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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10> 금강 억새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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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성지에서 성당포구까지
끝없이 펼쳐진 억새 바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나바위성지와 마애삼존불, 기도가 머문 자리

나바위성지는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 자리하고 있다.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형상의 화산(華山), 망금정 뒤편에 있는 넓고 평평한 바위를 '나바위'라 불렀고, 이곳에 자리한 성지도 그 이름을 따라 나바위성지라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 땅에 첫발을 디딘 것을 기념하는 성지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나바위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나바위성당의 정면은 서양식 붉은 벽돌 탑 모양이며 한옥의 지붕선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신자석의 배치가 남녀를 구분하던 옛 흔적이 남아있다. 성당 뒤편 길을 따라 오르면 화산 정상의 망금정(望錦亭)에 이른다. 이름을 풀이하면 '금강을 바라보는 정자'이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화산 정상의 망금정. 바로 뒤가 나바위다 [사진=박성기 작가]

정자 뒤 바위에 올라 바라본다. 그러나 금강이 보이지 않고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금강 물길이 화산 앞까지 닿아 김대건 신부를 태운 배도 바로 망금정 아래까지 들어왔다. 간척 이후 금강은 저 멀리 둑 너머로 물길을 옮겨 흐르고 있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위에 새겨진 연대미상의 마애삼존불 [사진=박성기 작가]

망금정 바로 아래 바위에는 화산리 마애삼존불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정확한 조성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성당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은 금강을 오가던 사람들의 기도처였을 것이다. 천주교 성지 안에 남아 있는 마애삼존불은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또 다른 기도의 흔적이다. 성당의 종소리와 바위에 새겨진 불상의 자취가 한자리에 머문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나바위 아래 김대건 신부를 태우고 온 라파엘호 모형 [사진=박성기 작가]

금강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큰 물길이었다. 이곳 화산리는 강경포구 강경읍의 바로 남단이다. 강경포구는 백제 부흥의 백천강 전투시 군선이 들어왔고 조선시대 세운선이 모여들고 일제강점기에 중부 내륙으로 통하는 물산집결지였다. 오랜 시간 이 강을 따라 배가 다니고, 포구에는 삶이 모였다. 사람들은 무사히 강을 건너기를, 배가 돌아오기를, 만선과 평안을 빌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믿음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모두 삶의 무사함과 돌아오는 이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있다.

화산 뒤편으로 돌아선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태우고 왔다는 배, 라파엘호의 모형을 바라보며 옛 물길의 흔적을 상상하고 금강으로 향한다.

금강 따라 걷는 길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금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하다 [사진=박성기 작가]

둑 위로 올라서자 금강의 도도한 흐름이 눈앞에 펼쳐진다. 강 건너는 충청도 땅이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충청도가 마주하고 있다.

금강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억새와 갈대의 길이다. 그 길은 단조로운 듯하지만 심심하지 않다. 서두를 것도 없고, 앞질러 갈 것도 없다. 금강은 말없이 흐르고, 길은 그 흐름을 따라 천천히 이어진다.

강변을 낀 용두산 자락을 지난다. 강가의 풀들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빽빽하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억새와 갈대가 길 양옆을 가득 메운다. 줄기는 곧고, 길게 뻗은 잎들은 초록의 칼날처럼 햇빛을 받아 번득인다. 보이지 않는 숲 그늘 어딘가에서 검은등뻐꾸기 울음이 아득하게 번져 온다. 그 소리는 한낮의 열기 속으로 스며들어, 길 위에 잠시 낯선 적막을 내려놓는다. 바람이 없을 때는 풀들은 숨을 죽인 듯 서 있다가, 바람이 스치면 일제히 몸을 기울이며 낮은 물결을 만든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바람개비길의 바람개비. [사진=박성기 작가]

길은 바람개비길로 이어진다. 바람개비들은 강바람을 받아 자꾸만 몸을 돌린다. 끼륵끼륵,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가창오리 떼가 하늘에 검은 물결을 그리며 군무를 펼칠 때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이 길에서 바람개비는 강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작은 표지 같다.

바람개비길과 갈대수피아

바람개비길을 걷다 보면 '갈대수피아' 조형물이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갈대보다는 억새와 물억새의 물결에 가깝다. 갈대와 억새가 뒤섞인 금강변 습지를 사람들은 갈대숲이라 부른다. 그 이름 안에는 강바람과 풀빛, 물가에 기대 살아온 들의 정서가 함께 담겨 있는 듯하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바람개비길의 습지. [사진=박성기 작가]

금강을 따라 걸으며 끝없이 펼쳐진 억새의 바다를 본다. 내 키를 훌쩍 넘어 하늘을 가릴 만큼 웃자란 억새는 초여름의 힘을 온몸에 품고 있다. 아직 꽃을 피우지 않은 억새는 은빛도 황금빛도 아니다. 푸른 줄기와 긴 잎들이 빽빽하게 엉켜 초록의 장막을 이루고, 햇빛이 내려앉을 때마다 번뜩인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억새는 부드럽기보다 날카롭고, 서로 몸을 스칠 때마다 사각사각 마른 듯 젖은 듯한 소리를 낸다.

강가의 억새는 강바람을 붙잡고, 햇빛을 받아내고, 물가의 습기를 끌어올리며 무성하게 자란다. 그것은 가을의 서정이 아니라 여름을 밀고 올라오는 생명의 기세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억새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사진=박성기 작가]

초여름, 억새의 푸른 물결

한낮의 볕은 공기마저 달군다. 모자 아래로 땀이 흐르고, 등줄기는 축축하게 젖는다. 이따금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그늘을 만든다. 구름 한 조각이 햇볕을 막아주는 순간, 달아오른 몸이 잠시 식는다. 그러다 강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억새와 갈대가 먼저 몸을 흔들고, 그 바람이 뒤늦게 얼굴과 목덜미에 닿는다. 그 짧은 서늘함만으로도 다시 걸을 힘이 생긴다.

걷는 사람도 시나브로 강물의 속도에 맞춰 느려진다. 이 길에서는 느려지는 것이 오히려 길을 제대로 걷는 일이다.

억새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바람에 고개를 숙이는 억새의 길은 걷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여운을 준다. 발밑의 흙, 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억새 스치는 소리가 어우러져 천천히 하나의 장면이 된다.

성당포구, 떠남과 돌아옴의 자리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성당포구 들어서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성당포구다. 포구는 물이 모이고, 배가 닿고,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포구에서 금강을 바라본다. 배는 예전처럼 오지 않고, 오가는 사람의 수런거림도 번다함도 모두 사라졌지만 강은 여전히 그 자리를 흐른다.

걷는다는 것은 장소와 장소를 잇는 일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나바위성지에서 만난 신앙의 시간, 마애삼존불 앞에서 만난 오래된 기도의 시간, 금강에서 바람에 이는 억새의 시간을 만났고, 성당포구에서는 떠남과 돌아옴의 시간을 만났다.

나바위성당에서 시작된 걸음이 이름 그대로 성당(聖堂)인 성당포구에서 마무리하는 것은 묘한 신비함을 전해준다. 예보와 다른 날씨를 탓하며 걸어온 길이지만, 그 수미일관에 그 뜨거움마저 금강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나바위 성당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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