었습니다. 대회 주관사 AFC가 양팀이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공을 실제 경기에서 사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울산 측은 "한번도 본적도 없는 공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느냐. 8강 1차전 때 사용했던 공을 쓰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항의했고, 알 샤밥 측은 한술 더 떠 대회 예선전 때 사용했던 공을 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양 측의 의견을 들은 AFC는 예정대로 이번에 새로 사용하는 공을 실제 경기에서 쓰겠다고 밝혔고, 울산 관계자는 경기 직전 이 사실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알 샤밥 측에서 사용하자고 주장했던 공이 실제 경기에서 쓰이는 모습을 본 울산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울산 측은 AFC와 알 샤밥에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전날 양팀 관계자와 AFC가 합의한 사항이 '신의 뜻에 따라' 다음날 갑자기 뒤바뀐 황당한 경우였습니다.
울산과 알 샤밥의 맞대결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한국 교민들도 경기 시작 전까지 입장 여부를 놓고 혼란을 겪었습니다.
경기 전날 팀 미팅 시간에 울산은 "한국 여성들도 경기장에 들어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알 샤밥 측은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원래 사우디에서 축구 경기장은 금녀의 구역. 국제 경기에서 예외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알 샤밥은 이를 허락치 않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알 샤밥과 경기장 관계자들은 막상 경기 당일이 되고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여성들의 입장을 허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가 돌연 번복한 뒤 다시 한번 입장을 바꿨습니다.
주로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한국 교민들은 경기장에 들어올 뜻을 접었다가 부랴 부랴 경기장으로 달려오는 웃지 못할 촌극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보다는 신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사우디에서 한국과의 문화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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