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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기의 도보기행]<7> 푸른 호수빛 하늘 아래, 한라산을 걷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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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은 거대한 식물의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아직 어둠이 남은 시간, 관음사로 향하다

아직 어둠이 골목 사이에 남아 있을 시간, 숙소를 나선다. 일찍 산에 올라 아침을 여는 산과 호흡하며 걷고 싶기도 하고, 워낙 장거리 산행이다 보니 늦은 시간에 내려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몸은 아직 덜 깨어 있지만 마음은 벌써 한라산이다.

이른 아침의 찬 공기를 가르며 관음사 탐방안내소에 도착한다. 한라산 등정의 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깊은 호수 빛을 닮았다. 봄인데도 가을 하늘처럼 높고 투명하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이른 아침의 숲길. [사진=박성기 작가]

아침 숲이 열어 주는 한라산의 첫 숨

관음사 탐방안내소에서 탐라계곡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길은 숲과 계곡을 따라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진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침의 산뜻함에 발걸음이 가볍다.

아침 산은 고요하다. 사람들의 말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지저귀는 새소리가 마음을 맑게 씻어 준다. 이따금 만나는 붉은 산철쭉은 봄의 기운을 더 짙게 한다.

해발고도가 높아지면서 식물군의 변화도 자연스럽다. 서어나무와 참나무류가 고도에 따라 교차하며 산길을 함께한다. 키 큰 나무 아래로는 양치식물이 자라고, 독성이 있는 천남성이 이따금 발걸음을 붙잡는다.

탐라계곡 대피소에 가까워질수록 숲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한라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거대한 식물의 박물관처럼 느껴진다. 출발부터 이어지는 조릿대 군락을 보며, 그 확산이 한라산 숲 생태에 미치는 영향과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탐라계곡 목교에서 만난 검은 돌의 시간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목교와 나무계단. [사진=박성기 작가]

약 3.2킬로미터를 걸어 탐라계곡 목교에 닿는다. 목교 위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잠시 멈춰 선다. 탐라계곡은 장엄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엄청난 속도로 물이 쏟아져 내렸을 계곡이다. 계곡 바닥을 메운 검은색 크고 작은 바위들은 거친 물의 시간을 그대로 품고 있다.

목교를 건너 탐라계곡 대피소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조금씩 한라산의 속살로 더 깊이 들어간다. 완만하던 숲길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산은 이제부터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 줄 준비를 하고 있다.

개미등을 오르며 숲의 얼굴이 바뀌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개미등을 지나며 만나는 소나무군락. [사진=박성기 작가]

탐라계곡대피소에서 삼각봉 대피소로 이어지는 길은 고도에 따라 한라산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길은 해발 1,000미터를 넘어서며 ‘개미등’으로 접어든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개미의 허리처럼 가늘고 길게 솟아오른 능선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 개미등의 초입은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지키고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소나무 군락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그네에게 아늑한 그늘을 내어 주며 숲의 묵직한 무게감을 전한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삼각봉대피소와 삼각봉 [사진=박성기 작가]

그러나 숲은 머무르지 않는다. 삼각봉 대피소의 해발 1,500미터 고지를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숲의 모습도 빠르게 변해 간다. 우세하던 소나무의 기세가 조금씩 누그러지는 자리에 다른 나무들이 하나둘 섞여 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소나무의 바통을 이어받는 것은 한라산의 상징인 구상나무다. 소나무의 푸름 사이로 하늘을 향해 곧게 선 구상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초연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삼각봉 앞에서 장구목오름을 바라보다

삼각봉이 보이고 대피소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쳐 가던 몸은 다시 힘을 받는다. 하늘은 더 맑고 선명해져, 오를 때 흐릴 것을 걱정한 마음이 기우였음을 깨닫는다.

삼각봉 대피소에 도착한다. 삼각봉은 바로 눈앞에서 압도적으로 다가선다. 삼각형 봉우리는 호수를 닮은 하늘을 향해 치솟아 홀로 뾰족하다. 삼각봉 좌우로 시선을 돌리면, "아, 이제 한라산에 올랐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삼각봉 왼쪽으로 장구목오름이 있다. [사진=박성기 작가]

왼쪽으로 넓고 평평하게 엎드린 산줄기와 이어진 한라산의 봉우리가 나를 작게 만든다. 장구 하나가 산등성이에 몸을 눕힌 듯, 부드러운 곡선이 길게 이어진다. 장구목오름이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 마음속 어디선가 ‘두두둥’ 장구 소리가 번진다. 마치 저 너머 백록담 깊은 품에서 오래 묵은 장구소리를 울려 보내는 듯하다.

용진각 현수교를 건너 왕관릉으로

백록담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삼각봉 허리를 끼고 돌자 길은 급격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잠시 내려서니 옛 용진각 대피소 터다. 예전 폭우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대피소의 기억이 아련한데, 지금은 그 자리에 멋진 용진각 현수교가 들어서 있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왕관릉 허리의 철쭉. [사진=박성기 작가]

다리 위에 서니 눈앞의 기암괴석과 방금 지나온 삼각봉, 그리고 임금의 왕관을 닮은 왕관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삼각봉의 거대한 암벽과 왕관릉의 허리를 따라 붉은 철쭉이 피어 있다. 유달리 맑은 날씨 덕에 그 빛깔이 더욱 애틋하고 선명하다.

여기서부터 왕관릉까지는 숨이 턱에 닿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다행히 길은 잘 정비되어 있어, 묵묵히 발을 딛는 수고로움만 견디면 된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눈맞춤을 해 오는 철쭉과 묵묵히 자리를 지킨 구상나무 군락을 눈에 담는다. 자연이 건네는 위로 덕분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왕관릉 전망대에서 바라본 운해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의 도보기행]<7> 푸른 호수빛 하늘 아래, 한라산을 걷다(하)로 이어집니다

한라산 백록담. [사진=박성기 작가]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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