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12>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⑫ 편에서 이어집니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7d5f2c56f80ae7.jpg)
만년설과 야생화가 만든 그라데이션
라마리아(Lamaria) 언덕의 교회를 뒤로하고 우쉬굴리(Ushguli)의 마지막 목적지 쉬카라(Shkhara) 빙하로 향한다. 엔구리(Enguri)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창밖으로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다. 저 멀리 해발 5,203미터의 쉬카라 산이 서 있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다가설수록 산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벽이었고,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3c0b041bcacbe8.jpg)
물길을 가로지르는 오프로드의 쾌감도 잠시다. 3킬로미터쯤 갔을까. 창밖이 야생화로 가득 찬다. 꽃이 한두 송이가 아니다. 어디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 수 없는 평지가 온통 꽃으로 덮여 있다. 스치며 지나가는 것이 안타깝다.
쉬카라 빙하 레스토랑 앞에서 차가 멈춘다. 정오다. 빙하를 3.5킬로미터쯤 남겨둔 지점이다. 차량도 말도 여기까지다. 마당에는 여행자들을 태우고 온 말들이 고삐를 늘어뜨린 채 쉬고 있다. 배낭을 고쳐 메고 걷기 시작하는 사람이 있고, 차를 마시며 초원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왕복 7킬로미터다. 신발끈을 다시 묶고 마당을 나선다.
꽃이 바다를 이룬 길
산을 오르는데 물소리가 곁을 따라온다.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차다. 물은 바위에 부딪혀 갈라지고, 다시 합쳐지고, 또 흩어지며 아래로 달려간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4c473bd1b20b87.jpg)
내려오는 일행과 몇 번 비껴선다. 길이 좁아 한쪽이 꽃 속으로 물러나야 한다. 물러선 자리에서 꽃대가 허리까지 올라온다.
우산 모양으로 벌어진 흰 꽃이 길을 뒤덮는다. 분홍빛 이삭과 짙은 보라색 초롱꽃이 어깨까지 훌쩍 자랐다. 발밑으론 노랑과 파랑의 꽃들이 융단처럼 깔린다. 나비와 벌들이 그 위를 날고, 바람이 불 때면 꽃들이 한 방향으로 일렁인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ce3f4e41ed74cb.jpg)
눈은 자꾸 꽃을 따라가고 귀에는 물소리가 들어온다. 목적지가 눈앞에 와 있는데도 마음이 급하지 않다. 꽃 한 송이 지나치는 것이 아깝다. 빙하를 만나러 가는 길이 이토록 따뜻한 색깔로 가득할 줄은 몰랐다.
거친 자갈길 끝에 마주한 대자연
어느 순간 풍경이 바뀐다. 부드럽던 흙길과 꽃밭이 사라진다. 빙하가 수만 년 동안 밀어낸 돌과 자갈이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8a0f225a6d3d3b.jpg)
돌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밟으면 흔들리는 것이 있고 꿈쩍도 않는 것이 있다. 밟기 전에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발목이 꺾이지 않게 조심한다.
꽃길에서는 고개가 들려 있었다. 여기서는 계속 숙이고 있다. 산을 보려면 멈춰야 한다. 멈춰 서서 고개를 들고, 다시 숙이고 걷는다.
큰 바위를 돌아가고, 작은 물길을 건넌다. 길이 거칠어질수록 산은 가까워진다. 멀리서 흰 띠처럼 보이던 얼음이 모양을 드러낸다. 검은 바위 능선들이 부챗살처럼 갈라져 내려오고, 골마다 만년설이 채워져 있다. 빙하는 골짜기 한가운데를 흐른다. 위쪽은 좁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넓어진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62204685685075.jpg)
공기가 달라진다. 한여름인데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스친다. 바람은 빙하를 타고 계곡 아래로 흘러내린다. 초록이 물러나고 회색 바위가 자리를 채운다. 그래도 굵은 자갈 사이에 보랏빛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다. 흙이라 할 것도 없는 자리에서다.
