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 영화와 한국 영화를 가리지 않고 극장에서 관람하던 조희영 교수는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를 접했다. 그때까지 보아온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와 낯선 표현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영화라는 매체에 한층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언젠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생각은 영어영문학 전공에 이어 한국영화아카데미 프로듀싱 과정으로 이어졌다. 이후 영화 편성 및 투자 현장을 경험한 그녀는 연구와 교육을 통해 영상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그녀의 이력에는 영상 산업의 여러 층위가 겹쳐 있다. CGV에서 관객과 작품이 만나는 상영과 편성을 경험했으며, 영화 투자 현장에서는 시나리오와 제작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후 연구자로 돌아와 현재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콘텐츠 기획·정책·비즈니스를 가르치고 있다. 기획부터 투자, 마케팅, 상영까지 한 번씩 거친 경험은 작품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폭넓게 바라보는 토대가 되었다.
조희영 교수는 영상을 “미학과 경제학이 함께 작동하는 매체”라고 말한다. 한 쇼트와 다음 쇼트가 충돌하면서 생기는 쾌감과 감동은 영상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흥행 가능성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인간미가 있으면서도, 속칭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콘텐츠”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다시 말해, 영화의 구조와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정확히 맞물릴 때 영상은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는 생각이다.

이 관점은 그녀의 주요 연구 주제인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으로도 이어진다. 하나의 원작을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등으로 단순히 옮겼다고 해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매체마다 이야기를 복제하는 대신 각기 다른 서사 조각을 더하고, 관객이 여러 작품을 경험하며 더 넓은 이야기 세계를 발견하도록 해야 진정한 트랜스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향유자가 각 매체를 함께 향유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만족도도 높아져야 합니다.”라고 조희영 교수는 강조했다. 또한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우수논문 학술상에 선정되기도 한 북미 드라마 〈히어로즈〉 유니버스 연구에서 조희영 교수는 웹코믹스가 드라마만으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인물의 과거와 심리, 이야기의 빈틈을 채우는 방식을 살폈다. 본편의 빈자리를 부가 콘텐츠로 메우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이 여러 매체를 오가며 인물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녀는 이 사례가 한국 콘텐츠 산업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고 본다. 여러 매체를 활용하는 일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 매체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관객에게 무엇을 더해줄 것인지 설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마블 시리즈의 성공과 이후의 부침을 함께 살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마블은 다양한 캐릭터와 사건을 각 매체에 맞게 배치하고, 흩어진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을 마련했다. 또한 관객이 방대한 세계관을 따라갈 수 있도록 콘텐츠의 수와 공개 시기, 이야기의 수렴점을 조절했다. 그러나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면, 관객이 인물과 관계를 충분히 경험할 시간은 사라진다. 그녀는 “어떤 성공한 IP도 추락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향유자의 눈높이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IP의 규모보다 관객이 그 세계에 머물 이유를 만드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 영상산업의 가능성에 관해 조희영 교수는 지역성을 강조한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는 이유로 한국적인 이야기를 희석하기보다, 구체적인 지역성과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 만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객은 익숙한 이야기의 반복보다 “뻔하지 않으면서도 흡입력 있고 의외의 재미를 주는 이야기”를 원한다. 한국의 정서와 풍경이 낯설더라도 인물의 상처나 관계, 회복의 욕구가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면, 다른 문화권의 관객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조희영 교수는 특히 영상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창작자에게 기회를 나누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창작자뿐만 아니라 데뷔작과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는 감독, 신진 작가들이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이 위험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새로운 목소리는 선택받기 어려워진다. 조희영 교수는 시장의 선택만으로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정책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녀는 AI가 영상 산업을 위협하거나 구원할 단일한 해답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잘 활용한다면 제작비를 절감하여 소규모 제작자에게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제작비 절감과 빠른 생산만으로는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AI 도구를 익히는 동시에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는 창작자의 안목과,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며 의미를 읽어내는 관객의 리터러시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로 만들어진 영상 중 무엇이 좋은 콘텐츠인지, 지금부터 전문가와 대중이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희영 교수는 앞으로 2~3년이 한국 영상산업에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녀는 학계와 업계가 각자 변화에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실험하고 배우는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공모전과 산학협력 프로젝트 공모와 같은 시도들이 이러한 연결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기술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산업의 오래된 관성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동시에 기본적인 스토리텔링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대학원생에게 길러주고 싶은 능력은 작품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메시지를 찾아내는 통찰력이다. 텍스트를 읽는 힘은 오로지 연구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창작자와 배우, 투자자와 관객 사이에서 이야기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능력이 된다. 제작 방식이 달라지고 영상물이 쏟아지는 시대에도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묻는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희영 교수의 연구는 그 질문을 산업의 구조와 관객의 경험 속에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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