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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14> 보부상의 길, 십이령을 넘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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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52·53구간, 전곡리에서 두천리까지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열두 고개에 남은 사람들의 발자취

십이령(十二嶺)은 울진의 바닷가 장터와 봉화의 내륙 장터를 잇던 옛 고갯길이다. 울진장과 흥부장에서 거둔 소금과 미역, 어물이 이 길을 넘어 내성장과 춘양장으로 갔다. 바지게를 지고 이 길을 오가던 이들을 바지게꾼이라 불렀다. 지게를 괴어 놓고 선 채로 쉰다 하여 선질꾼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열두 고개를 넘어 봉화의 장터에 해산물을 내다 팔고, 돌아올 때는 조와 콩, 보리, 쌀 같은 곡물을 짊어졌다. 장날에 맞춰 고개를 넘는 일은 그들의 생계였고, 삶이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금강소나무(황장목) [사진=박성기 작가 ]

 

십이령 옛길의 울진 구간 일부는 오늘날 금강소나무숲길로 조성돼 있다. 2027년 전 구간 개통을 목표로 조성 중인 동서트레일의 52·53구간도 이 길을 따라간다. 길 위에 여러 이름이 붙었지만, 내게는 옛 선질꾼들의 이야기와 고단함이 서려 있는 '십이령길'이라는 이름이 한결 더 가깝다. 산허리를 한 굽이 돌아들면 길섶에 바지게를 받쳐 놓고 '가노 가노 언제 가노'를 부르던 사람들, 막걸리 한 사발에 고단함을 달래던 사람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전곡리 달맞이길의 시작. [사진=박성기 작가 ]

 

이 길을 걷기 위해 양원역 건너편 울진 전곡리에서 출발해 두천리로 향한다. 동서트레일 52·53구간을 이틀 동안 이어 걷는 여정이다. 첫날은 소광2리까지 13km다. 금강소나무숲길은 산림 보호를 위해 사전 예약과 숲해설가 동행을 원칙으로 한다. 이 길을 따라 깊은 산중에 묻힌 십이령 옛길을 더듬고, 궁궐의 건축재와 왕실의 관재로 쓰이던 황장목(黃腸木) 숲을 지난다. 고갯길과 숲을 오가며 살아온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는 길이다.

달을 마중하던 사람들의 길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철문을 열고 달맞이길을 시작하다 [사진=박성기 작가 ]

전곡리 마을회관에서 걸음을 시작한다. 마을 안쪽 낮은 지붕들 사이로 돌담이 이어진다. 길가의 해바라기는 고개를 떨구었고, 마을 뒤편에는 짙은 숲이 내려앉았다. 사과나무 과수원을 지나자 사람이 일군 땅이 끝나고 숲이 시작된다. 닫힌 철문을 열고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 달맞이길에 들어선다. 더 들어갈수록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마을은 멀어진다.

달맞이길. 이름이 곱다. 누군가는 고개 너머로 떠오르는 달을 마중하러 이 길을 걸었을까. 같은 산길이지만 걷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는 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이웃을 찾아가는 길이었으리라. 오늘 내가 걷는 길에는 그들이 남긴 이야기가 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달맞이길의 금강소나무의 무성한 솔잎. [사진=박성기 작가 ]

 

숲이 짙어진다. 활엽수 사이로 금강소나무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발밑에는 낙엽이 수북하다. 들어갈수록 사람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오래전 집과 밭이 있던 자리에도 나무가 들어섰다. 그러다 숲 한가운데서 옛 삶과 마주한다.

 

숲속에 오래된 집 한 채가 나타난다. 화전민이 살던 옛집의 형태를 일부 복원한 집이다. 나무를 엮고 흙을 발라 벽을 세웠다. 낮은 처마 아래로 들어가 안팎을 살펴본다. 살림살이는 사라지고, 안방에는 마을 공동 스피커와 오래된 고장난 텔레비전 한 대만 남아 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화전민 집. [사진=박성기 작가 ]

 

산중의 외딴집에 스피커와 텔레비전이 있다는 것이 뜻밖이다. 깊은 골짜기에도 바깥세상의 소식은 들려왔겠다. 저녁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지었을 테다. 바람결에 아궁이의 연기 냄새가 실려 오는 듯하다. 이들은 산비탈에 불을 놓아 밭을 일구고, 척박한 땅에서 거둔 곡식으로 추운 겨울을 견뎠다.

