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 ⑦ 편에서 이어집니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89d360374ec4e.jpg)
광천수 마을을 지나다
므트크바리강(Mtkvari River)은 메스헤티(Meskheti)산맥과 트리알레티(Trialeti)산맥이 만나는 자리를 가르며 흐른다. 보르조미 협곡이다. 강 북쪽의 메스헤티와 남쪽의 트리알레티가 마주 선다. 리카니(Likani)는 그 사이 골짜기에 들어앉아 있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b9fb301f8cb50f.jpg)
이곳에서는 물이 지하 1,500미터 아래에서 올라온다. 강 건너 바쿠리아니 산지의 눈과 얼음이 녹아 화산암 틈으로 오래 스며든 물이다. 끌어올리지 않아도 제 힘으로 솟는 광천수다.
마을 안쪽에는 로마노프가의 여름 궁전이 있다. 이 골짜기의 물을 병에 담아 판 니콜라이 로마노프 대공이 주인이었다. 소비에트연방 시기에는 스탈린이 별장으로 썼다. 지금은 조지아 대통령 관저라 가볼 수 없다. 오늘 트레킹 코스도 니콜라이의 이름을 딴 '니콜로즈 로마노프의 길' 가운데 한 구간이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a038aeaf5952ce.jpg)
정류장에서 마을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간다. 길옆으로 땅속에서 올라온 물을 실어 나르는 파이프가 이어진다. 풀밭 한쪽에는 두꺼운 쇠뚜껑으로 덮인 시설물이 있다. 뚜껑 아래로 광천수가 올라온다고 현지 산악 가이드가 일러준다.
숲으로 드는 문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5c28eeb7bdc151.jpg)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든다. 길가에는 이끼 내려앉은 바위와 누군가 세워둔 작은 십자가가 있다. 숲 가장자리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다.
대로변 정류장에서 2km를 걸어가니 국립공원 입산 관리 초소에 닿는다. 인상 좋은 젊은 조지아인이 인원을 세고, 몸이 불편한 사람은 없는지 한 명씩 확인한다. 여기서부터가 보르조미-하라가울리(Borjomi-Kharagauli) 국립공원이다. 해발 800m에서 2,642m 사메츠흐바레오(Sametskhvareo) 봉우리까지, 유럽에서 손꼽히는 크기의 국립공원이 이 문 안쪽에 있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64b54ed966748.jpg)
초소 안내판에는 번호가 매겨진 길들이 적혀 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43km의 니콜로즈 로마노프의 길은 사흘, 54km의 성 안드레아의 길은 나흘이 걸린다. 7km 순환로는 반나절이면 돌아 나온다. 그 가운데 둘은 여기 리카니에서 함께 출발해 한동안 같은 길을 오른다. 갈라지는 자리는 한참 위에 있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f9ed51f0e6bb71.jpg)
비에 씻긴 길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b608732c458c3.jpg)
차 한 대가 지날 만큼 넓고 완만한 임도가 이어진다. 흙길에는 바퀴 자국과 말발굽 자국이 나란히 찍혀 있고, 간간이 말똥도 눈에 띈다. 혹여 밟을까 조심하며 걷는다. 사람만 다니는 길이 아니다. 산 위 목초지로 오르는 말들도 이 길을 지난다.
전날 비가 내려 길은 아직 축축하다. 말갛게 씻긴 나뭇잎이 짙은 초록빛을 띤다. 젖은 흙과 이끼 냄새가 숲을 채운다. 이따금 잎에 맺혔던 물방울이 목덜미로 떨어진다.
길 옆 계곡에도 물이 제법 불었다. 숲에 가려 물길이 보이지 않는 구간에서도 물소리는 걸음을 따라온다. 소리가 잦아들면 계곡에서 멀어지고, 커지면 다시 계곡으로 다가선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eb747d69ee643.jpg)
고도가 높아지면서 잎 넓은 큰 나무들 사이로 침엽수가 섞이기 시작한다. 그늘이 짙어지고 발밑의 이끼가 두꺼워진다. 나무의 지붕 아래로는 빛이 바닥까지 닿지 않는다. 발소리와 바람이 지나는 소리만 남는다.
