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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은경 장학관: 한 아이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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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에서 장학사로 그리고 보건장학사 최초의 교감, 교장으로,

전국 최초 설립된 경기도 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 센터장까지…

[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전은경 장학관과의 두 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건강'도, '센터'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끊임없이 '사람'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 한 명의 제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기억, 세월호 이후 더욱 절실해진 생명의 가치, 그리고 지금도 학교 어딘가에서 도움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전은경 장학관 [사진=전은경]

경기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를 이끌고 있는 센터장을 만났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기억에 남은 것은 한 기관이 아니라 한 명의 교육자였다. 전은경 장학관은 정책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말하는 교육자였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장로인 아버지와 권사인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책임감과 섬김의 자세를 배웠다. 특히 지금도 그녀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어머니의 기도이다.

어머니는 첫째는 간호사, 둘째는 교사, 막내는 의사가 되기를 기도하셨다. 훗날 세 남매는 모두 그 길을 걸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꿈이다. “꿈을 꾸세요. 기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녀에게 꿈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나침반이다.

인형극회 봉사활동 (안양 중앙초) [사진=전은경]

간호사가 된 데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지만, 결국 그녀를 움직인 것은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병원에서 생명을 돌보던 그녀는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잠시 간호사를 떠났으나, 우연히 찾아온 보건교사 임용시험이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시험이었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작은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공부했으며, 스스로도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예상치 못한 합격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서른 살이 되면 시골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교육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발표했던 꿈이 정확히 서른 살에 안성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현실이 되었다. 그녀는 이를 우연이 아니라 삶이 응답한 꿈이라고 기억한다.

적십자 보건 강사회 봉사활동 (안성 공도초) [사진=전은경]

보건교사로서의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보건교사는 교육의 중심보다는 주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보건실은 학교 밖 야외 화장실 자리에 위치한 4평 남짓한 구석에 있었고, 손님 접대와 잡무까지 맡아야 했다. 하지만 전 장학관은 불평하기보다 해결 방법을 찾았다. 교육청 관계자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보건실로 안내하여 열악한 환경을 직접 보여주었다. 결국 학교는 예산을 확보해 중앙 현관에 새로운 보건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말한다. "위기를 만나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보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녀에게 위기는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변화를 만드는 출발점이었다. 보건교사, 보건장학사 출신으로는 최초로 초등학교 교감과 교장을 역임한 그녀의 길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편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사실보다, 그 길을 통해 후배들이 더 이상 같은 편견을 겪지 않게 된다는 점을 더 의미 있게 여긴다.

"첫 발자국을 내딛는 사람은 늘 무겁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걸어야 다음 사람이 편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그녀의 리더십은 앞에 서는 리더십이 아니라 길을 내는 리더십이었다.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오래 머문 이야기는 학생건강증진센터가 아니었다. 한 명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만난 한 아이는 알코올 의존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학교에 오지 못하는 이유는 화상을 입은 삼촌을 병원에서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 장학관은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기초생활수급을 연결하고, 지역사회를 설득하며, 장학금을 마련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을 지켰다. 전교 꼴찌였던 아이는 훗날 전교 1등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해 교사가 되었다. "지금도 스승의 날이면 남편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은사를 찾아옵니다. " 그녀는 이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 한 문장은 교과서에서 배운 교육철학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얻은 결론이었다.

캄보디아 라이프대학 봉사활동 [사진=전은경]

세월호 참사는 그녀의 교육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현장에서 생존 학생 지원과 보건교사 지원 체계를 구축하며 아이들의 생명과 마주했던 경험은 지금도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래서 안전 교육, 스마트폰 사용 습관, 건강 교육 모두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아이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 질문은 지금도 그녀의 모든 정책과 기획의 출발점이다.

현재 그녀가 이끄는 경기도 학생건강증진센터 역시 같은 철학에서 출발했다. AI 기반 건강 체험, 응급처치, 중독 예방 교육, 찾아가는 건강 교육 등 겉으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지만, 그녀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시설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한 사람의 헌신은 언젠가 끝나지만, 시스템은 다음 사람에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료인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학생을 돌보는 건강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그녀의 다음 꿈이다. 퇴직 이후에도 계속 작동하는 시스템을 남기는 것, 그것이 지금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말한다.

학생건강증진센터 학생 체험활동 [사진=전은경]

인터뷰를 마치며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전은경 장학관은 담담하게 말했다.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다.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다. 힘들더라도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위치에 있는가보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가?”

그 질문이 그녀를 계속 도전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그녀의 동기가 되어 움직이게 했다. 제약이 많고 지칠 때도 있지만, 그저 일할 수 있는 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을 뿐이다. 교장으로서 한 학교와 마을을 살렸듯, 이제는 도시를 살리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녀의 직함은 간호사에서 보건교사, 교감, 교장, 장학관으로 바뀌어 왔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직업은 바뀌어도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 모든 직책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그 목적은 단 하나, 한 아이의 삶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녀가 평생 실천해 온 교육의 정의다.

/수원=박상욱 기자(sangwook@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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