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국제 스포츠대회의 개회식은 어쩌면 가장 큰 runway(런웨이, 패션쇼 무대)다. 각국 선수단은 입장하는 순간 first impression(퍼스트 임프레션, 첫인상)으로 먼저 경쟁한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의 단복은 흰색을 바탕으로 푸른빛과 붉은빛이 자연스럽게 번지는 디자인이 눈에 띄었다. 핵심은 gradient(그레이디언트, 색이 단계적으로 변하는 효과)와 ombré(옴브레, 색이 서서히 번지듯 변화하는 효과)다.
![남자 카약 4인승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의 조광희, 김효빈, 장상원, 최민규 선수가 시상대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63012ba3e22883.jpg)
gradient(그레이디언트)가 색이 단계적으로 변화하는 전체적인 효과를 뜻한다면, 패션에서 ombré(옴브레)는 한 색이 다른 색으로 서서히 번져 가는 표현에 더 자주 쓰인다.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원래는 ‘그늘지게 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말하자면 gradient가 조금 더 기술적인 설명이라면, ombré는 조금 더 패션스러운 단어다.
태극의 청과 홍은 원래 뚜렷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맞물리지만, 이번 단복에서는 그 경계를 부드럽게 녹였다. "The colors don’t clash; they blend.(색은 부딪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섞인다.)"
clash(클래시, 충돌하다)는 색이 강하게 부딪치는 것을, blend(블렌드, 자연스럽게 섞이다)는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것을 뜻한다. 이런 흐름에는 seamless(심리스, 이음새 없이 매끄러운)라는 단어도 잘 어울린다. 색과 색 사이에 선을 긋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ombré야말로 꽤 seamless한 디자인이다.
그런데 아무리 seamless한 옷에도 가끔 seam(심, 솔기·이음새) 하나쯤은 생긴다.
출국 당시 야구대표팀 주장 노시환의 단복에 태극기가 upside down(업사이드 다운, 거꾸로) 인쇄된 일이 있었다. 제작 과정의 printing error(프린팅 에러, 인쇄 오류)였고 곧바로 교체됐다. 이런 경우 wardrobe malfunction(워드로브 멜펑션, 의상 사고)보다는 uniform mishap(유니폼 미스햅, 유니폼과 관련된 작은 사고) 정도가 더 자연스럽다.
패션에서 detail(디테일, 세부 요소)은 작지만, 태극기 방향처럼 절대 작지 않은 것도 있다.
개최국 일본의 진행요원 의상도 화제가 됐다. 기모노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인 의상에 wrap skirt(랩 스커트, 몸에 감아 입는 치마)를 겹쳐 입었는데, 일부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전통복을 떠올린다는 반응도 나왔다. 동아시아 의복 문화가 오랫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common roots(커먼 루츠, 공통의 뿌리)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대회가 끝나면 기록은 숫자로 남고, uniform(유니폼)은 장면으로 남는다. 꼭 gold(골드, 금색)여야만 빛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국기를 달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이름으로 뛰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특별하다. 대표팀 유니폼은 단순한 경기복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 번 입어볼 수 있는 옷이고,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이름보다 먼저 Korea(코리아, 대한민국)를 입는 옷이다.
서로 다른 종목, 서로 다른 선수, 서로 다른 시간이 Team Korea(팀 코리아)라는 하나의 색으로 번져 간다. 그래서 이번 나고야에서 가장 오래 남을 ombré(옴브레)는 청에서 홍으로 이어진 색의 변화가 아니라, 각자의 노력이 하나의 팀으로 스며든 그 과정인지도 모른다.
메달의 색은 달라도, 우리가 입은 이름은 하나다. Korea.
![남자 카약 4인승 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의 조광희, 김효빈, 장상원, 최민규 선수가 시상대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https://image.inews24.com/v1/1d33d3860ea3e4.jpg)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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