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두륜산은 한 번에 제 속을 보여 주지 않는 산이다. 절집의 고요로 사람을 맞아들이고, 바위 능선의 매서운 바람으로 걸음을 시험한 뒤에야 비로소 오래 품어 온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3월 초순의 두륜산이 딱 그러했다. 볕이 서면 봄이 벌써 곁에 온 듯했고, 그늘에 들면 겨울이 여전했다. 능선 위 바람은 몸을 기울이게 할 만큼 거셌고, 바위틈에 남은 얼음은 계절의 끝이 다 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차가움 속에서 봄은 가장 또렷하게 웅크리고 있었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d76cef5c24ac05.jpg)
바위 스스로 드러낸 미소, 북미륵암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절집 마당에 내려앉은 세월이 먼저 걸음을 붙든다. 오래된 목재의 결, 닳은 돌계단, 기와 위를 건너는 햇빛과 바람이 말없이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떠나지 못한 겨울과 막 들어선 봄이 한자리에 머무는 계절, 3월의 대흥사는 그렇게 오래된 시간 위로 또 다른 시간의 숨결을 새롭게 얹고 있었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5faf0105b6fe7c.jpg)
산사의 고요를 뒤로하고 동국선원을 지나 북미륵암으로 오른다. 숲은 짙어졌고 완만하던 길은 차츰 가팔라진다. 내 발자국과 숨소리만 남는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세상은 어느새 등 뒤로 물러난다. 산길에는 때 이른 동백이 붉게 피어 걷는 이를 반겼다. 볕이 드는 곳에서는 이마에 땀이 배는 듯하다가도 바위 그늘을 스치면 찬 공기가 목덜미를 감쌌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bf6fa3c3fb72ee.jpg)
북미륵암에 이르렀다. 묵직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을 암자 건물로 감싸 북미륵암이라 부른다. 큰 바위에 그대로 조각된 미륵부처를 감싸 전각이 세워진 모습은 매우 특별한 풍경을 이룬다. 바위에 들어앉은 미륵부처님은 이곳을 고생스레 찾은 이를 그저 말없이 맞아 주었다.
미륵부처님을 오래 보고 있노라면 사람이 바위를 깎아 부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바위가 제 안에 품은 부처를 오랜 세월 지나 스스로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두륜산 정상을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 이곳에 오래 서 있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ae5eca2fcdf222.jpg)
바람이 깎아낸 선승의 이마, 노승봉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1c58d4286bbb05.jpg)
북미륵암을 뒤로하고 오심재로 향했다. 나무는 조금씩 뒤로 물러섰고 하늘은 넓어졌다. 볕이 좋아 봄이 가까이 와 있는 듯했지만, 오심재에 다가설수록 찬바람이 자꾸 옷깃을 파고들었다.
마음을 깨달으라는 뜻의 오심재라는 이름은 발보다 마음을 먼저 멈추게 한다. 가쁜 숨을 한데 모아 다잡고 호흡을 가다듬어 노승봉으로 향했다.
노승봉으로 오르는 길부터 두륜산 암봉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바위는 칼처럼 서서 발걸음을 더디게 했고, 능선의 바람으로 얼굴과 손끝은 얼었다. 내려앉는 햇살은 이미 봄의 것이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찼다.
한 사람이 밀든 천 사람이 밀든 똑같이 흔들린다는 흔들바위를 지났다. 아찔하게 이어진 데크 계단 옆으로 옛 등산길의 일부이던 발받침과 밧줄이 이곳 암릉길의 험함을 재차 각인시킨다. 마침내 봉우리에 서자 남도의 들판이 운무 사이로 멀리 열렸다. 내가 산을 오른 것이 아니라 잠시 허락받은 자리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우리의 모양은 오랜 세월 참선해 온 늙은 선승의 이마를 닮아있다. 그래서 노승봉일까. 사방을 둘러보니 곁에 마주 선 가련봉이 눈앞에 아찔하게 다가왔다.
