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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11>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 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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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베기,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가는 길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 ⑮ 편에서 이어집니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진발리 호수 위의 요새, 아나누리

메스티아(Mestia)를 떠나 고리(Gori)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다시 짐을 꾸려 아라그비(Aragvi) 강을 따라 카즈베기(Kazbegi)로 향한다. 이 길은 오랫동안 코카서스 산맥을 넘던 상인과 순례자의 길이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이 병력과 물자를 옮기려 길을 넓히고 포장해 조지아 군사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가 되었다. 그 길을 따라 산맥 깊숙이 들어간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진바리 호수와 아나누리 요새. [사진=박성기 작가]

강은 대코카서스 산맥 남사면에서 시작해 여러 지류를 담으며 내려온다. 거슬러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강이 품을 넓힌다. 에메랄드빛 진발리(Zhinvali) 호수다. 산과 하늘, 구름까지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다.

호수 북쪽 물가에 아나누리(Ananuri) 요새가 있다. 성벽 안에는 17세기에 지은 성모승천 교회의 지붕이 우뚝하다. 안은 고요한데 요새 위쪽 도로변 주차장은 왁자하다. 노점마다 과일과 조지아 전통 기념품이 늘어서 있다. 여행객을 붙잡고 흥정하는 상인들을 본다. 화장실은 2라리를 내야 한다. 입구를 지키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괄괄하다.

제국의 길, 조지아 군사도로를 넘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눈이 녹아 삼각형모양으로 골이 파인 골짜기 헤비(khev) [사진=박성기 작가]

창밖으로 코카서스 산맥의 능선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 해발 2,200m, 구름이 머무는 구다우리(Gudauri)에 닿는다. 겨울이면 세계의 스키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산자락마다 호텔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짙푸른 초원과 깎아지른 산세가 그 자리를 채운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구다우리 파노라마. [사진=박성기 작가]

구다우리를 지나며 초원이 넓어진다. 푸른 산비탈 한가운데가 삼각형 모양으로 골이 파여 회색 흙과 암반이 드러나 있다. 눈이 녹은 물이 흘러내리며 깎은 침식골(gully)이다.

십자가 고개(Jvari Pass)로 오르는 길, 시야가 트인 절벽 끝에 반원형의 거대한 구조물이 서 있다. 구다우리 파노라마(Gudauri Panorama)다. 안쪽 벽을 채운 모자이크가 조지아와 러시아의 역사와 민속을 한 편의 서사처럼 펼친다. 러시아는 1783년 조지아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801년 조지아를 병합했다. 두 나라의 우정을 기념하여 1983년에 세웠지만 의미는 퇴색했고, 점령했던 역사의 아이러니는 남았다. 이제는 관광 명소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기념비 앞 발코니에서 밑을 내려다본다. 조지아 사람들은 큰 골짜기라는 뜻으로 디디 헤비(Didi Khevi)라 부르고, 깊이가 너무 깊어 여행자들은 악마의 계곡(Devil's Valley)이라 부른다. 골짜기 깊이가 600여 미터라 하니 수긍이 간다.

신화의 산 카즈베크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카즈베크 산. [사진=박성기 작가]

구다우리 파노라마를 지나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로 들어서면 카즈베크(Kazbek, 5,054m) 산의 봉우리가 만년설에 덮여 있다. 눈과 얼음의 산은 사람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신들의 영역이다.

카즈베크 산에는 묶인 자가 둘이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코카서스 산맥의 바위에 묶였다. 조지아의 프로메테우스라 불리는 영웅 아미라니(Amirani)는 신에게 맞선 죄로 이 산속 동굴에 쇠사슬로 묶였다.

카즈베크 산은 산이라기보다 인간이 넘고 싶어 했던 경계처럼 보인다. 그 어딘가에서 두 영웅이 아직도 쇠사슬을 당기고 있을까.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알렉산드르 카즈베기 동상. [사진=박성기 작가]

광장에 알렉산드레 카즈베기(Alexandre Kazbegi)의 동상이 서 있다. 그는 19세기 조지아의 대표 작가다. 부유한 집안을 떠나 목동으로 살며 산악 지방 사람들의 정서를 몸으로 익혔고, 러시아 제국에 맞서는 사람들의 삶을 소설에 담았다.

스테판츠민다라는 지명은 이곳에 은둔처를 세운 수도사 성 스테판에서 왔다. 1925년에는 작가의 이름을 따 카즈베기가 공식 지명이 되었고, 2006년 다시 본래 이름인 스테판츠민다를 되찾았다. 그래도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카즈베기가 익숙하다.

