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광화문이 백자의 질감을 입고, 단단한 콜로세움이 분홍빛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분명 익숙한 건축물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AI 아티스트 최세훈은 바로 그 지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작업한다.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말도 안 돼’라고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해요. 그 경계 사이를 오가는 감정이 재미있습니다.”

최세훈 작가는 캐나다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삶의 방향이 흔들렸다. 다시 취업하기 위해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고민하던 중 AI로 생성한 건축 이미지를 접했다. 구조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이미지였다. 처음에는 취업을 위한 도구로 시작했으나, 작업이 쌓이면서 삶의 방향도 달라졌다.

처음 해외 갤러리에 포트폴리오를 보냈을 때, “AI가 무슨 예술이냐”는 반응도 돌아왔다. 하지만 그는 계속 문을 두드렸다. 202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작은 아트페어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고, 자신의 작품을 보며 웃고 행복해하는 관객들을 만났다. 작품을 구입한 한 관객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경험했다. 그 순간, 그의 예술관도 달라졌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사람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것도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작가 최세훈의 작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건축’이다. 그는 건축을 공부하며 건물의 형태뿐만 아니라 지형과 주변 환경, 빛의 방향, 구조와 재료를 함께 고려하는 법을 배웠다. AI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먼저 작품 속 세계의 분위기를 정하고, 어떤 건축과 구조가 존재하며 어떤 재료가 어울릴지를 하나씩 쌓아간다. 그는 이를 “층을 쌓듯, 레이어를 쌓듯” 작업한다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AI를 사용하면서도 오히려 절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화려한 이미지를 만들어도 구조적으로 전혀 성립하지 않거나 작품 전체의 논리에서 벗어나면 과감하게 버린다. 무한한 상상력을 AI가 확장한다면, 건축가로서 축적한 그의 감각은 그 상상을 다시 현실 쪽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작가 최세훈의 초현실적 세계에는 언제나 현실의 흔적이 남는다.
그가 오래된 건축물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광화문이나 콜로세움처럼 너무 익숙한 장소는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 속 배경이 된다. 그 안에 쌓인 역사와 기억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게 된다. 작가 최세훈은 여기에 전혀 다른 재료와 물성을 입혀 관객이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한국의 전통 건축을 다룰 때는 더욱 신중하다. 실제 건축물을 직접 찾아가 처마와 단청을 살펴보고, 사진과 자료를 꼼꼼히 조사한다. 재해석 과정에서 중국이나 일본 건축으로 오인될 가능성까지 면밀히 점검한다. 상상은 자유롭게 하되, 문화의 뿌리를 임의로 바꾸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 역시 화려함보다는 “정제되고 절제된 것”에 가깝다.

AI가 창작한 이미지를 과연 작가 자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입장은 분명하다. “화가에게 붓이 있다면, 저에게는 AI가 창작의 도구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만들고 버리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무엇을 남길지는 작가의 몫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거의 같아 보이는 이미지에서도 그는 차이를 감지하고,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 따라 한 장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질문은 ‘AI가 몇 퍼센트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이 어떻게 시각화되느냐라고 생각해요. 저는 내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더 깊이 고민하려고 합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시대이기에 그는 오히려 무엇을 만들지 않을 것인지도 고민한다. 기괴함이나 폭력성으로 순간적인 관심을 끄는 이미지보다, 사람의 생각을 열어 조금 더 밝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AI 콘텐츠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오랫동안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를 꾸준히 보여준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자신만의 소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아티스트 최세훈은 AI를 만나 “인생의 한계 자체가 없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향하는 곳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제 작품을 본 사람들이 자기 안에 있는 꿈을 시각화해 보는 상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AI가 수없이 많은 세계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최세훈은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오히려 한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선택하며,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AI가 아니다. AI라는 새로운 붓을 들고도 끝내 놓치지 않으려는 작가 자신의 시선이다. 오늘 10월 성수아트페어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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