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연기 神'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완벽하게 드러내며 '역시 이병헌'이라는 찬사를 이끌었다. 이병헌의 연기야 당연히 의심의 여지 하나 없이 훌륭한데, 여기에 작품에 대한 애정까지 충만하다. 박찬욱 감독과의 재회와 영화 완성도에 대한 기쁨을 한껏 드러내는 이병헌의 얼굴엔 특별한 미소가 가득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 분)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어쩔수가없다'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1d23b08ab19306.jpg)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이 20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자 손예진의 7년 만 영화 복귀작이다. 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을 시작으로,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국제 관객상, 시체스영화제에서 감독상, 뉴포트비치 필름 페스티벌에서 박찬욱 감독이 글로벌 임팩트상(Global Impact Award), 이병헌이 아티스트 오브 디스팅션상(Artist of Distinction Award)을 수상하는 등 눈부신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호평을 얻었다.
이병헌은 갑작스러운 실직 후 생계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장 만수 역을 맡아 손예진과 부부 호흡을 맞췄다. 그는 만수의 절실한 마음을 섬세하면서도 진정성 넘치는 연기로 소화해 극찬을 끌어냈다. 이에 이병헌은 해외 유수 영화제를 비롯해 제4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한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다시 한번 자리매김했다. 다음은 이병헌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시사회 뒤풀이에서 신하균, 송강호 배우와 찍은 사진이 화제였다. 'JSA'와 같은 구도였는데 어떻게 찍게 됐나?
"처음부터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 누가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셋이 모여봐' 해서 찍었다. 다음 날 하균이에게 받았냐고 하니까 받았다고 하면서 보내줬다. 감회가 새로웠다. 찾아보니까 그때 찍은 사진이 있더라."
- 출연 제안은 언제 받았나?
- 감독님이 '도끼'를 찍을 거라고 한 건 15년 전이다. 미국 영화여서 그런 영화를 찍나보다 했다. 그러다 한국 영화로 만들기로 하면서 저에게 전화를 주셨다. 대본 언제 볼 수 있냐 했더니 아직 쓰지 않았는데 예전 미국 대본을 한국어로 번역했다면서 보내주셨다. 그게 촬영 들어가기 반년 전이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고 현실감이 없었다.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도 모르겠고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한국 버전으로 바뀌면 다시 읽어야겠다고 했다. 당연히 하는 건 좋은데 각색된 대본을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어쩔수가없다'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685309b3b22ec0.jpg)
- 그럼 각색된 한국 대본을 봤을 때는 어땠나?
"현실감이 느껴진다. 배경이나 집이 어떤 느낌인지 알겠고 캐릭터도 쏙쏙 들어오더라. 내가 맞게 읽은 것이 맞나 싶어서 "웃겨도 되냐"라고 했더니 "웃길수록 좋지"라고 하셔서 바로 읽었구나 싶더라. 재미있게 작업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서 정말 즐거웠다. 'JSA' 땐 배틀 하듯이 질보다 양으로 아이디어를 냈다. 적용된 것이 10개 중 하나였는데, 이번엔 다 적용하셨다. 나중에는 책임 전과를 하려고 그러나 싶어서 겁이 났다. 말을 아껴야지 싶어서 후반부에는 아이디어를 아예 안 냈다."
- 박찬욱 감독과는 20년 만의 작업이다. 같은 점과 달라진 점을 꼽아준다면?
"예전에도 배우들과 새로운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걸 얘기할 때 귀 기울이는 걸 좋아하셨다. 그때는 적용이 안 됐지만, 이번엔 적용률이 80%까지 된다. 오히려 부담스러워지는 점이 생겼다. 감독님이 바뀐 건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내 아이디어가 세련되어졌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같은 건 여전히 열려있다는 것이다. 달라진 점이자 같은 점이다. 사람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많이 듣고 자신의 것에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나간다. 그 안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것을 입힌다. 대화할 때 아이디어를 떠올릴 것이 생기면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신다."
- 세련된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되게 많은데 두 군데가 생각난다. 범모(이성민 분) 음악실에서 셋이서 싸운다. 떨어진 총을 잡으려고 하다가 가구 밑으로 들어간다.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물건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이서 안 보이는데 찾으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나 말씀드렸다. 촬영하기 하루 전 리허설을 따로 했고, 콘티를 다시 그려서 그 부분이 탄생했다. 또 시조(차승원 분)를 묻으려고 땅을 파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는데 경찰이 아침에 온다. 순간적으로 끝났구나 생각이 들어서 손을 모은 채 "경찰서에서 말씀드리겠다"라고 한다. 만수는 자신이 잡혀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 아이디어를 냈다."

