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⑪ 편에서 이어집니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b078da5f15dad5.jpg)
두려움 없는 심장, 우쉬굴리
아침 9시에 메스티아(Mestia)를 떠나 우그비리 고개(Ughviri Pass)를 넘는다. 해발 1,900미터, 이 길의 가장 높은 자리다. 뒤로 우쉬바(Ushba)가 물러나고 앞으로 테트눌디(Tetnuldi)가 다가온다. 비는 오지 않는다. 솜털 같은 구름이 하늘에 흩어져 있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88ff461feb09e9.jpg)
오전 10시에 도착한우 쉬굴리(Ushguli)의 첫인상은 비현실적이다. 중세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잿빛 탑 위로 그 구름이 낮게 걸린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도 무심하다. 탑 밑동엔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그림같이 아름답고 압도적인 쉬카라(Shkhara) 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풍경은 말로 표현이 불가하다.
우쉬굴리란 이름은 '두려움 없는 심장'을 뜻한다. 이곳은 겨울이면 폭설로 반년 가까이 고립된다. 숱한 분쟁도 이 골짜기를 지나갔다. 굳은살 같은 이름이다.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봤자 30분 남짓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는 스바네티(Svaneti)의 천 년이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다.
무르크멜리를 지나 차자시로
우쉬굴리는 여러 마을이 이어진 공동체다. 마을 어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무르크멜리(Murkmeli)다. 무너진 돌담과 낡은 집, 그 사이로 우뚝 솟은 스반 타워(Svan Tower)가 비로소 진짜 우쉬굴리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cab084b8f015c7.jpg)
차자시(Chazhashi)에서는 집과 탑과 돌담이 따로 있지 않다. 서로가 기대어 거대한 요새를 만든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스바네티의 핵심 구역이다. 10~11세기에 세운 탑과 성채 같은 집이 남아 있다. 탑에 잇대어 지은 살림채 마추비(Machubi)도 그대로다. 탑들은 돌을 쌓아 올린 그대로다. 지붕까지 얹혀 있는데 안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마을 한가운데 낮은 언덕이 솟아 있다. 원래 탑과 교회가 함께 서 있던 자리다. 지금은 온전한 탑 하나와 타마르 여왕의 겨울 거처였다고 전해지는 성 게오르기 교회(St. George's Church)만이 남아 있다. 교회는 문이 닫혀 있다. 두 건물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옛 영광을 증명한다.
탑 속의 사다리
언덕 위, 문이 열려 있는 타마르 여왕의 탑(Queen Tamar's Tower) 안에 들어선다. 밖에서 볼 때는 웅장한 탑이다. 안은 다르다. 철저한 생존의 공간이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cdc6caa56acb68.jpg)
층과 층을 잇는 것은 계단이 아니다. 수직에 가까운 나무 사다리다. 한 칸씩 몸을 끌어올린다. 심장 뛰는 소리가 벽을 타고 울린다. 발을 잘못 디디면 아래층까지 떨어질 것 같아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과거 적들이 들이닥치면 가족들은 이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간 뒤 통째로 끌어올려 통로를 끊었다. 위층으로 가는 구멍은 어깨를 비틀어야 겨우 통과할 만큼 비좁다. 창문 대신 밖을 경계할 총안만이 뚫려 있다. 벽에 난 틈으로 스며든 빛이 거친 돌을 희미하게 비출 뿐이다.
밖에서는 그저 오래된 돌탑이다. 안에 들어와 보니 구조 하나하나가 달리 보인다. 좁고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한 형태다. '방어탑'이라는 말을 그제야 몸으로 느낀다.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밖으로 나온다. 어둠 속에 있다가 햇빛을 마주하니 하늘이 더욱 눈부시다.
