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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북으로 흐르는 강 <5>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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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여긴 뭣 하러 왔어?"

쪽을 진 백발의 현소 노모였다. 씩씩거리느라 들고 있던 호미를 떨어뜨리며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건강허신기라우?"

"건강이고 뭐고 왜 왔느냔께! 여긴 네가 올 땅이 아니란 말이여."

"허무쟁이 아짐도 원, 다 지난 일을 갖고, 쯧쯧."

김 씨가 사이에 끼어들어 말렸지만 현소의 노모는 막무가내였다.

"이년!"

걸음이 더 빠른 봉옥이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려고 하였다. 낯모르는 청년들 앞에서 봉변을 당하자니 창피하기도 하였지만 봉옥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엄니"하고 부르는 걸쭉한 사내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을 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것은 현소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봉옥은 현소가 보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를 못 냈다. 현소 역시 파마머리를 하고 옛날보다 더 뚱뚱해진 봉옥이를 뒤쫓아 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훔쳐보기만 하였다.

"이젠 저 우물을 쓰지 않는구만."

"그렇구만이라."

봉옥은 김 씨의 말에 땀띠 샘이라 불리던 우물을 바라보았다. 김 씨의 말이 사실인 듯 우물은 예전 같지 않게 활기가 없었다. 벽돌처럼 반듯반듯한 돌들 사이에는 잡풀이 돋아나 있었고, 마른 지푸라기들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우물터 한쪽 면은 아예 검푸른 담쟁이 잎들이 뒤덮고 있었다.

폐가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봉옥은 우물터로 천천히 내려섰다. 그리고는 반개한 덮개를 남자 손처럼 두툼하게 거칠어진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졌다. 잠시 후에는 우물 속에 무엇을 빠뜨린 것처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우물 속에는 전에 없던 붕어며 물방개가 살고 있었고, 푸른 흠집 같은 개구리밥풀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움직일 때마다 봉옥의 물그림자는 어른어른 흔들거렸다. 그런데도 봉옥은 누군가의 얼굴을 찾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얼굴이 보일 듯 보일 듯하면 여지없이 붕어나 물방개들이 그 어렴풋한 형상을 뭉개버리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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