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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사람들] “행사는 행복이다”…남달리 대표가 38년간 마이크를 놓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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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꿈꾸며 시작한 레크리에이션…여성 MC 편견 넘어 현장 지켜
코로나로 멈춘 전화에 느낀 단절감…“나를 찾아주는 것이 가장 큰 행복”

[조이뉴스24 양찬희 기자] “남달리 강사님이시죠? 스케줄 좀 확인해 주세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행사 문의 전화다. 그러나 행사 현장을 38년간 지켜온 남달리 좋은세상이벤트 대표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장 반가운 목소리다.

남달리 대표는 지난 23일 조이뉴스24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38년간 마이크를 놓지 않은 이유와 행사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행사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행복”이라고 답했다.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 날이 오겠죠.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코로나 때 느꼈던 단절감을 생각하면 지금처럼 찾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됩니다. ‘남달리 강사님이시죠?’라는 전화, ‘스케줄을 확인해 달라’는 말을 들을 때의 행복만큼 큰 것은 없을 것 같아요.”

남달리 좋은세상이벤트 대표가 전국 여선교회 찬양제에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웨슬리안타임즈]

◇ 개그맨 꿈꾸던 고3 학생, 행사 무대에 서다

남 대표와 행사의 인연은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시작됐다. 당시 개그맨을 꿈꾸던 남 대표는 레크리에이션을 배워두면 개그맨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아르바이트를 겸해 선배 강사들을 따라 캠프와 수련원에서 교관으로 활동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되는 것이 처음부터 목표였던 것은 아니었다. 무대에서 사람을 웃기는 방법을 배우고 이를 개그에 활용하려 했던 선택이 38년 동안 이어질 직업의 출발점이 됐다.

남 대표는 “당시 강사들은 학력이 높고 지도자라는 자부심도 강했다”며 “저는 그 사이에서 ‘잘 배워서 개그에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레크리에이션 강사는 지금보다 희소성과 전문성이 높은 직업이었다. 남 대표에 따르면 20대 초반의 월급이 2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던 시절, 이름난 강사들은 행사 한 번에 30만원가량을 받았다. 남 대표의 대학 등록금이 100만원 정도였던 때였다.

남 대표는 개그맨의 꿈도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약 7년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의 개그맨 선발대회에 도전했고 MBC 대회에서는 최종 50명 안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레크리에이션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일을 이어가면서 행사는 어느새 꿈을 위한 과정이 아닌 남 대표의 삶 자체가 됐다.

좋은세상이벤트의 첫 사무실은 서울 광장동에 마련됐다. 이후 남 대표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로 이사하면서 회사도 성남으로 자리를 옮겼다.

◇ “여자 강사는 약하다”는 편견을 실력으로 바꿔

남 대표가 일을 시작했을 당시 여성 레크리에이션 강사와 여성 MC는 흔하지 않았다. 남성보다 진행력이 약하고 목소리가 힘없이 들릴 것이라는 편견도 강했다.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섭외를 취소하는 업체도 있었다. 전화로 “남성 강사인 줄 알았다”며 거절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남 대표는 그때마다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을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저는 여자지만 남자보다 더 파워풀하고 재미있게 진행한다고 말했어요. 너무 속상할 때는 행사하는 모습을 본 뒤 결정하라며 잘하지 못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었죠.”

낮은 기대치는 무대가 시작된 뒤 오히려 장점으로 바뀌었다. 남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참가자들을 이끌기 시작하면 남 대표를 의심하던 사람들의 눈빛과 반응도 달라졌다.

행사를 마친 관계자가 허리를 굽혀 감사 인사를 건네거나 현장에 있던 참가자들이 명함을 받아갈 때면 그동안의 서러움도 사라졌다. 한 번 행사를 지켜본 사람들이 다른 고객에게 남 대표를 소개하며 새로운 ‘영업사원’이 돼줬다.