천 년의 돌탑 곁에 흐르는 오늘의 일상
발걸음을 츠비비아니(Chvibiani)로 옮긴다. 이 요새는 박제된 유적이 아니다. 지금도 사람이 밥을 짓고 잠을 잔다. 담장 너머에서 소가 고개를 내민다. 골목에서는 아이들이 안장도 없이 말을 몬다. 떨어질 걱정을 하는 것은 보는 사람뿐이다. 빨래가 바람에 나부낀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cc992ef3a18a66.jpg)
골목을 지나다 간판 하나를 본다. 시네마 데데(Cinema Dede). 술집 이층이 상영관이다. 하루 다섯 번, 한 편만 돌린다. 이 마을에서 찍은 영화다. 배우 대부분이 여기 사람이다. 자기가 사는 마을을 찍은 영화를, 그 마을에서 판다.
천 년 된 돌탑과 오늘의 삶이 한 골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뒤섞여 있다.
골목길을 따라가다 작은 교회를 만난다. 앞을 가로막은 돌담에 주황 이끼가 앉았다. 회칠한 벽이 갈라져 있다. 검은 점판암을 겹쳐 얹은 지붕은 한쪽이 내려앉았다. 벽 한가운데 흰 돌십자가가 박혀 있다. 아치문은 철망으로 막혀 있다. 문 양옆의 돌 걸상은 비어 있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faff9595413faa.jpg)
목숨을 지키던 요새 가운데 일부는 박물관이 되어 있다. 그 주변에는 일상의 시간이 흐른다. 츠비비아니를 지나 지비아니(Zhibiani)로 들어서면 산이 가까워진다. 골목 안쪽에 또 하나의 교회가 있다. 길 끝, 언덕 위에는 어머니의 교회가 서 있다.
들꽃 길 끝에서 만난 라마리아 교회
마을 가장 깊숙한 언덕에 자리한 라마리아 교회(Lamaria Church)로 향한다. 여기서부터 풍경의 색채가 바뀐다. 회색 탑들을 벗어나면 오르막이 들꽃으로 가득하다. 보라와 노랑이 길 가장자리에서 다툰다. 바람이 불 때마다 비탈 전체에 잔잔한 물결이 인다. 언덕을 오르다 마을을 돌아본다. 잿빛 사이로 초록 들판이 넓어지고 그 위로 구름 그림자가 천천히 지나간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7c58aabbc51ccc.jpg)
교회에 다가선다. 낮은 돌담이 교회를 감싼다. 뒷담 아래 쪽문을 열고 들어선다. 마당에 종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검게 그을린 나무 가로대에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차례로 매달려 있다. 뒤로는 납작한 돌을 눕혀 쌓은 벽이 이어지고 돌 틈에서 풀이 한 포기 자란다. 교회는 단정하고 소박하다. 9~10세기에 지었다. 천 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마을과 산을 내려다봤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31e663edcdaba9.jpg)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b1e035ba5b7cce.jpg)
풍요를 상징하던 토속 신앙 '라마리아'의 자리에 훗날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가 스며들었다. 옛것을 밀어낸 것이 아니다. 깊은 산골짜기의 삶 속에서 두 개의 시간이 포개어져 있다.
쉬카라로 향하는 길목에서
교회 앞에 서면 시선은 북동쪽으로 향한다. 대코카서스(Greater Caucasus)의 주능선이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며 길게 이어진다. 그 위로 쉬카라 산이 솟는다. 해발 5,203미터, 조지아에서 가장 높다. 만년설과 빙하가 산허리까지 내려와 있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629dcc40f337b6.jpg)
바람이 그쪽에서 온다. 구름이 지나갈 때마다 팔이 서늘하다. 저 흰 것을 지나온 바람이다.
조금 전까지 하늘을 찌를 듯하던 탑들이 작은 점으로 줄어든다.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한 우쉬굴리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쉬카라는 아직 멀다.
<13>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⑬ 편으로 이어집니다
![우쉬굴리와 쉬카라 산 [사진=박성기 작가 ]](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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