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최신


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조이뉴스TV

[조수진의 패션잉글리쉬] 옷장이 가장 수다스러워지는 계절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을 나타내는 단어는 autumn과 fall 이렇게 두 개다. 흔히 autumn은 영국식, fall은 미국식으로 알고 있지만 두 단어 모두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16세기 영국인들은 이 계절을 the fall of the leaf(잎이 지는 때)라 불렀다가 1600년대 말, 라틴어 autumnus에서 온 autumn이 영국에서 fall을 밀어냈다. 마침 그 무렵 대서양을 건넌 이주민들은 fall을 신대륙으로 그대로 들고 갔다. 미국이 만든 말이 아니라 영국이 버린 말을 미국이 지킨 셈이다. 한 계절에 이름이 둘이라는 건 그만큼 할 말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가을은 옷장이 가장 수다스러워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에스파 카리나가 '프라다 2026 가을/겨울 남성복 패션쇼' 참석을 위해 탈리아 밀라노로 출국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프라다]
에스파 카리나가 '프라다 2026 가을/겨울 남성복 패션쇼' 참석을 위해 탈리아 밀라노로 출국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프라다]

예전에 여러 번 다뤘던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는 봄을 시샘하는 '꽃샘 추위'처럼 계절의 흐름을 시샘하듯 첫서리가 내린 뒤, 첫눈이 오기 전에 며칠간 되돌아오는 이례적으로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를 말한다. 1778년 미국의 한 프랑스계 농부가 편지에 적은 것이 최초 기록으로,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지금도 정설이 없다. 유럽에서는 성 마르티노 축일(11월 11일)을 따 St. Martin's summer라 불렀고, 요즘 영어권에서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2번째 여름(second summer)으로 바꿔 쓰기도 한다.

아침 15도, 낮 27도. 이런 날씨의 옷차림을 간절기 옷차림(transitional dressing)이라 하고, 그 기술을 레이어링(layering)이라 부른다. 핵심은 간절기 아이템(transitional piece)이다. 아침에 걸쳤다가 낮에 벗을 수 있는 한 겹, 그것이 전부다.

올가을 컬렉션이 내놓은 답은 분명하다. 목선이 굴뚝처럼 올라온 퍼널넥 재킷(funnel-neck jacket), 그리고 초콜릿 브라운의 스웨이드 부츠(suede boots). 여기에 체리 레드 소품 하나를 스테이트먼트 피스(statement piece), 곧 시선을 붙드는 한 점으로 얹으면 가을 옷차림이 완성된다. 무난한 색을 선호한다면 답은 뉴트럴(neutral)이다. 베이지·크림·차콜처럼 무엇과도 다투지 않는 색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한 겹의 멋'이 현대 패션만의 발명품은 아니라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19권에서 오디세우스는 보라색 양털(purple wool)로 된 겹망토(double cloak)를 입고, 그것을 금빛 브로치(brooch)로 여민 모습으로 묘사된다. 브로치에는 사냥개가 새끼 사슴을 붙잡고 있는 정교한 장식까지 새겨져 있었다. 수천 년 전에도 망토는 단순히 추위를 막는 천 한 장이 아니라, 기능과 멋 그리고 그 사람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statement piece였던 셈이다.

영어에는 가을에만 나오는 표현이 있다. 스웨터 웨더(sweater weather)로 스웨터를 꺼낼 만큼 서늘해진 날씨를 뜻한다. 그리고 커핑 시즌(cuffing season)의 cuff는 수갑(handcuff)에서 온 속어로, 추워지는 10월부터 봄까지 싱글들이 짝을 찾는 시기를 뜻한다. 그런데 옷의 소맷부리도 커프(cuff)다. 소매를 접어 올리는 계절과 마음을 묶는 계절이 같은 단어를 쓰는 셈이다.

가을은 참 바쁜 계절이다. fall처럼 잎은 떨어지고, autumn처럼 분위기는 깊어지며, 아침엔 재킷을 걸쳤다 가 낮엔 벗어 들고, 어느새 스웨터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진다. 옷은 한 겹씩 더해지고 마음의 문턱은 조금씩 낮아진다. 그래서인지 가을 패션의 진짜 기술은 layering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는 속도에 맞춰 옷도, 마음도 적당히 겹쳐 입는 것. 낙엽이 떨어지는 Fall, 멋은 깊어지는 Autumn. 가을은 결국, 무엇을 입느냐보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내려놓느냐의 계절인 듯 싶다.

에스파 카리나가 '프라다 2026 가을/겨울 남성복 패션쇼' 참석을 위해 탈리아 밀라노로 출국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프라다]
'조수진영어연구소' 조수진 소장 [사진=조수진영어연구소]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와 스톡홀름 경제대학교(SSE) MBA 출신으로 (주)일미푸드의 대표이사와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조수진의 패션잉글리쉬] 옷장이 가장 수다스러워지는 계절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