산 위의 성소,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게르게티 타워, 독립된 감시, 방어용 감시탑. [사진=박성기 작가]

게르게티(Gergeti) 마을에 들어선다. 노란 이정표에 '해발 1,847m. 게르게티 사메바까지 2.9km, 1시간 20분'이라 쓰여 있다.

집들 사이를 지나 마을을 벗어난다. 마을 끝 갈림길을 지나면 바위 언덕 위에 허물어진 돌탑 하나가 나타난다. 외적의 움직임을 살피던 게르게티의 옛 감시탑이다. 지붕도 층계도 사라진 채 허물어진 돌벽만 남아 있다. 감시탑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들꽃이 흔들린다. 감시탑을 지나 뒤돌아 본다. 탑 너머로 쿠로(Kuro, 4,071m) 산의 거친 암봉들이 솟아 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난 길이 성삼위 교회로 뻗어 있다. 카즈베크 산의 설봉이 눈앞에 있는 듯 가까운데, 다가가도 그 자리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7게르게티 타워 너머로 펼쳐진 쿠로 산군. [사진=박성기 작가]

교회 앞에 선다. 산 아래에서 한 점처럼 작았던 교회가 큰 몸집으로 서 있다. 게르게티는 산 아래 마을의 이름이고, 교회는 조지아어로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거룩한 성삼위)라 부른다. 중앙 돔을 올린 석조 본당과 종탑, 둘레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외적의 침입이 잦던 시절에는 므츠헤타(Mtskheta)의 성물과 보물을 이곳으로 옮겨 지켰다. 1795년 페르시아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성녀 니노(Nino)의 십자가도 여기에 숨겼다고 한다. 교회가 신앙의 마지막 피난처였다면, 산 전체가 마을과 사람을 지키는 성벽이었을 것이다. 아미라니가 갇힌 산 아래, 사람들은 돌을 쌓아 교회를 만들고 믿음을 남겼다.

따라오던 햇빛이 문 앞에서 멈추고, 나는 교회 안으로 들어선다. 두꺼운 돌벽과 작은 창 때문에 한낮에도 빛이 많지 않다. 검게 그을린 돌벽에 성화가 걸려 있다. 성모와 아기 예수, 자신의 잘린 머리를 쟁반에 받쳐 든 세례자 요한, 붉은 갑옷의 성 조지(St. George). 어두운 벽 앞에서 금빛이 더욱 선명하다. 그 앞 모래 그릇에 촛불 두 개가 타고 있다. 촛불이 일렁인다. 그 밖은 어둡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교회 안의 성화들. [사진=박성기 작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이 산을 올랐다. 그때마다 이 작은 불빛 앞에 두려움과 소망을 내려놓았다.

산을 내려와 다시 산을 보다

교회 담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게르게티 마을이 발밑에 모여 있고, 테르기(Tergi) 강 건너 스테판츠민다가 초록 들판 위에 흩어져 있다. 맞은편 쿠로 산은 봉우리에 구름이 걸려 있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코카서스를 바라보는 게르게티의 돌십자가와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교회 뒤로 돌아 능선을 조금 내려오면 돌 십자가가 서 있다. 납작한 검은 돌을 층층이 쌓은 단 위에 연한 빛깔의 십자가를 올렸다. 가운데에 못 박힌 예수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산등성이를 타고 산 아래 보이는 게르게티 마을을 향해 하산 길을 잡는다. 길은 가파른 비탈이어서 조심스럽다. 발끝만 보고 걷는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하산길에서 바라본 게르게티마을. [사진=박성기 작가]

강을 건너 스테판츠민다로 돌아온다. 숙소는 구소련 시절 휴양소를 고쳐 만든 룸스호텔(Rooms Hotel)이다. 입구는 건물 뒤에 있다. 호텔로 들어서면 넓은 홀과 식당, 카페다. 앞쪽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 건물과 같은 길이의 테라스가 길고 넓게 펼쳐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산을 바라보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호텔 정면에 카즈베크 산이 서 있다. 그 아래 해발 2,170m의 츠민다 사메바는 손바닥 크기로 보인다. 산은 조금씩 빛을 거두고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산 어디에선가 쇠사슬에 묶인 아미라니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난간에서 물러나 의자에 앉는다. 하루에 쌓인 피로가 산으로 스며든다.

산에 어둠이 내린다.

게르게티 성삼위 교회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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