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9> 지리산 천왕봉 가는 길① 편에서 이어집니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75c8c631493b6c.jpg)
연하천은 밤새 머금은 서늘한 기운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맑게 갠 하늘 아래 숲은 한층 짙어진 초록으로 빛난다. 이른 아침, 햇살은 나뭇잎에 맺힌 이슬 위에서 반짝이며 대피소와 데크 위로 잘게 부서진다. 산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아침 7시, 대피소를 뒤로하고 다시 배낭을 어깨에 올린다.
연하천을 떠나 형제봉으로 향한다
길게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선다. 완만한 길에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숲과 어우러진 길은 맑은 날씨를 만나 더없이 아름답다. 이보다 더 좋은 아침이 있을까.
삼각고지를 지나면서 짧은 오르내림과 돌길이 차츰 많아진다. 형제봉에 가까워질수록 바위와 나무뿌리가 뒤섞여 발밑을 살펴야 한다. 능선 위에서 바라보면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긴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펼쳐진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da5e232ee6e625.jpg)
형제봉(1,452m)은 나란히 마주한 봉우리의 모습이 형제를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형제봉을 지나면 오래된 지리산의 숲이 펼쳐진다. 비틀어진 고목, 바위 위를 덮은 푸른 이끼, 땅 위로 드러난 굵은 나무뿌리 등에 지리산이 품어온 긴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3414da1be9934.jpg)
오전 8시 30분, 푸른 하늘 아래 벽소령고개와 대피소에 닿는다. 본래 벽소령에서 달을 보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벽소령은 이름 그대로 ‘푸른 밤하늘의 고개’다. 산 위로 달이 떠오르면 달빛은 희다 못해 푸르게 빛나며, 이 풍경은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곳은 옛날 함양과 남원 사람들이 소금을 구하기 위해 넘던 고개이기도 하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0a093603454c77.jpg)
벽소령대피소를 지나 세석으로 향하는 길가 바위에는 '봉산정계(封山定界)'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국가가 필요한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 산에서 소나무 벌목을 금했던 조선 시대의 흔적이다.
덕평봉(1,522m) 정상부를 직접 오르지 않고 산허리를 돌아 들어간다. 지리산 주능선을 걷다가 만나는 반달가슴곰 출현 주의 알림종을 울리며 지나간다. 곰에게 사람의 존재를 알리는 종소리는 앞뒤 산행자 사이의 신호도 된다. 댕그렁댕그렁 맑은 소리가 능선에 울려 퍼진다.
선비샘에 도착한다. 차가운 물을 손바닥에 받아 얼굴을 적신다. 한 모금 마시니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하다. 내 뒤로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선다. 산은 누구의 이름도 묻지 않는다. 그저 목마른 이에게 맑은 물 한 모금을 내어줄 뿐이다. 물을 보충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289b53746bd6b3.jpg)
선비샘을 지나자 길이 가팔라지고 힘겨운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제 다 왔나 싶으면 또다시 오르막이다. 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뒤돌아보니 조금 전 힘겹게 올라온 길은 이미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칠선봉(1,558m)에 이른다. 지리산의 큰 바위 봉우리들이 연달아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처럼 보여 칠선봉이라 한다.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1,652m)으로 향한다. 영신봉이라는 이름에는 '신령한 기운이 깃든 봉우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거대한 산 앞에 서면 인간은 작아지고, 작아진 만큼 오히려 세상을 넓게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지리산이 사람에게 주는 가르침일 것이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8b4272d813b230.jpg)
영신봉을 넘어서니 시야가 열린다. 눈앞에 세석평전이 펼쳐진다. 마치 깊은 숲의 문을 열고 하늘 가까운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 듯하다. 세석(細石)은 작은 돌들이 널리 깔린 평원이라는 뜻이다. 봄이면 수많은 철쭉이 능선을 붉게 물들이는 곳으로 이름 높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9f413e58c5b281.jpg)
내가 찾은 초여름의 세석평전은 이미 철쭉의 계절이 거의 지나 있다. 한때 산을 붉게 태웠을 꽃들은 대부분 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곳곳에 남은 몇 송이 철쭉만이 마지막 봄의 흔적을 지킨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c64f7d24cbc713.jpg)
세석대피소에 도착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보충한다. 오랜 산행 끝에 마시는 물 한 모금은 도시의 어떤 음료보다 달고 귀하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종주길에서 먹는 소박한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며, 다음 능선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작은 의식과도 같다. 잠시 쉰 뒤 몸을 일으켜 다시 배낭을 멘다. 아직 지리산이 숨겨둔 가장 아름다운 길이 기다리고 있다.
[박성기의 도보기행]<9> 연하선경, 하늘과 맞닿은 길③ 편으로 이어집니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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