40미터 빙벽 앞에 서다
조지아에서 가장 높은 쉬카라는 대코카서스(Greater Caucasus)의 주능선을 따라 러시아와 국경을 이룬다. 우쉬굴리에서 이어지는 길은 그 산 아래에서 멈춘다. 정상은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아쉽지는 않다. 눈앞의 얼음벽은 높이가 40여 미터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4de7e7cda0036b.jpg)
오랜 세월 산에 쌓인 눈이 눌리고 얼어 빙하가 되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얼음이 조금씩 계곡 아래로 흘러왔다.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얼음 속에서 무언가 갈리는 소리가 난다. 아주 낮다. 물이 흐르는 소리인지 얼음이 쪼개지는 소리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저 안에서 무게가 계속 밀리고 있다.
빙하는 흰색이 아니다. 흙과 돌가루가 표면을 덮어 회갈색을 띤다. 얼룩이 흐름을 따라 길게 번져 있다. 사선으로 길게 갈라진 자리가 있다. 크레바스다. 그 안에서만 얼음이 제 빛깔을 드러낸다. 흙에 덮이지 않은 속살은 푸르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6bbc98cdb243f0.jpg)
낙석 때문에 거리를 두고 선다.
"텅-, 텅-."
고개를 들자 큰 돌 하나가 빙벽 옆 사면을 타고 굴러 내린다. 돌이 바위와 얼음에 부딪히는 소리가 계곡을 울린다. 이따금 돌들이 아찔하게 쏟아진다. 50미터를 두고 선 거리가 갑자기 짧게 느껴진다. 갑자기 쿵 소리가 나서 고개를 들어보니 한쪽 귀퉁이의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다. 괜스레 몸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6809f202eff250.jpg)
빙벽 아래쪽에서 희뿌연 물이 솟아 나온다. 빙하가 갈아낸 암석 가루를 품어 탁하다. 이렇게 빙하에서 흘러나온 물은 엔구리 강의 시작이 된다. 스바네티(Svaneti)의 깊은 골짜기를 지나 213킬로미터를 흘러 흑해에 닿는 도도한 흐름의 출발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산이 물을 내고, 그 물이 사람을 살게 한다. 스바네티 사람들의 삶도 결국 저 얼음과 닿아 있다.
발목을 붙잡는 꽃들
발길을 돌려 내려온다. 바위 지대를 벗어나자마자 다시 초록이 열린다. 뒤를 돌아보니 눈앞을 압도하던 빙벽이 어느새 산 아래 얇은 흰 띠로 변해 있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37123d094b96a0.jpg)
한 시간 남짓 걸었을 뿐인데 극과 극을 오간다. 올라갈 때 실컷 봤다고 생각했던 꽃들이 내려올 땐 더 예뻐 보인다. 해가 기울면서 빛이 낮아진 탓이다. 아침에 정면으로 쏟아지던 볕이 이제 옆에서 든다. 꽃잎이 속까지 비친다. 같은 길인데 다른 길이다. 3.5킬로미터를 다녀오는 데 네 시간이 넘게 걸린다.
레스토랑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내려간다. 오전에 눈여겨 봐둔 초원에 잠시 내린다. 분홍 이삭이 촘촘히 서 있다. 그 아래로 자주가 깔리고 사이사이 노랑이 박힌다. 풀보다 꽃이 많다. 들판은 저 끝 숲에 가서야 멎는다.
여기서는 누구랄 것도 없다. 꽃이 핀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몇 걸음 가다 다시 앉는다. 어떤 이는 풀밭에 눕고 어떤 이는 팔을 벌린다. 어느 쪽으로 서든 모두가 꽃이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745f4ca2fdc08c.jpg)
무릎을 굽혀 사진을 찍고 몇 걸음 가다 멈춘다. 꽃이 사람을 붙잡는다. 빨리 가야 할 이유를 자꾸 잊게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들판이 흔들린다. 한동안 앉아 있는다.
위에는 만년설, 아래에는 꽃이다.
<14>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⑭ 편으로 이어집니다
![쉬카라산과 빙하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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