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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8> 연강나룻길, 그림과 평화가 흐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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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 임진강의 또다른 이름⋯분단의 상처를 품은 강이다"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연강(漣江)'은 연천을 흐르는 임진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임진강은 북한 마식령산맥의 두류산 남쪽에서 발원해 남한 땅으로 흘러와, 여기 연천에서 한탄강과 합류한 뒤 한강 하류로 흘러가는 강이다. 오래전에는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길이지만, 지금은 분단의 상처를 품은 강이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두루미가 길을 여는 강가에서

연강나룻길의 시작은 두루미테마파크로, 두루미의 고장 연천을 상징한다. 겨울이면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임진강 일대의 들판과 습지를 찾아온다. 사람의 길은 막혀 있지만, 새에게는 남과 북의 경계가 없다. 경계를 가르는 철책은 있어도 강은 흐르고, 새는 날아 하늘을 건넌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두루미테마크 [사진=박성기 작가 ]

두루미테마파크와 군남홍수조절댐은 같은 곳에 있다. 군남홍수조절댐을 뒤로하고 강을 따라 산자락으로 조용히 이어진다. 임진강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마치 멈춰있는 듯 서서히 흐른다. 저만치 산을 휘감아 돌며 내려오는 강물은 하늘을 품고 옅은 하늘색으로 빛난다. 천천히 걸으며 흘러오는 강물을 마주한다.

여울길, 낮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모래톱이 보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강은 때론 무섭게 휘돌다가도 어느 구간에서는 낮고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오늘 마주한 강은 한가롭다. 길의 이름이 여울길이듯 강심이 낮아 모래톱이 보이고, 낮게 흐르는 물의 흐름이 보인다. 물살이 돌에 부딪치고, 그렇게 부서진 물결 위로 햇빛이 내려와 은빛으로 반짝인다. 강물 소리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고, 바람으로 느낀다.

옛 마을의 흔적, 큰 나무 아래 쉬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여울길. [사진=박성기 작가 ]

여울길을 지나 낮은 고개를 넘자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땅이 나타난다. 낮은 산과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분지와 같다. 곳곳에 담장과 집터를 쌓았을 돌들이 무더기로 모여 있고, 길가에는 당산나무 같은 큰 나무 한 그루가 넉넉한 그늘을 품고 길손을 기다리듯 서 있다. 이 자리로 보아 옛 마을의 흔적임을 보여준다. 큰 나무 아래 쉬며 목을 축인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쉴 곳을 제공해주는 큰 나무 [사진=박성기 작가 ]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도 연강으로 나가는 길은 열려있다. 예전의 연강은 지금처럼 조용한 강이 아니다. 강은 물고기를 잡는 삶의 터전이고, 바깥으로 나가는 교통로다. 지금은 배가 사라지고 강물만 조용히 흐른다.

연강전망대, 굽이치는 물길을 굽어보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연강전망대로 가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

분지형의 땅을 지나 산에 오르자 새로 만든 원형의 연강전망대가 나온다. 둥근 전망대에 오르면 굽이굽이 흐르는 연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오르자 눈 앞을 가리는 방해물 없이 시야는 맑고 환하다. 난간에 기대어 강을 내려다본다. 물결은 잔잔하고, 강은 굽이굽이 길을 내며 산과 산 사이를 지나 먼 곳을 향해 끝없이 이어진다.

개안마루, 겸재의 그림 속 연강을 만나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개안마루에서 바라본 임진강 풍경 [사진=박성기 작가 ]

연강전망대를 뒤로하고 개안마루 전망대로 향한다. 이름처럼 눈이 열리는 자리다. 발아래로 연강, 임진강의 물줄기가 굽이치고, 강 건너 산자락이 물길 따라 길게 펼쳐진다. 연강전망대에서 넓게 바라보던 강이 이곳에서는 조금 더 깊고 구체적인 풍경으로 다가온다.

