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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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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강이 만나고 두 성당이 마주 보는 곳, 므츠헤타(Mtskheta)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③ 편에서 이어집니다

십자가가 세워진 언덕, 즈바리 수도원(Jvari Monastery)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트빌리시에서 약 20km 떨어진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를 지나 산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이곳에는 4세기 성녀 니노(Saint Nino)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한 뒤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순례와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훗날 그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언덕위의 즈바리 수도원. [사진=박성기작가]

조지아어로 십자가를 뜻하는 '즈바리'라는 이름도 바로 이 십자가에서 비롯되었다. 성녀 니노의 십자가에서 시작된 이 언덕은 지금도 조지아인들에게 특별한 신앙의 자리로 남아 있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즈바리 수도원의 나무십자가. 이안에 성년 니노의 머리카락으로 엮은 십자가가 들어있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박성기작가]

단단한 돌로 지은 즈바리 성당은 낮은 출입문과 중앙의 돔을 이고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의연하게 서 있다. 수도원을 둘러싼 외벽은 세월 속에 허물어져 일부만 남아 있지만 성당 건물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성녀 니노와 십자가. [사진=박성기작가]

낮은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밝은 바깥에서 곧바로 들어와서인지 처음에는 내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잠시 그대로 서 있으니 어둠에 눈이 익으면서 작은 창으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과 거친 돌벽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화려한 장식은 거의 없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을 돌벽과 성화, 그리고 제단 앞에서 흔들리는 작은 촛불들이 있을 뿐이다. 그 불빛이 천오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조지아 사람들의 믿음을 지켜주는 듯하다. 성당 내부가 그리 넓지 않아 끊임없이 들어오는 관광객과 순례객들로 금세 북적인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언덕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이따금 땀을 식혀주지만 한낮의 태양은 여전히 강렬하다.

두 강이 만나는 므츠헤타의 풍경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왼쪽에서 흘러오는 강은 아라비그강이고 북쪽에서 내려오는 강은 쿠라강이다. 합류해서 오른쪽으로 흘러 티블리시로 들어간다. [사진=박성기작가]

수도원 전망대로 가 아래를 바라본다. 대코카서스산맥의 눈과 빙하가 녹은 물을 품고 내려온 푸른빛의 아라그비강과 짙은 갈색의 므트크바리강이 이곳에서 만난다. 빛깔이 다른 두 물줄기는 각자의 물빛을 간직한 채 한동안 나란히 흐르다가 서서히 하나가 된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앞 므츠헤타 거리. [사진=박성기작가]

두 강이 만나는 물길 너머로 므츠헤타 시가지가 펼쳐진다. 강가를 따라 조그마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한가운데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의 높은 원뿔형 돔이 주변의 지붕들 위로 우뚝 솟아 있다.

즈바리가 바람 부는 언덕 위에서 도시와 강을 내려다본다면,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다. 두 성당은 두 강과 므츠헤타 시가지를 사이에 두고 언덕과 마을에서 서로 마주 바라본다.

마을 한가운데 선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Svetitskhoveli Cathedral)

언덕을 내려와 므츠헤타 마을로 들어선다. 돌길 양쪽으로 작은 상점들이 이어지고 기념품과 먹거리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붙든다. 골목과 지붕 사이로 대성당의 높은 돔이 언뜻언뜻 나타났다 사라진다. 멀리서는 뾰족한 지붕 하나만 두드러지다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성벽과 출입문, 석조 외벽의 부조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정면에서 바라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을 에워싼 높은 성벽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단순한 담장이라기보다 하나의 성채처럼 보여, 문을 통과하는 순간 작은 성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성벽 안에 들어서자 거대한 대성당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십자형의 거대한 건물 위로 높은 돔이 솟아 있다. 언덕 위에서 낮고 단단하게 응축되어 보이던 즈바리와 달리, 스베티츠호벨리는 하늘을 향해 치솟는 듯 웅장하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후면에서 바라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스베티츠호벨리는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의미이다. 전승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그리스도의 옷을 시도니아라는 여인이 받아 품은 채 숨졌고, 그 옷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무덤 위에서는 삼나무가 자랐고, 훗날 그 나무로 성당의 기둥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움직이지 않자, 성녀 니노가 밤새워 기도했고, 마침내 기둥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전한다. 그 기둥에서 신비로운 치유가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며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스도의 옷이 묻혀 있다고 믿어지는 이곳은 지금도 조지아 정교회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장소 가운데 하나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9.대성당 들어가는 입구. [사진=박성기작가]

생명을 주는 기둥과 오래된 기도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높은 돔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 아래 신자들은 촛불을 밝히고 성호를 긋는다. 성화에 이마를 대는 사람도 있고, 한자리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은 채 기도하는 이들도 있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사제와 신랑신부. 하객과 관광객들. [사진=박성기작가]

한쪽에는 결혼식을 기다리는 신랑 신부 여러 쌍이 서 있다. 조지아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당에서 혼인을 올리려는 이들이다. 한 부부의 예식이 끝나면 다음 부부가 차례로 사제 앞으로 나아간다.

화려한 예식장도, 요란한 음악도 없다. 신랑과 신부가 촛불과 성화 앞에 서면 사제는 기도문을 노래하듯 읊으며 두 사람을 축복한다. 낮고 굵은 음성이 높은 천장 아래로 길게 번진다. 그것은 말이라기보다 노래에 가깝고, 노래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이어온 기도처럼 들린다.

신랑과 신부는 사제의 집전에 따라 나란히 서서 성호를 긋는다. 긴장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 환하다. 수백 년 동안 수많은 기도가 쌓인 공간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모습이 이채롭고 아름답다. 성당 안에서 오래된 기도와 새로운 혼인의 기쁨이 한데 겹친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가시면류관의 고통에도 평온하고 신비한 표정. 처음엔 눈을 감고있는데 계속 보면 눈이 뜨는 것같은 신비한 그림 [사진=박성기작가]

성당 안을 천천히 둘러보다 한 기둥에 그려진 예수의 성화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짙고 검은 눈매 때문인지 처음에는 두 눈을 감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감긴 듯했던 눈이 어느 순간 열려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리를 조금 옮겨도 그 눈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낸 착시인지, 화가의 섬세한 표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오래 바라볼수록 성화 속 예수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치는 듯하여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생명을 주는 기둥과 삼위일체화. 왼쪽 성자 예수, 오른쪽 성부 하느님, 상단의 비둘기는 성령. [사진=박성기작가]

대성당 안은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 계속해서 들어오는 관광객과 순례객들로 북적인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와 높은 성벽의 문을 빠져나온다.

성당 밖에서 만난 또 하나의 조지아

날이 더워 성당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시원한 음료를 주문한다. 햇볕은 뜨겁지만 그늘에 앉으니 금세 서늘해진다. 옆자리에는 조지아 사람들과 정교회 사제 한 분이 함께 앉아 있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춤을 추는 조지아인. 좌측으로 사제가 보인다. [사진=박성기작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웃음소리가 퍼지고 분위기가 금세 흥겨워진다. 사제도 우리 쪽으로 연신 음료를 건네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환하게 웃는다.

조금 전까지 성당 안에서 낮고 엄숙한 기도와 성가를 들었는데, 성당 밖에서는 사제와 사람들이 함께 웃고 노래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앙과 일상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듯한 모습이 새삼 인상적이다. 엄숙함과 흥겨움이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섞이는 모습 역시 내가 여행길에서 만난 또 하나의 조지아다.

<11> 코카서스를 걷다, 조지아를 만나다⑤편으로 이어집니다

성으로 둘러쌓인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사진=박성기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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