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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겨울남행 <2>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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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 [사진=픽사베이]

준세는 며칠이 지나서야 조금씩 말문을 열었다. 그때는 벌써 지명 수배 사진들이 거리에 나붙은 뒤였다. 준세도 그 속에 끼어 있었다.

성명 오준세

나이 29

직업 학원강사

그리고 본적 및 주소와 인상착의 등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진은 고등학교 시절에 찍은 모습으로 앳된 사미승이 교복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네도 들불을 놓아 봤겠지. 또 들불을 놓다 심심해지면 들쥐 사냥을 했을 테고……"

물론 형규도 들쥐를 죽여 보았다. 들쥐를 괴롭히거나 죽이는데 나무라는 어른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무 때나 심심해지면 들판으로 나가 떳떳하고 잔인하게 죽일 수 있었다.

들쥐를 학살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한 구멍만 남겨 놓고 퇴로가 될 수 있는 나머지 구멍들을 막아 버리고서 불을 지피면 되었다. 어떤 놈은 필사적으로 불길 속에서 튀어나와 화상을 입은 채 달아나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연기와 열기 속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서 죽어갔다.

어스름이 깔리면서 눈발은 차츰 성글어졌다. 그러나 눈이 아주 멈출 성싶지는 않았다. 차오르는 어둠 속에서도 그 모습을 희끗희끗 드러내 보였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북쪽으로부터 냉랭한 바람이 가끔씩 밀려왔다.

열차는 좀 전의 안내방송을 출발시간부터 어기고 있었다. 통일호의 티를 내듯 출발역에서부터 늑장을 부렸다. 그러나 승객은 더 탈 것 같지는 않았다. 북적대던 플랫폼은 이제 적막한 느낌이들 정도였다.

불을 켠 열차는 승객들을 듬성듬성 태운 채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단숨에 강을 건넌 다음 다시 멈추었다. 이번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승객들이 올라타고 있었다. 형규 옆자리에도 코트 차림의 아가씨가 앉고 있었다. 형규는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창에는 자신의 얼굴과 여자의 옆얼굴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형규는 눈을 감아 버렸다. 이내 열차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빼기 시작했다.

발목 부근의 창쪽에서 내뿜는 온기는 겨우겨우 미지근했다.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눈을 한숨 붙이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렇다면 책이라도 한 권 사들고 올 것을……. 하긴 책을 읽어 볼만한 기분은 못되었다. 준세만 떠올리면 압핀에 찔린 것처럼 뜨끔하게 아팠다.

형규는 결코 준세를 끝까지 숨겨줄 수는 없었다. 처음 보름 동안은 아무런 불편을 못 느꼈지만 점점 불안해졌던 것이다.

형규는 떠오른 기억들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두 눈을 슬그머니 떠 버렸다. 창에 비친 여자의 얼굴은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음이 문명했다. 어둠 속에 박혀 있던 불빛 하나가 여자의 얼굴을 가로질러 갔다. 다시 불빛 두 점이 여자의 머리 위로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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