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민은 동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유달리 긴 팔을 농구선수처럼 번쩍 쳐들었다.
"장형."
철민은 뭔가 말을 할 듯하다 입을 곧 다물어버렸다. 재떨이에는 그가 피우다 만 담배의 꽁초들이 아무렇게나 나자빠져 있었다. 동호는 그의 내장 속까지 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퀭한 눈은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유치하군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김형."
동호는 철민의 말에 이렇게 대답하고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가 놓았다.
"도대체 이런 몰상식이 어딨습니까."
"출근을 시켜놓고, 일언반구도 없이 말이지."
철민은 말이 많아질수록 더욱 몸을 떨었다. 동호는 다시 담배를 뽑아 물었다. 그리고는 담배 연기를 깊숙이 빨아 마셨다가는 푸우, 뱉어냈다.
동호가 어금니를 물었다 놓은 것은 철민을 화나게 하고 있는 그 위인들의 몰상식 때문이었다. 몇 군데의 직장을 후조처럼 떠돌았지만 이런 식의 대접은 처음이었다.
철민도 마찬가지였다. 욱한 성깔 때문에 동호보다 더 많은 직장을 옮겨 다녀 봤지만 도대체가 이런 비열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런 연락이나 양해도 없이 출근을 시켜놓고 문을 잠가버리는, 그것도 불안으로 허둥댈지도 모르는 무려 3일간이란 고통의 시간을 던져준 것이었다.
철민은 분을 삭이기라도 하듯 그동안 거쳤던 자신의 직장을 나열 했다. 신문사, 광고회사, 제약회사, 출판사……. 하나같이 여기보다 나으면 나았지 모자랄 게 조금도 없는 유수한 직장들이었다.
"그때 말이죠. 홍보실로 가야 옳았어요."
후회라기보다는 후회로 위장한, 손상된 자존심을 어루만지는 말투였다. 철민은 바로 그 자존심 때문에 더욱 분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동호는 이제 맥이 풀리고 있었다. 어느 직장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며, 고용인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대동소이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던져주는 고통을 기껍게 감내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직장을 떠나는 게 최선일지도 몰랐다. 동물원의 짐승들은 벽을 뛰어넘지 않고서도 잘들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다방은 어느새 되살아난 소리들로 가득 차 갔다. 손님들이 제법 들락거리면서부터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란 말들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벽면의 거대한 스피커는 차츰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이제 다방의 스피커는 구슬픈 가락도 시끄럽게 변조해서 손님들이 죽치는 것을 훼방 놓는 그런 기능도 가지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도 메가폰을 들고서 참새를 쫒는 농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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