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렇게 한이 맺힌 게 많아 '사생결단'을 보려는 걸까. 그래봤자, 어차피 인생이라는 게 고해(苦海)인 것을...
그러나 영화 '사생결단'은 이 고해 속에서도 생존의 욕망에 사로잡혀 정도 의리도 없이 허우적대는 인간군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마치 목을 축이러 물가로 나온 먹이감을 낚아채려고 일말의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비정한 악어들의 세계처럼 말이다. 그래서,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그리고 또 모순 투성이다.
대개 마약을 둘러싼 커넥션을 다룬 영화들의 이야기가 범죄자들간의 의리나 두뇌 싸움, 또는 이들을 멋지게 일망타진하는 형사들의 폼생폼사를 다루지만 '사생결단'은 이 같은 부류의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가 멀다. 이보다는 훨씬 메시지가 무겁다.
부산 유흥가를 배경으로 '뽕쟁이'들의 실상과 이들을 먹이감으로 전과만을 올리려는 국가권력의 상징인 검찰과 경찰 조직의 구린 속내와 거대한 권력 시스템의 악순환을 역동적인 카메라 앵글이 리얼하게 쫓는다.

영화를 보면 누가 악한이고 누가 선한 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최호 감독이 말했듯이 현실 사회의 '모순'이 이 영화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다.
'사생결단'은 마약중간 판매책(이상도 역)과 악질 형사(도진광)로 열연을 펼치는 류승범, 황정민이라는 두 배우를 내세워 흥행에 있어서 사생결단을 내려는 영화다. 그만큼 영화는 두 주연배우를 중심으로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영화의 배경은 97년 IMF 직후의 부산. 이상도는 부산에서 노른자위 구역을 관리하는 5년 경력의 마약 판매상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어린 시절 마약제조 전문가였던 삼촌의 심부름으로 마약 배달을 하면서 이 바닥에 흘러 들어왔다. 결국 삼촌(김희라 분) 때문에 어머니까지 잃은 후 그의 삶은 마약만큼이나 암울하고 갑갑하다. 이후로는 독종 아닌 독종이 됐다.
오직 마약 판매상의 거두인 장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도진광 경장. 그는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악어같은 형사다. 자신이 잡아넣은 상도를 이용해 전과를 올리고 또 이용해 먹고 잡아넣어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야말로 광기어린 야비한 형사다. 이번에도 장철을 잡기 위해 상도를 잔인하리만큼 집요하게 이용하고 끝내 버린다.
그러나 서로 죽이고 싶도록 미울 것 같은 두 사람은 마치 버디 영화의 주인공처럼 찰떡 호흡을 맞추며 장철에게 덫을 놓는다. 하지만 장철의 목을 죄어 가면 갈수록 일은 더욱 꼬이고 만다.
부산 항구에서의 라스트 신에서 두 사람은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결국 공동운명체의 끈을 놓고 마는 도 경장과 상도. 도 경장이 더 큰 권력의 메커니즘에 비애감을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을 걸고 사생결단을 내고 만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최호 감독은 2003년부터 2년 동안 부산 바닥을 헤집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만큼 부산은 제 3의 주인공이다. 덕분에 바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화면을 맛 볼 수 있다.
또한 8여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왕년의 액션 배우 김희라와 마약 중독자로 전락한 지영 역을 맡은 추자현의 몸을 아끼지 않는 노출 연기도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요소다. 황정민과 류승범이 선사하는 걸죽한 부산 사투리와 거친 뒷골목 말투도 귀를 간지럽힌다.
70년대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와 '야쿠자의 무덤'의 후카사쿠 긴지 감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최호 감독은 "마약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뤘지만 철저한 준비 덕에 오히려 부담은 없었다"며 "IMF 이후 격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모순이 부글부글 끓는 것을 목격했고, 이 속에서 자신의 욕망만을 쫓는 인간군상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사생결단'은 영화 시작 전 등장하는 인물이나 조직이 모두 허구라고 밝힌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제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느낌은 도대체 왜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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