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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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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트빌리 협곡, 스바네티로 가는 길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⑨ 편에서 이어집니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마르트빌리, 협곡으로 들어서다

사메그렐로 지역의 마르트빌리 협곡(Martvili Canyon)에 들어선다. 아바샤강(Abasha River)이 석회암 지대를 파고들며 만든 골짜기다. 물은 바위의 약한 틈을 따라 흐르며 조금씩 깎아냈다. 협곡은 2.4km 이어지고, 깊은 곳은 40m에 이른다. 한때 사메그렐로를 다스린 다디아니(Dadiani) 가문은 여름이면 이곳에 내려와 휴가를 즐겼다. 협곡을 따라 그들이 오르내리던 길과 석회암 계단이 남아 있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협곡 상류로 보트를 타고 가다. [사진=박성기 작가]

상류는 물살이 순하다. 고무보트를 타려는 사람들이 강가에 길게 늘어서 있다. 차례가 되어 보트에 오른다. 좁은 물길 사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앞에 앉은 두 사람이 노를 저을 때마다 뱃머리가 수면을 가른다. 뱃사공은 뒤에서 방향을 잡아준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암벽을 짚으며 가는 구간. [사진=박성기 작가]

폭이 5m밖에 되지 않는 구간에서는 양옆의 암벽을 손으로 밀며 지나간다. 절벽 위 나무와 덩굴이 물가로 길게 늘어져 있고, 물기를 머금은 바위에는 이끼가 내려앉았다. 여행객들의 웃음과 환호가 좁은 협곡 안에서 메아리친다. 반대편에서 오는 배와 마주치면, 처음 보는 사람끼리도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든다. 배가 지나면 잠깐 물결칠 뿐이다.

아바샤강이 쏟아지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아바샤강이 마르트빌리 협곡으로 내리 꽂는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배에서 내려 하류로 이동한다. 숲 사이로 난 계곡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소리가 곧 지축을 울리는 폭포수의 굉음으로 바뀐다.

암벽의 틈으로 물이 쏟아지고, 수십 갈래로 갈라져 바닥으로 내려친다. 물보라가 하얗게 일고, 차가운 물방울이 얼굴까지 날아온다. 우리들의 말은 물소리에 묻히고,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마르트빌리협곡. [사진=박성기 작가]

에메랄드빛 물로 유명한 협곡이지만, 전날 내린 비로 수량이 늘어 그 빛깔은 찾기 어렵다. 푸른 숲과 회색 암벽, 그 사이를 가르며 쏟아지는 하얀 물줄기와 포말.

협곡은 오랜 시간 조금씩, 쉬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단단한 바위가 물살을 따라 깎여서 이렇게 바뀐 것이다.

발밑의 미끄러운 돌길을 조심스레 밟는다. 발이 미끄러지며 중심을 잃는다.

협곡을 빠져나온 뒤에도 굉음은 한동안 등 뒤를 따라온다.

주그디디를 벗어나다

마르트빌리 협곡의 물빛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다. 서쪽으로 달린다. 한 시간 남짓 뒤 주그디디(Zugdidi)에 닿는다. 스바네티로 들어가기 전 만나는 마지막 큰 도시다.

거리가 낯설다. 지금껏 지나온 조지아의 도시들과 건물의 낯빛이 다르다. 벽은 희고 길은 정결하다. 다디아니 가문의 궁전이 있던 도시다. 계획해서 세운 거리의 골격이 아직 남아 있다. 스바네티로 드는 길목이라 오가는 여행자도 많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렐리 음식점 ‘멘젤(Mendzel)에서 식사중인 사람들. [사진=박성기 작가]

늦은 점심은 메그렐리 전통음식점 멘젤리(Mendzeli)에서 먹는다. 페노바니 하차푸리를 시킨다. 겹겹이 접은 반죽 속에 술구니 치즈를 채워 구운 빵이다. 갓 나온 껍질이 포크 끝에서 바스러진다. 속의 치즈는 길게 늘어난다. 짜지 않다. 여행 내내 짠 음식에 시달렸다. 접시를 비운 건 오랜만이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주그디디 음식점의 음식들. [사진=박성기 작가]

그길로 까르푸에 들러 장을 본다. 과일과 견과, 간식, 생수를 카트에 담는다. 메스티아에는 큰 마트가 없어 대부분 여기서 준비한다.