남 대표는 “여자 강사라고 믿지 못하던 사람들이 진행을 보면서 달라지는 순간이 가장 보람 있었다”며 “‘남달리라는 여자 강사가 있는데 정말 잘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유아부터 노인까지…행사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다

좋은세상이벤트는 연령과 분야를 가리지 않는 종합 이벤트 업체다. 유아부터 학생·대학생·직장인·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운동회 △지역 축제 △레크리에이션 △캠프 △강의 등을 진행한다.

무대·음향·조명·행사 물품 대여부터 현장 진행까지 행사 전반을 맡는다.

남달리 대표가 체육관에서 참가자들과 단체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좋은세상이벤트]

남 대표가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고객의 만족도다. 행사를 의뢰한 사람과 참가자 모두가 충분히 웃고 어색함을 풀며 서로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 남 대표의 원칙이다.

남 대표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서로 친해지며 단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말 원 없이 웃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돌발 상황에 대처할 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융통성’을 꼽았다.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다는 설명이다.

음향 장비가 고장 나거나 스피커가 터지고, 행사 도중 전원이 끊기는 일은 물론 참가자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술에 취한 사람이 소란을 일으키는 상황도 겪었다.

한 수련원 장기자랑에서는 무대에서 춤을 추던 학생에게 갑작스럽게 발작 증상이 나타났다. 남 대표는 주변 학생들에게 해당 학생을 몸으로 가리도록 하고 조명을 끄게 했다. 이어 119에 신고하도록 한 뒤 필요한 응급조치를 하고 학생을 무대 뒤편으로 옮겼다.

공연을 지켜보던 수백명의 학생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남 대표는 해당 학생이 다른 학생들의 시선으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남 대표는 “오랜 경력 동안 융통성이 많이 늘었다”며 “행사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현장 상황을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수만명 앞에서 폭행당해도 다음 현장으로

화려하고 즐거워 보이는 행사 현장에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위험도 존재한다.

남 대표는 강원도에서 열린 농민 행사 도중 술에 취한 참가자에게 폭행당한 일을 가장 힘들었던 기억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수만명이 모인 행사에서 마지막 행운권 추첨을 진행하던 중 한 참가자가 무대로 다가왔다. 경품에 당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남 대표의 인중을 때렸다. 남 대표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현장에 있던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했다.

입술이 크게 붓고 치아가 흔들릴 정도로 충격이 컸지만 다음 날에도 예정된 행사가 있었다. 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남 대표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남 대표는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다음 일을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며 “그래도 다음 날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으로 가야 했다”고 돌아봤다.

남 대표가 꼽은 또 다른 어려움은 업계가 사회적 이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 이태원 참사처럼 국가적인 애도 기간이 선포되거나 감염병이 확산하면 행사는 가장 먼저 취소된다. 업계 종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사실상 휴업이나 폐업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성수기에는 몸이 하나여서 진행할 수 있는 행사 수에 한계가 있다. 비수기에는 일이 줄어 직원 월급과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 불이 나던 전화가 멈춘 시간

코로나19는 30년 넘게 쉼 없이 달려온 남 대표의 일상을 완전히 멈춰 세웠다.

그전까지 남 대표의 휴대전화는 늘 행사 문의로 분주했다. 두 시간가량 강의를 하느라 전화기를 꺼두면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10건 이상 쌓여 있었다. 주말과 성수기에는 문의가 더욱 몰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확산한 뒤 가장 바빠야 할 주말에도 전화가 울리지 않았다.

남 대표는 당시의 감정을 ‘공허함’과 ‘단절감’이라고 표현했다.

“30년 넘게 반복돼온 삶의 순환이 갑자기 끊어진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연락이 없을 수 있나’,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폐쇄 공포증과 비슷한 감정까지 들었죠. 그때 많은 사람이 나를 찾아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수입이 끊긴 현실도 막막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직원들을 내보내야 했고 빚도 늘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든 2023년에는 미뤄졌던 행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루에 3건에서 4건을 소화할 정도였다. 이미 흩어진 직원들을 다시 모으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남 대표는 밀려드는 현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번 돈으로 코로나 시기에 생긴 빚도 차근차근 갚았다.

