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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의 패션 잉글리쉬] 겹으로 짓는 옷-2026 F/W 곽현주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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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지난 5일 오후, DDP 아트홀 1관. 조명이 꺼지고 첫 모델이 걸어 나오는 순간, 옷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옷의 '움직임'이었다. 얇은 천이 걸음에 따라 미끄러지고, 안쪽의 또 다른 층이 잠깐 비쳤다가 다시 사라졌다. 2026 F/W 서울패션위크에서 곽현주 컬렉션(KWAKHYUNJOO COLLECTION)이 보여준 장면이다.

2026 F/W 서울패션위크 곽현주 컬렉션 [사진=조수진 제공 ]
2026 F/W 서울패션위크 곽현주 컬렉션 [사진=조수진 제공 ]

곽현주 컬렉션은 Good Sense(좋은 감각)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를 지향한다. 매 시즌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시그니처 프린트(signature print, 브랜드만의 상징적인 프린트), 정교한 tailoring(테일러링, 재단과 봉제를 통해 형태를 만드는 기법), 그리고 서로 다른 패턴과 소재를 과감하게 섞는 mix-match(믹스매치, 이질적인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가 브랜드의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강한 프린트와 예상 밖의 소재 조합이 인상적이다. 영어에서는 시선을 단번에 끄는 강한 무늬를 statement print(존재감을 드러내는 프린트)라고 표현한다. statement가 '선언'이라는 뜻인 만큼, 곽현주의 옷은 단순히 입는 옷이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말하는 옷에 가깝다.

이번 시즌의 테마는 Layered Flow(겹의 흐름)와 Translucent Motion(반투명한 움직임)이었다. 출발점은 한국적 치마와 조각보였다. 치마가 겹겹이 포개지면서 만들어내는 유연한 선, 그리고 서로 다른 천 조각을 이어 하나의 화면을 만드는 조각보의 구조를 현대적인 패션으로 옮겼다. 직선적인 형태보다는 부드러운 곡선 절개를 사용했고, 강렬한 색 대비 대신 tone-on-tone(톤온톤, 비슷한 계열의 색을 겹쳐 사용하는 배색)을 쌓아 깊이를 만들었다.

여기서 layered(겹겹이 쌓인)라는 말이 이번 컬렉션을 정확히 설명한다. layer(층, 겹)는 '눕히다'라는 뜻의 lay에서 비롯된 말이다. 천을 하나씩 눕혀 겹쳐가는 방식은 한복의 '겹'과 닮아 있다.

2026 F/W 서울패션위크 곽현주 컬렉션 [사진=조수진 제공 ]
2026 F/W 서울패션위크 곽현주 컬렉션 [사진=조수진 본인 제공 ]

더 흥미로운 단어는 translucent(반투명한)다. trans(통과하여)와 lucere(빛나다)가 합쳐져 '빛은 통과하지만 형체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transparent(완전히 투명한)와는 다르다. 유리창이 transparent라면 잿빛 유리는 translucent다. 곽현주 컬렉션 역시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비치고 가리고 다시 드러나는 순간을 디자인의 일부로 만들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준 룩은 스트라이프와 플로럴 패턴을 섞은 블라우스와 풍성한 아이보리 스커트였다. 스커트에는 tulle(튤, 얇은 그물망 형태의 직물)이 여러 겹 사용됐다. tulle이라는 이름은 프랑스의 도시 Tulle에서 유래했고, 오늘날 웨딩 베일이나 발레 의상에도 널리 사용된다.

여러 층으로 이어진 형태는 tiered skirt(층층이 이어진 스커트), 물결처럼 잡힌 장식은 ruffle(주름 장식)이라 한다. 이 옷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sheer(얇아서 비치는)다.

또 하나 인상적인 룩은 세이지 그린의 trench coat(트렌치코트)였다. 단추 대신 허리 벨트로 여민 belted coat(벨트로 여미는 코트) 형태였다. trench는 원래 ‘참호’를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들이 참호에서 입던 방수 코트가 지금의 트렌치코트로 이어졌다.

어깨의 epaulette(견장) 역시 원래 군복에서 계급장을 고정하기 위한 장치였다. 전쟁터의 실용적인 디테일이 100여 년 뒤 런웨이의 디자인이 된 셈이다. 여기에 사용된 sage(세이지 그린, 회색빛이 감도는 연녹색)라는 색 이름 역시 흥미롭다. 그 어원은 라틴어 salvus(건강한, 안전한)와 연결되며 영어의 safe(안전한), save(구하다)와도 같은 뿌리를 가진다.

곽현주 컬렉션이 이번 시즌 보여준 것은 전통의 복원이 아니라 전통의 움직임이었다. 겹과 조각보의 선이 현대적인 소재와 실루엣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전통은 박제될 때가 아니라, 움직일 때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Translucent Motion(반투명한 움직임)이라는 말은 꽤 정확하다. 비쳐 보이지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는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은 ‘겹’이 오래전부터 해오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2026 F/W 서울패션위크 곽현주 컬렉션 [사진=조수진 제공 ]
'조수진영어연구소' 조수진 소장 [사진=조수진영어연구소]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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