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최신


엔터경제 연예 스포츠
라이프& 피플 포토·영상
스페셜&기획 조이뉴스TV

[박성기의 도보기행]<5> 발끝으로 읽는 서울⋯북촌을 걷다(하)

본문 글자 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지붕 사이의 여백과 골목의 틈새서 더 많은 말을 거는 곳"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박성기의 도보기행]<5> 발끝으로 읽는 서울⋯북촌을 걷다(상)에서 이어집니다

온기 머금은 굴뚝과 복(福)을 긷던 우물가

북촌한옥마을길을 따라 오르면 카페와 갤러리 사이로 솟아 있는 목욕탕 굴뚝 하나가 눈에 띈다.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그 높다란 존재감에 괜스레 눈길이 머문다. 집에 욕실이 없던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향하던 목욕탕은 서민들의 가장 따뜻한 호사였다. 삶의 냄새가 밴 굴뚝 하나가 세련된 카페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 또렷한 실존감을 드러낸다.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이제는 게스트하우스로 변한 목욕탕 앞에는 복정(福井)우물이 있다. 이름 그대로 복을 품은 이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어색하지 않다. 맑고 깨끗해 왕실에서만 사용했고 백성들은 일 년에 단 한 번만 허락되었다는 귀한 우물이다. 지금은 마실 수 없는 '박제된 우물'이 되어버려 조금은 쓸쓸하지만, 우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물을 솟아내고 있다. 장소는 사람보다 더 오래 기억을 품는 법이다.

기와지붕의 파도 위로 펼쳐지는 시간의 결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동양문화박물관, 맹사성집터. [사진=박성기]

오르막이 깊어지면 북촌의 정점이라 할 북촌동양문화박물관에 닿는다. 세종 때 정승이었던 맹사성 집터에 자리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한옥의 기와지붕들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능선과 어우러져 장엄한 물결을 이룬다. 과거와 현재가 층층이 쌓인 시간의 마을이 한눈에 펼쳐진다. 기와지붕이 파도처럼 번져가는 모습을 보며, 오래 품어 닳았기에 더 애틋한 서울의 보물을 어루만지는 기분에 젖는다. 내려다본다는 것은 단순히 높은 곳에 서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삶의 결을 비로소 읽어내는 일이다.

참기름 향 흐르는 골목, 현재가 된 한옥을 읽다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동양문화박물관에서 바라본 기와지붕들. [사진=박성기]

전망대를 내려와 지우헌 갤러리를 돌면 북촌 최고의 미경(美景)으로 꼽히는 내리막 골목이 이어진다. 관광객들의 웃음소리와 기와집 골목을 스치는 바람, 기와 아래 웅크린 오후의 그늘이 한데 어우러진다. 멀리 보이는 남산타워는 이 길의 고풍스러운 정취에 현대적인 방점을 찍는다. 이 여정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잊혔던 시간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계동길로 접어들면 북촌에서 가장 진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중앙고등학교에서 시작되는 이 길엔 세련된 갤러리 옆으로 참기름집의 고소한 향이 흐른다. 여행자의 시선과 생활인의 일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북촌의 참모습과 마주한다. 북촌은 박제된 관광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 여전히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한옥의 현재형이다.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중앙고등학교에서 바라본 계동길. [사진=저자 박성기]

북촌문화센터의 문턱을 넘는다. 북촌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장은 골목의 시간과 사람의 온기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처마의 곡선과 마당에 내려앉은 햇살을 눈에 담으며 한옥은 눈으로 보는 건축이 아니라 몸의 속도를 늦추는 공간임을 체감한다.

계동길 끝자락, 어니언 안국의 대청마루에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ㅁ자 한옥의 개방감 속에 나무의 질감과 커피 향이 어우러진다. 북촌을 도느라 즐겁지만 분주했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다. 북촌의 오늘은 그렇게 전통과 유행, 기억과 생활이 한 지붕 아래 평화롭게 동거하고 있다.

발끝의 역사를 지나, 머리 위 별의 시간으로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현대사옥 앞의 관상감. 관현의 이름 유래가 된다. [사진=박성기]

마지막 발걸음은 현대건설 본사 앞마당에 있는 관상감 관천대로 향한다. 별을 보며 나라의 운명을 살피던 그 자리에서, 땅의 역사를 읽어온 여행자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북촌의 골목과 담장, 지붕과 우물을 지나온 이야기가 마침내 하늘로 열리는 순간이다. 땅의 이야기를 갈무리하고 다시 하늘을 우러르는 일은 걷기의 끝에서 마주하는 소중한 깨달음이다.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북촌. [사진=박성기]

송현과 서울공예박물관부터 관천대의 열린 하늘까지, 우리가 밟아 걸은 것은 수백 년의 세월 그 자체이다. 여정의 끝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은 이 걷기의 완성을 알리는 마침표다. 북촌은 가득 채워진 공간이 아니라, 지붕 사이의 여백과 골목의 틈새에서 더 많은 말을 거는 곳이다.

"나는 오늘, 어떤 시간을 발바닥에 새겼는가“

길은 여기서 끝나지만, 그 길 위에서 얻은 질문들은 긴 여운으로 남는다. 이런 여정은 삶의 작은 쉼표가 되고, 다시 일상을 살아낼 단단한 힘이 된다. 북촌은 한 번의 걸음으로 다 읽어내고 볼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의 마을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북촌을 찾게 된다.

복정우물, 왕실에서 쓰던 우물이라고 한다. [사진= 박성기]
박성기 여행가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주요뉴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 해주세요.
alert

댓글 쓰기 제목 [박성기의 도보기행]<5> 발끝으로 읽는 서울⋯북촌을 걷다(하)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댓글 바로가기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