규모나 수입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행사를 계속 맡는 이유는 현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남 대표는 “어떤 연령대의 행사를 한 번 피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그 행사가 두려워진다”며 “돈이 많고 적은지를 따지기보다 봉사 현장이라도 꾸준히 참여해야 감각과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직도 나를 찾아주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며 “행사는 내가 하고 싶다고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찾아줘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덧붙였다.

남달리 대표가 야외 행사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남달리 대표 제공]

◇ 웃음으로 이어진 노사 화합과 관계 회복

남 대표에게 행사는 단순히 사람들을 웃게 하는 자리가 아니다. 갈등을 풀고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 자리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 가운데 하나는 서울 가리봉동의 한 가죽 의류 공장에서 열린 송년 행사다. 당시 공장에서는 약 200명의 직원과 경영진이 오랜 기간 갈등을 겪고 있었다.

남 대표는 참가자들이 충분히 웃고 어울릴 수 있도록 행사를 진행한 뒤 서로의 입장을 돌아보게 했다.

직원들에게는 가정과 삶의 기반이 돼준 회사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경영진에게는 열악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직원들의 노고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남 대표의 제안에 따라 양측은 서로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직원과 경영진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남 대표도 함께 울었다.

분열돼 있던 한 교회의 수련회도 잊지 못하는 현장이다. 약 300명이 다니던 교회가 갈등으로 양쪽으로 갈라져 서로 다른 공간에서 수련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남 대표는 행사를 마무리하며 양쪽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서로를 탓하기보다 먼저 돌아보고 포용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후 참석자들로부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는 연락도 받았다.

해당 교회의 행사를 약 5년 동안 이어갔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하던 교인들도 조금씩 관계를 회복했다. 4년째에는 약 250명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행사를 진행했다.

남 대표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 필요한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것도 진행자의 역할”이라며 “어디를 가든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마이크를 잡는다”고 말했다.

남달리 대표가 한 행사에서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있다. [사진=남달리 대표 제공]

◇ “좋은 행사는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것”

남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행사는 화려한 무대나 많은 예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참가자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서로 단합하며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행사가 좋은 행사다. 마지못해 참여했던 사람에게 다시 움직일 동기를 주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도 행사의 역할이다.

남 대표는 좋은세상이벤트와 함께한 행사 관계자와 참가자들이 “최고였다”, “정말 즐거웠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기억해주길 바란다.

현재와 같은 현장 활동은 70세가 되기 전까지 이어갈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 명랑운동회나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기 어려워지더라도 노인복지 프로그램·웃음치료 등을 통해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여가에는 목공을 취미로 즐기고 싶다는 소망도 품고 있다.

특히 “1년 치 웃음을 다 웃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오랫동안 우울감으로 웃지 못했다는 참가자가 행사가 끝난 뒤 연락처를 받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적도 있다.

남 대표는 38년 동안 현장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사람들의 ‘찾아줌’과 ‘인정’을 꼽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섭외를 거절당했던 신인 강사는 이제 수많은 현장을 거쳐 후배들이 먼저 알아보는 베테랑이 됐다.

개그맨을 꿈꾸며 배웠던 레크리에이션은 직업이 됐고 직업은 다시 삶의 행복이 됐다.

남달리 대표가 실내 행사에서 마이크를 들고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남달리 대표 제공]

남 대표는 언젠가 자신의 전화가 다시 조용해질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울리는 전화 한 통이 더욱 소중하다.

“사람들이 저를 찾아주고 ‘잘한다’고 인정해준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누군가 저를 필요로 하고 제가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제게는 행복입니다.”

/성남=양찬희 기자(cx53503@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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