관리 초소에서 3km 남짓 더 오르니 쉼터와 샘이 나온다. 정류장에서 5km 지점, 두 시간이 걸렸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받는다. 손을 담그니 찌릿할 정도로 차갑다. 물통을 채우고 한 모금 마시니 달아올랐던 열기가 단숨에 가신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e2ebfd6e31cb3c.jpg)
크게 숨을 고른 뒤 다시 길을 나선다. 안내판에서 본 갈림이 여기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산이 몸을 일으키다
5.5km 지점을 지날 무렵 산길이 가팔라진다. 걸어온 임도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다.
경사가 급해질수록 걸음은 느려진다. 길 곳곳에 깊게 파인 물웅덩이가 있다. 차량 바퀴가 지나간 자리마다 흙탕물이 고여 있고, 어떤 곳은 아예 길 한가운데가 늪이다. 가장자리로 비켜 걷기도 하고, 돌을 골라 밟으며 나아간다. 웅덩이 하나를 피하면 금세 또 다른 웅덩이가 앞을 막아선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cf7d8f813e072.jpg)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멈춰 서기를 되풀이한다. 앞뒤로 일행의 숨소리가 들린다. 평지였다면 단숨에 지나갔을 거리가 산에서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멈춰 설 때마다 뒤를 돌아본다. 올라온 길이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다리뿐이다.
빽빽하던 침엽수가 성겨지고, 그 빈자리를 관목이 채운다. 올려다보면 하늘이 한층 넓다.
숲이 끝나는 곳
오르막이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즈음, 길가에 야생화가 하나둘 나타난다. 노란 꽃 하나, 하얀 꽃 몇 송이, 그 사이로 연분홍빛 꽃잎이 고개를 내미는 정도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74959f209b024f.jpg)
오를수록 꽃이 눈에 띄게 풍성해진다. 마침내 시야가 탁 트이는 능선에 다다른다. 쉼터에서 3.5km, 다시 두 시간이 걸렸다. 지천에 야생화다. 이름난 봉우리도 아니고 표지석 하나 없는 공터다.
숲이 끝난 자리에서 하늘이 한꺼번에 내려앉는다. 초록 풀밭 위로 노란 꽃들이 흩뿌려져 있고, 사이사이 분홍색과 보라색 꽃들이 무리를 이룬다. 누가 심은 것도, 누가 보러 오는 것도 아닌데 야생화는 이 능선에서 짧게 피고 지는 일을 오랫동안 되풀이했을 것이다.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몇 걸음 옮기면 어김없이 또 다른 꽃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바람이 능선을 훑고 지나간다. 꽃들이 한쪽으로 일제히 쓸렸다가 수런거리며 제자리로 돌아선다. 일행은 저마다 흩어져 풀밭에 앉거나 사진을 찍는다. 아래 골짜기에는 리카니가 있다. 그 어딘가에 우리가 보지 못한 궁전이 있다.
반 시간을 머문다.
구름이 넘나드는 길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cea93c26f0863b.jpg)
길은 더 이어지지만 여기서 몸을 돌린다. 길은 골짜기에서 올라온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난다. 구름이 능선을 넘나드는 사이, 눈은 사라진 길을 자꾸 되짚는다.
내려가는 걸음은 빠르다. 올라올 때 네 시간 걸린 길을 두 시간 남짓 걸려 내려선다. 물웅덩이는 여전히 피해 걷는다. 숲이 다시 닫히고, 물소리가 걸음을 마중 나온다. 젖은 흙과 이끼 냄새는 아침보다 짙다.
물통에 남은 샘물을 마신다. 아직 차다.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⑨ 편으로 이어집니다
![리카니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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