 

사람이 떠난 뒤 숲은 집에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처마 밑까지 풀과 나무가 자랐다. 집은 허물어져 가지만, 사람이 살았던 자취까지 지워지지는 않았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일본 입갈나무(낙엽송 )군락 [사진=박성기 작가 ]

 

집터를 지나 오르막으로 접어든다. 곧게 뻗은 나무들이 줄지어 섰다. 일본잎갈나무다. 흔히 낙엽송이라고 부른다. 금강소나무와는 달리 줄기들이 반듯하고 간격도 일정하다. 누군가 심어 가꾼 숲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이 깊은 산중에 낙엽송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일까.

 

그 까닭에 얽힌 이야기는 이튿날 두천리에서 들었다. 마을에 사는 장수봉 선생의 말이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산골의 화전민들이 마을을 떠났으며, 그 뒤 빈 밭과 집터에 낙엽송을 심었다는 것이다. 두천리의 옛 주막도 그 무렵 사라졌다고 한다. 실제로 1960년대 중반부터 산림 보호를 위한 화전 정리가 시작됐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뒤에는 안보를 이유로 산간 외딴집의 이주가 더해졌다. 오랫동안 산에 기대어 살아온 이들이 삶터를 떠나야 했던 시대였다.

 

눈앞의 낙엽송 숲도 그 시절에 심은 것일까. 장수봉 선생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무 사이를 바라본다. 나무들이 반듯하게 늘어선 자리에는 한때 밭이 있었고, 그 곁에는 사람이 살던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 집에 살던 이들에게 산은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삶을 일구던 터전이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오미산 전망대. [사진=박성기 작가 ]

 

오미산 전망대에 닿는다. 나무에 막혀 있던 시야가 한순간 열린다. 산 뒤에 또 산이다. 능선은 물결처럼 겹치고, 골짜기마다 숲이 깊다. 조금 전 지나온 화전민의 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일구었을 밭도, 오가던 길도 숲에 묻혔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한결같이 푸른 산이다. 그 속에 서로 다른 삶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세월을 버티고 선 산돌배나무

달맞이길 3.1km는 전망대에서 끝난다. 전곡리 고개를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한동안 숲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 앞이 환히 열리며 쌍전리 마을이 나타난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고랭지 배추밭. [사진=박성기 작가 ]

산자락 사이 너른 밭에 고랭지 배추가 빈틈없이 들어찼다. 비닐하우스 몇 동이 낮게 엎드려 있고, 시멘트 농로가 밭 가운데를 구불구불 가른다. 속이 단단히 찬 배추들이 가지런하다. 그 사이로 짓물러 주저앉은 포기도 더러 보인다. 산중에도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밭머리 주황색 지붕 집 곁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쌍전리 산돌배나무다. 1999년 지정 당시 수령은 약 250년으로 추정됐으며, 높이는 25m에 이른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산돌배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로 알려져 있다. 굵은 줄기에는 갈라짐을 막기 위한 듯 쇠띠가 둘려 있다. 사방으로 뻗어 늘어진 가지들은 쇠기둥 여럿에 기대어 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250년 된 산돌배나무. [사진=박성기 작가 ]

 

이 나무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가 소리를 내어 울었고, 돌배가 많이 열리는 해에는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나무의 울음으로 세상의 변고를 헤아리고, 열매로 한 해 농사를 점치던 사람들이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나무 한 그루에 빌었다.

 

이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오갔을까.

 

농로 가장자리에는 고마리가 희고 붉은 꽃을 피웠다. 그 사이로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섞였다. 발밑의 작은 꽃들이 산중의 가을을 붙잡고 있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맞은편 산비탈이 휑하게 드러난다.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그루터기만 점점이 남았다. 능선 가까이 소나무 몇 그루가 외로이 서 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자작나무. [사진=박성기 작가 ]

 

다시 숲으로 든다. 이번에는 자작나무다. 흰 줄기들이 비스듬히 서서 서로 기대는 듯하다. 하얀 껍질에 남은 검은 자국들은 눈동자처럼 보인다. 한참 들여다보니 나무들도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숲은 다시 어두워진다. 굵은 나무줄기 사이로 앞서가는 일행의 등이 보였다가 사라진다. 길옆에는 쓰러진 나무 한 그루가 버섯과 균사에 덮인 채 썩어간다. 그 곁으로 어린나무가 자란다. 죽은 나무가 흙으로 돌아가는 동안 새로운 나무는 하늘을 향한다.