주그디디를 벗어나자 넓게 펼쳐지던 평야가 서서히 물러난다. 길은 북쪽으로 틀어 엔구리강(Enguri River)을 따라간다. 산이 점점 깊어진다. 차창 밖으로 코카서스의 능선이 하나둘 올라선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엔그리 호수. [사진=박성기 작가]

엔구리강을 거슬러 오르다

좁은 협곡을 막아선 엔구리댐은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대로 지나친다.

높이 271미터,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치식 댐이다. 소련이 1961년에 착공해 1987년에 끝냈다. 스물여섯 해가 걸렸다. 물은 골짜기를 삼십 킬로미터 거슬러 올라가 멈췄다. 가장 깊은 곳이 226미터, 조지아에서 가장 깊은 물이다. 저 수면 아래 어딘가에 길이 있었고 집이 있었다. 지금 조지아가 쓰는 전기의 40%가 이 물에서 나온다.

댐에 막힌 강은 즈바리 저수지(Jvari Reservoir)가 되었다. 길은 한동안 이 넓은 호수를 끼고 이어진다. 물빛은 흐린 청록색이다. 수위가 내려간 자리에는 마른 흙이 띠처럼 드러나 있고, 물에 잠겼던 비탈에는 잎을 떨군 나무들이 앙상하게 서 있다. 산허리를 감아 도는 길 아래로 수면이 아득하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스바네티 지역 메스티아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길은 산속으로 더 들어간다. 엔구리강으로 흐르는 지류가 깎아놓은 골짜기는 갈수록 좁아진다. 도로는 산비탈에 붙어 구불구불 이어진다. 어떤 구간에서는 차창 밖 바로 아래로 낭떠러지다. 길 가장자리에는 난간이 없어 아찔하다.

고개를 들면 풍경은 또 달라진다. 숲 너머로 코카서스의 거대한 봉우리와 능선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한여름인데도 능선과 골짜기에는 녹지 않은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다. 그 위로는 만년설과 빙하다. 스바네티는 우슈바와 테트눌디를 비롯해 4,000m를 넘는 봉우리들에 둘러싸여 있다.

능선을 타고 오른 흰 구름이 한곳에 뭉쳐 있다. 누군가 외친다.

"저기 산에 불이 난 것 같아."

멀리서 보면 정말 산등성이에서 하얀 연기가 오르는 듯하다.

산길을 돌고 돌아도 메스티아는 보일 기미가 없다. 도시의 기척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창밖에는 산과 강, 그리고 계곡뿐이다. 이 길을 되돌아나갈 수 있을까.

스바네티, 돌망루가 나타나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 마을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작가]

골짜기 사이로 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돌과 나무로 지은 집들 사이에 특이한 모양의 돌탑이 우뚝 서 있다. 하나가 지나가고, 조금 더 가면 또 하나가 나온다.

스반타워(Svan Tower)다. 3층에서 5층, 높이 20m를 넘는다. 9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세워졌다. 벽은 위로 갈수록 얇아져 끝이 가늘다.

마을을 성벽으로 두르는 대신, 집집마다 탑을 세웠다. 북쪽 캅카스에서 넘어오는 약탈자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집안과 집안 사이의 피의 복수를 피해 한 가족이 몸을 숨기던 자리다. 입구는 땅에서 몇 미터 위에 나 있어 사다리를 걸어야 올랐고, 위험이 닥치면 사다리를 걷어 올렸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메스티아 마을의 스반타워. [사진=박성기 작가]

바깥세상과 떨어져 살아온 사람들이 제 식구를 지키려 쌓은 탑이다.

메스티아에 닿은 건 오후 다섯 시다. 해발 1,500미터, 코카서스 깊숙이 들어앉은 오지의 산악 마을이다. 이곳 메스티아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내일부터 스바네티 트레킹을 시작한다. 높은 지대라 공기가 차다.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⑪ 편으로 이어집니다

거세게 내리치는 마르트빌리 협곡의 폭포.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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