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야구 세계화'의 가능성이 열리면서 프로야구계도 도핑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지난 3월 개최된 WBC에서 한국대표팀은 강호들을 연파하면서 4강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전 국민들은 연일 계속되는 승전보에 열광하면서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하지만 당시 열광의 함성에 파묻혀 크게 주목받지 않은 사건이 있다. WBC사무국이 한국대표선수중 2명을 임의추출하여 실시한 도핑테스트에서 박명환선수(두산)가 금지약물 양성반응 판정을 받은 일이다.
그로 인해 박명환 선수는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은 물론, 2년간 국제 경기 출장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은 국내 프로야구계에 금지약물 문제가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니고, 선수 개개인에게도 '남의 일'이 아닐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일깨워준 교훈을 남겼다.
◆ 야구는 그 동안 '도핑 테스트 무풍지대'
금지약물 복용 여부를 적발하는 도핑테스트는 그동안 아마추어 스포츠에서는 필수 사항으로 통했다. 특히 올림픽을 주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도핑과의 전쟁'을 벌이면서 금지약물 복용자를 적발해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100미터 결승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했던 벤 존슨(캐나다)은 불과 하루 만에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들통나면서 금메달을 박탈당한 적 있다.
이처럼 적극적인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스포츠계는 그 동안 금지약물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 왔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이번 시즌부터 금지 약물 추방에 적극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금지약물 양성반응이 세 번 계속될 경우 리그에서 완전 퇴출시키는 '삼진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
자크 로게 IOC 위원장도 최근 야구가 다시 2016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도핑 기준 강화'를 내세웠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프로야구계에서 '도핑테스트'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실행을 위한 룰도 빠른 속도로 정해지고 있는 추세다. 세계화로 나아가는 한국 프로야구도 더 이상 금지약물의 양성 여부를 알아보는 '도핑테스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명분이 없어진 셈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이같은 환경변화에 대응하고 나섰다. 이미 지난해 이사회에서 도핑테스트를 올시즌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데 이어 내년부터는 정식으로 제재에 나서기로 하는 등 '모션'은 취하고 있다. 그러나 '모션' 이후 '공'은 아직 던지지 않고 있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 도핑(Doping)이란? 도핑이란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각종 약물을 복용하거나 금지된 방법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WADA가 규정한 금지 약물 복용 여부를 밝히는 것을 도핑테스트라고 한다. 스포츠 종목이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약물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근력이 순간적 혹은 지속적이냐에 따라 사용하는 약물의 종류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도핑문제가 결정적으로 제기된 것은 1952년 동계올림픽 때. 당시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탈의실에서 주사기와 알 수 없는 빈 앰플들이 발견되면서도 부터이다. 이후 수많은 선수들이 경기도중 쓰러지며 본격적인 문제로 거론된 도핑은 흥분제, 마약성 진통제 등에 불과했지만 매년 새로운 종류의 약물들이 쏟아졌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의 도핑위원회는 WADA에 새롭게 발견된 약물을 보고하며 정보를 공유, 금지약물 복용 선수를 찾아내고 있다. 한편 반도핑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금지약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채취한 시료에 금지약물이 양성반응을 일으키는 것 말고도 금지된 물질이나 방법을 사용하려는 의도, 반도핑 검사의 회피 등도 포함된다. ◆ 4년전 아시안게임 때 첫 거론 국내프로야구에서 도핑 테스트 도입 문제가 처음 논의된 것은 4년 전인 지난 2002년이었다. 당시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선발을 계기로 도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진갑용은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이 검출되자 후배에게 대표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일부러 소변 시료에 약물을 넣었다고 말했다가 파문이 일자 약물을 복용했다고 번복한 바 있다. 이후 도핑 문제는 또 다시 '남의 문제'로 치부됐다. 야구는 경험과 기술을 중요시하는 멘탈(mental) 스포츠인 만큼 단순히 파워와 스피드를 높이는 것만으로 별다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인식이 힘을 얻으면서 금지 약물 문제를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약물 종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효과 면에서도 단순히 근육을 키우는 것 뿐 아니라 인체 내에서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야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이 증명되고 있다. 프로야구가 6~7개월 동안 쉴 새 없이 지방을 오가는 장기 페넌트레이스라는 점에서 선수들은 체력적인 저하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성적이 곧 돈과 직결되는 프로선수들로선 약물은 쉽게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 되고 있다. 금지약물은 프로선수에게 부(富)와 명예의 길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윤리와 도덕을 위배해야 하는 치명적인 '독성'이 함께 배어 있다. 특히 장기간에 걸친 금지약물 중독은 선수로서의 생명은 물론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고 프로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KBO는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지만 도핑테스트 처벌 규정이 야구판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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