전망대에는 겸재 정선의 '웅연계람'(熊淵繫纜)과 그림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림 속 풍경과 눈앞의 연강을 비교해 본다. 그러나 실제 풍경은 그림과 사뭇 다르다. 그림 속에는 강 건너 커다란 절벽이 우뚝하지만, 눈앞의 연강에는 그만큼 장대한 절벽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강가를 따라 낮은 절벽과 산자락이 이어지고, 물길은 조용히 흐를 뿐이다.

그림과 비슷한 지형을 찾아 시선을 옮긴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물길이 흘러 들어와 임진강과 만나는 삼곶리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웅연계람'의 실제 시점은 저곳 어디쯤에서 잡힌 것이 아닐까 싶다. 겸재는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연강의 기세와 아름다움을 마음속에서 다시 구성했다.

현무암길, 화산활동의 흔적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옥녀봉 오르는 길 [사진=박성기 작가 ]

개안마루를 지나면 길은 옥녀봉 삼거리로 이어진다. 여기서 곧장 옥녀봉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 길로 접어든다. 길은 잠시 현무암지대를 지난다. 검은 돌들이 길가에 드러나 있다.

한탄강과 임진강 일대는 오래전 화산활동의 흔적을 간직한 땅이다. 현무암지대를 지나면 사거리를 만난다. 한쪽은 가람애 마을과 로하스파크로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옥녀봉으로 돌아 오른다. 나는 우측 옥녀봉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옥녀봉 그리팅맨, 평화로운 몸짓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그리팅맨. [사진=박성기 작가 ]

처음에는 편안하던 길이 잠깐 가파르게 고도를 높인다. 숨이 차오를 즈음, 산길에서 옥녀봉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나무 사이로 푸른 형상이 보인다. 옥녀봉의 상징, 그리팅맨이다. 처음 보이는 것은 정면이 아니다. 나무에 가린 상체의 뒷모습이다. 마치 산 너머를 향해 먼저 서 있는 사람의 등처럼 보인다.

길을 돌아 그리팅맨 앞으로 간다. 그제야 푸른 거인이 온몸으로 북녘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일은 가장 오래되고 평화로운 몸짓이다. 말보다 먼저 몸을 낮추는 행위, 상대를 적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정하는 태도다.

옥녀봉의 그리팅맨 앞에 서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이 거대한 인사는 임진강 너머로 건네는 말 없는 안부처럼 보인다. 강 건너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사람은 조용히 허리를 숙인다. 그 인사 하나가 이 길의 많은 말을 대신한다.

산능선 전망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산능선전망대 가는길 [사진=박성기 작가 ]

그리팅맨을 보고 다시 군남홍수조절댐, 두루미테마파크 방향으로 내려선다. 길은 다시 처음 출발한 곳으로 향한다. 오늘 나에게 굽이치는 강, 쉼터가 되어준 큰 나무, 개안마루에서 바라보는 풍경, 북쪽을 향해 인사하는 그리팅맨이 조용히 남는다.

원점 회귀를 앞두고 1킬로미터 남짓 남은 지점에 산능선전망대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강을 다시 한 번 조망하는 자리다. 지나온 길과 강의 물굽이가 눈앞에 펼쳐진다. 처음 마주하는 강과 지금 바라보는 강은 같은 강이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르게 흐른다.

산능선전망대 정자에 앉아 땀을 식힌다. 바람이 지나가고, 강물이 멀리서 조용히 빛난다. 마지막 조망은 길의 끝을 알리는 풍경이 아니라 오늘 걸은 시간을 되돌려주는 풍경이다.

연강을 마음에 담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군남홍수조절댐. [사진=박성기 작가 ]

산능선전망대를 내려서면 군남홍수조절지 두루미테마파크가 가까워진다. 임진강은 분단의 강이면서도 새들이 넘나드는 강, 전쟁의 기억을 품었으면서도 평화를 기다리는 강, 겸재가 화폭에 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연강으로 남는다. 걸음은 끝나지만 강의 물빛은 오래 남는다. 오늘의 연강나룻길은 강을 따라 걷는 길이 아니라, 강이 품은 시간과 사람의 흔적을 천천히 읽어내는 길이 된다.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 [사진=박성기 작가 ]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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