연꽃처럼 피어난 암릉, 가련봉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5cf7e389fc2bd1.jpg)
노승봉에서 가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두륜산 산행의 절정이다. 두륜산의 정상인 가련봉은 바위와 하늘이 맞닿은 암릉으로 이어지는데, 이 절벽길은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잘 정비된 데크길 덕분에 간신히 풍경을 천천히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암릉 절벽에 서면, 내가 풍경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풍경 안에 놓인 하나의 점이라고 느끼게 된다. 가파른 암릉의 아슬함으로 물아일체를 경험한다. 그렇게 노승봉에서 두 개의 암봉을 우회하여 가련봉에 올랐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ea752a364330d2.jpg)
가련봉(迦蓮峰)은 부처님과 연꽃을 뜻하는 봉우리다. 산은 높지 않으나 산세는 여느 높은 산과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여러 봉우리가 홀로 높이를 다투지 않고 서로를 감싸 안으며 하나의 큰 산세를 이루고 있다. 바다와 평야, 산봉우리, 능선이 함께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두륜산이라는 이름의 울림도 또렷해졌다.
오래 견딘 것들의 조용한 봄, 만일암 터
가련봉에서 만일재로 내려서는 능선은 사나운 기세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며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드러냈다. 억새를 품은 너른 들판의 만일재에 내려섰다. 고개 너머 불어오는 바람에 억새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며 잠시 쉬고는 만일암 터로 향했다.
만일암 터에는 건물 없이 오층석탑만 홀로 서 있다. 석탑은 폐허 가운데서도 끝내 자리를 지키는 두륜산의 의지처럼 보인다. 탑이 서 있는 빈터는 남아 있는 흔적만으로도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b78417954707ad.jpg)
만일암 앞마당의 천년수는 거대한 느티나무다. 족히 오백 년은 넘었을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세상을 보듬는 듯하다. 천년수 가지 끝에서 걷는 자의 마음처럼 고요한 봄이 엿보인다. 화려하게 피어나는 봄이 아니라, 오래 견딘 것들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봄이다. 능선의 바위가 산의 기상이라면, 이곳의 탑과 나무는 산의 인내 그 자체다. 그 긴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꼿꼿이 지켜오는 것이 더 귀하다는 것을 두륜산은 가르쳐 주고 있었다.
걸음을 늦추자 비로소 들려온 위로
만일암 터를 지나 진불암 쪽으로 길을 잡자 바람은 부드러워졌고 햇살은 포근했다. 그늘은 아직 서늘했지만, 겨울의 차가움이 아니라 이제 봄을 받아들이는 숲의 숨결처럼 느껴졌다. 숲의 냄새와 젖은 흙의 촉감, 멀리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마음을 천천히 붙들었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eb8c87b51b4dbd.jpg)
산을 오르는 것이 바위와 바람을 견뎌 맞서는 일이라면, 내려오는 것은 내 안의 긴장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높이의 긴장 섞인 환희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산이 건네는 잔잔한 위로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걷는 자의 마음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 깊어지기도 한다. 두륜산은 하산길에서조차 서두르지 말라고, 끝까지 천천히 걸으라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 준다. 오를 때의 바람과 능선의 긴장, 진불암을 지나 표충사로 내려서는 하산길의 위로까지. 불가의 만행이 무엇인지 두륜산은 내게 잔잔하게, 살그머니 알려주었다.
![두륜산 너른 절마당과 두룬산. [사진=박성기]](https://image.inews24.com/v1/419ce7604e4a5f.jpg)
◇ 박성기는 자유(도보)여행가다. 일상에 반복 속에서 문득 '길'이 그의 눈에 들어온 이후, 배낭을 메고 우리나라 길을 걷고 있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는 걷는 동안 자연을 다시 바라보고, 삶의 속도를 늦추는 기쁨을 기록해 왔다. 길이 건네는 위로와 걷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을 모아 주변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걷는 자의 기쁨', '걷는 자의 기쁨 – 그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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