큰넓재, 발자국이 쌓여 깊어진 고개

고개가 가까워지며 길의 모습이 달라진다. 양쪽으로 흙 둔덕이 솟고 그 사이로 낙엽 쌓인 길이 깊게 파였다. 마치 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오랜 세월 사람과 짐승이 오가며 다져놓은 길일까. 큰넓재 아래 비탈에는 참당귀가 자줏빛 꽃송이를 둥글게 피웠다. 주변의 흰 꽃무리 사이에서 유난히 선명하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큰넓재의 참당귀. [사진=박성기 작가 ]

 

이윽고 큰넓재에 오른다. 고갯마루에는 너와를 얹은 작은 쉼터가 있다. 굵은 통나무 기둥 넷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너와 위에는 이끼가 앉고 솔잎이 쌓였다. 기둥 하나에 주먹만 한 구멍이 패어 있다. 딱따구리가 다녀간 흔적이다.

 

통나무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이 고개를 넘던 선질꾼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으리라. 바지게를 받쳐 놓고 굽었던 허리를 펴며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겠다. 그러나 오래 쉴 수는 없었으리라. 해가 지기 전에 닿아야 할 주막이 있고, 장날에 맞춰 도착해야 할 장터가 있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기둥에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이 있다. [사진=박성기 작가 ]

 

고갯마루에 바람이 지난다. 쓰러진 나무 둥치에는 구름버섯이 빼곡하다. 잿빛 부채를 겹겹이 펼쳐놓은 모습이다. 오래전 이 길을 오가던 사람들의 발소리는 사라지고, 새소리만 남았다.

한나무재를 넘어 주막거리로

한나무재에 닿는다. 나무 팻말에 '주막 종점 4.3km'라고 새겨져 있다. 고개 이름보다 '주막'이라는 두 글자에 먼저 눈이 간다. 산을 넘는 길손에게 주막은 술과 밥을 파는 곳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짐을 내려놓는 곳이었고, 장터 소식이 오가는 곳이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한나무재의 푯말. [사진=박성기 작가 ]

 

임도를 가로질러 숲으로 든다. 다람쥐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나무줄기를 타고 쏜살같이 달아난다. 고사리 잎이 무성한 비탈을 지나며 길은 내리막으로 바뀐다. 숲이 성글어지고 들녘이 나타난다. 밭에는 수확하지 않은 옥수숫대가 누렇게 말라 서 있고, 그 아래 논에서는 벼가 고개를 숙였다. 바닷가에서 가져온 소금과 미역이 산 너머 장터에서 곡식과 옷감으로 바뀌던 시절이 있었다. 서로 다른 땅에서 난 물산들이 이 깊은 산길을 오갔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1옥수숫대. [사진=박성기 작가 ]

 

마을 길로 들어선다. 길가 비탈에는 풀을 베어낸 자리가 드러나 있고, 건너편에는 비닐하우스가 줄지어 섰다. '어서 오십시오. 소광2리입니다.' 나무 팻말 하나가 먼 길을 걸어온 길손을 맞는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소광리 금강송팬션. [사진=박성기 작가 ]

 

첫날 길의 종착지인 금강송펜션에 이른다. 펜션 주변은 십이령 옛길의 산중 주막거리였을 것이다. 늦게 닿은 이는 봉놋방 한쪽에 자리를 잡고, 먼저 온 이들은 장터에서 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으리라. 어느 고개가 험한지, 어느 장에 물건값이 좋은지, 그런 말들이 밤늦도록 오갔을 것이다.

 

내일은 화전민 옛길을 둘러보고 저진터재와 너삼밭재, 샛재와 바릿재를 넘는다. 선질꾼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 길을 넘었다. 나는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찾아 그 길을 따라 걷는다.

 

주막의 불빛을 찾아 모여들던 사람들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이제 그 자리에는 펜션이 서 있다. 산속 마을에 어둠이 내린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금강소나무팬션 앞 안내푯말 [사진=박성기 작가 ]

보부상의 길, 십이령을 넘다② 편으로 이어집니다

12령을 걷는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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