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상욱 기자] “저는 그냥 배우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연출은 제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하는 간헐적 연출가입니다.” 최우성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뒤 극단 목화, 연희단 거리패, 무천 등을 거치며 비교적 ‘레드카펫 같은 길’을 걸어온 배우이자, 동시에 직접 극단을 꾸리고 작품을 올리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프랑스 ‘자크 르콕 국제연극학교(École Internationale de Théâtre Jacques Lecoq)’에서 수학한 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현재 극단 ‘세즈헤브(SeizeRêve, 열여섯의 꿈 – 가장 빛나고 순수한 시절의 꿈)’를 이끌며 [배우가 보이는 연극, 인물이 중심에 서는 무대]를 고집하고 있다.

-연극을 직업이 아닌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 이유
영화나 TV로 진출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직 배우로서, 극단 대표로서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자각과, 지금 함께 연극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작업이 “여전히 좋은” 상태이기 때문에 무대를 떠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극은 그에게 생계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포기할 수 없는 삶의 방식에 가깝다.
-한국에서 다져진 ‘기본’과 프랑스에서 배운 ‘조화로움’
자끄 르콕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기술적인 ‘스킬’보다 태도의 변화를 안겨주었다. 불같이 급하고 뜨거웠던 젊은 배우는 파리의 조화로운 시스템과 생활을 경험하며 “왜 이렇게 차분해졌냐?”는 말을 들을 만큼 시선을 달리하는 법을 배웠다. 반면, 한국에서의 훈련은 철저한 기본기를 몸에 익히게 했다. 연습 전에는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습관처럼 자신을 관리해온 그는 지금도 “어떤 일이든 기본만 갖추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 좋은 배우란 스타성이 아니라, 결코 ‘못하지 않는’ 최소한의 수준을 기본으로 갖춘 사람이다. 그러기에 지금 나도 노력하고 있다.

-인물의 ‘의외성’을 찾아가는 배우
역할 분석에서 그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인물의 ‘전사(前史)’가 아니라 텍스트 바깥의 의외성이다. 이미 대본에 드러난 기승전결보다 “이 인물에게 이런 면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다른 가능성을 찾아 하나의 게스투스(Gestus, 몸짓·습관)를 부여한다. 이는 프랑스에서 배운 몸의 활용과도 연결된다. 움직임과 연기가 결합된 작은 틱과 몸짓 속에서 그는 인물의 숨은 서사를 드러내려 한다. 최근 작품인 『목숨을 가지고 노는 두 남자』에서 느낀 안정감은 흩어져 있던 감정과 기법이 나이와 함께 정리되어 가는 과정의 작은 증거이기도 하다. 그의 연극관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문장은 “연극은 어려워야 한다”는 선언이다. 여기서 ‘어려움’은 난해한 텍스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 다른 장르와 구분되는 가치와 깊이를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태도에 가깝다. 그는 OTT와 예능이 최상단에 있는 한국의 문화 구조와 달리, 연극이 문화 위계의 최상층에 자리 잡은 프랑스의 사례를 자주 떠올린다. “사회적 참사나 역사의 단면을 하나의 사건처럼 단순히 반응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오랫동안 사유를 축적해 전통과 뿌리를 만들어야만 연극이 버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연극 환경에 던지는 쓴소리
최우성의 한국 연극계 진단은 거침없다. 일본식 도제 문화의 잔재, 아직도 요원한 ‘끼리끼리’ 모임 구조, 그리고 여전히 예술을 ‘딴따라’로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지 않는 한, 구조적 개선은 요원하다고 본다. 그가 바라는 변화의 핵심에는 “예술을 이해하는 정책 결정권자와 프랑스식 예술인 실업 급여 제도인 앵테르미탕(intermittent)과 같은 현실적인 사회 안전망이다. 앵테르미탕은 예술가가 생계 걱정 없이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정책이다. 그 내용은 예술인에게 일정 소득을 보장해 주는 실업 급여 제도로 예술가들은 매달 버는 돈을 정부에 신고하고, 그 일부를 보험료로 낸다. 이후 정부는 신고된 액수를 바탕으로 기준 소득을 산출하고, 한해 기준시간 이상 일한 예술가가 기준 소득에 미치지 못할 때 차액을 실업 수당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와같이 창작의 연속성을 지켜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창작의 원동력은 ‘빠시옹’
“창작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는 프랑스어 발음을 흉내 내며 ‘빠시옹(passion, 열정)’을 꺼낸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99번 실패해도, 마지막 한 번의 성공이 모든 고생을 상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결과’에 도달하기 위한 치열함과 마지막 극한에 가까운 몰입을 당연한 전제로 둔다. 그래서 어느 작업 현장에서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설득하며, 끝내 “이 작품은 여기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점까지 밀어붙이고 있다.
-‘마지막 공연’처럼 무대에 서는 자세
“매 공연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는 오래된 답변을 그는 이제 “항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바꿔 표현한다. 같은 작품을 매일 반복해도, 오늘 이 작품이 마지막이라고 가정하지 않으면 자신에게도, 동료 배우에게도 미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탈진 직전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쪽을 택한다. 그에게 월급만 받으며 버티는 ‘월급 루팡’식 태도는 연극이라는 직업과 양립할 수 없는 삶의 방식이다.

-후배와 ‘젊은 최우성’에게 전하는 말
후배들에게 그가 남긴 조언은 묘하게 모순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지만, 배반은 할 수 있다.” 개인의 노력은 결과를 낳지만, 사람과 환경이 언제든 그 노력을 배반할 수 있다는 냉정한 인식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쉽게 믿지 말고, 실망은 하되 배신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중·고등학생 시절의 자신을 만난다면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겠지만, 그 선택들조차 결국 “인생의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자신의 오래된 대사로 귀결된다.

-앞으로 펼쳐질 꿈의 무대들
배우로서 그가 품고 있는 욕망은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를 언젠가 자신의 나이에 맞게 온전히 소화해보는 것이다. 서른 초반에 맡았던 『갈매기』가 아직도 가장 아쉬운 배역으로 남아 있는 만큼, 그는 나이와 경험이 충분히 쌓인 뒤 다시 한 번 큰 비극 인물을 연기하고 싶어 한다. 연출가로서는 테라야마 슈지(てらやましゅうじ)의 『레밍』을 중극장 규모로 다시 올려, 소극장에 갇혔던 이미지와 인물의 고뇌를 더 크게 펼쳐보는 것을 꿈꾼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쓴 작품으로 공연을 해볼까”라는 오랜 숙제를 또 하나의 챕터로 열어볼 준비를 하고 있다. 최우성은 다가오는 올해 1월 일본 공연을 앞두고 있다. 정형화되지 않은 일본 연극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틀에 큰 자극을 받았다는 그는, 내년쯤에는 연출을 넘어 자신이 직접 쓴 희곡으로 무대에 오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어쩌겠습니까. 주저하지 않고 계속하는 거죠. 그 과정 자체가 저니까요.” 배신당할지라도 끝내 무대를, 그리고 연극을 선택하는 남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 최우성이 꾸고 있는 열여섯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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