- 박찬욱 감독은 관객들이 처음엔 만수를 응원하다가 살인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그러지 마라"며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길 바랐다고 하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하다.
"저는 그렇게는 못 했다. 관객이 감정 이입을 했다가 빠져나와서 '저러지 말지'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것이 감독님의 의도였지만, 저는 온전히 만수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런 의도를 모르고 관객들이 끝까지 만수를 응원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감독님에게 첫 번째 결심을 하기 전에 많은 설득력을 주자고 했다.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 더 처절하고 비참한 상황이 있는 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 손예진 배우가 인터뷰에서 "이병헌 배우는 현장에서 조급해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변수가 있어도 여유롭게 연기한다"라고 하더라.
"질문하는 후배에게 답을 해주는 것이 있는데, 신인 배우거나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은 배우들은 전날까지 단단하게 준비를 해온다. 그 연기만큼은 기가 막히게 할 정도로, 툭 치면 바로 나올 정도로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딱딱하게 굳어있다. 준비한 연기 외에 수정 상황을 설명하는 순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없고 준비한 것마저 무너지는 상황이 생긴다. 그래서 대사는 다 숙지를 하되 이 신이 주는 의미나 의도만 가지고 가서 리허설 할 때도 편하게 하고, 감독님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말랑말랑함을 유지하면 덜 당황스럽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부분이 예진 씨에게 그렇게 비친 것 같다."
- 결말에 대한 해석이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데 어떻게 생각했나?
"예전처럼 모든 것이 봉합된 것처럼 보여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커다란 비극이라고 생각하고 본 사람도 있을 텐데 저는 커다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만수가 죽여나가는 인물이 그와 닮아있어서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된다. 자신을 죽이는 느낌을 가져가는 거다. 마지막에 세 사람이 모여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들의 영혼은 죽어있다고 생각했다. 시커멓게 내려앉았다. 미리(손예진 분)는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고, 어쩌면 바로 떠났을 수도 있다. 명확하게 미리가 떠나는 버전이 있었는데, 삭제됐다. 딸이 계속 한 음만 들려주다가 만수가 출근하고 나서야 한 곡을 들려준다. 만수 혼자 떠나는 느낌인 거다. 공장에 들어가서는 내가 원하는 자리에 있다는 만족감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허탈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파이팅을 한다. 클로즈업했을 때는 우울해 보이는 얼굴이다. AI의 소등 시스템으로 인해 불이 꺼진다. 마지막에 이걸 넣었는데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관리자로 들어가 있지만, 언젠가는 어둠에 잡아먹힌다는 느낌으로, 위태로운 상황으로 영화가 끝난다. 그래서 비극으로 본다."
![배우 이병헌이 영화 '어쩔수가없다'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https://image.inews24.com/v1/6644539c68cfdd.jpg)
- 박찬욱 감독은 배우 이병헌에게 어떤 존재인가?
"기댈 수 있는 분이다. 인생의 큰 형이기도 하고, 영화계에서는 당연히 가장 큰 버팀목이다. '지아이조'가 들어왔을 때 엄청 고민했는데, 박 감독님과 김지운 감독님에게 상담했다. 하는 것이 좋겠냐는 말에 박 감독님은 "해라"라고 했다. 김지운 감독님은 "뭐하러 해"라고 하셔서 온전히 저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했다. 작품적으로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물어보게 되는 좋은 형이다."
- 만수처럼 이병헌 배우도 평생 연기만 바라보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서 공감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 이런 경우 어땠을 것 같나?
"만수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제지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했다. 저도 생각해보면 연극영화를 전공하지는 않고 다른 과를 다니면서 연기를 처음 접했고, 그거만 하고 살았다.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만약 내 일을 못 하게 된다고 하면 저도 만수만큼이나 뭘 어떻게 하나 싶고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것 같다."
- '어쩔수가없다'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
"제 출연작 중 베니스 경쟁작 출품은 처음이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토론토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난생 처음 받았다. 새로운 경험을 했고, 앞으로도 새로운 경험들이 저에게 너무 많이 남았다. 아카데미 레이스를 하게 된다면 이 또한 첫 경험이 된다. 또 90% 이상 카메라가 나를 따라다녔다. 나의 감정 중심으로 언제 영화를 찍어보겠나. 그래서 이 영화가 내 필모에 가장 자랑하고 싶은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기분 좋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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