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세상은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장애인을 향한 장벽은 높고 배려는 부족하다. 문화계 역시 마찬가지.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영화를 접하는 일이 굉장히 어려운 현실. 아직 많은 이들이 '배리어프리'(Barrier-free)라는 단어를 낯설게 느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영화관 씨네큐브는 지난 24년간 도심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으로 예술 영화의 가치를 위해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들도 문화생활을 영위할 기회를 마련할 수 있게 사회 공헌 활동에 앞장서 왔다. 이번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하고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온 마음을 다하는 윤단비 감독이 있다.
지난 10일 태광그룹의 미디어 계열사 티캐스트가 운영하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에서 '리빙: 어떤 인생'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 및 씨네토크가 진행됐다.
지난 7월부터 시작한 '모두를 위한 씨네큐브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는 엄선된 배리어프리 영화를 매월 1회 무료상영한다.
배리어프리 영화란 기존의 영화에 화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자막을 넣어 만든 영화다. 시각, 청각 장애인뿐 아니라 어린이, 다문화가족, 노인 등도 편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씨네큐브는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회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좋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공헌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12월 상영작은 '리빙: 어떤 인생'으로,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윤단비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인 '남매의 여름밤'과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에 이어 '리빙: 어떤 인생'까지 세 편의 배리어프리 버전을 연출하며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냈다.
상영회와 씨네토크를 성황리에 마치고 조이뉴스24와 인터뷰에 임한 윤단비 감독은 "배리어프리 연출은 영화 연출처럼 많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적이다. 저보다 고생하신 분들이 정말 많아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 민망하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어 윤단비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 연출을 하고 개봉을 한 후 배리어프리 위원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연출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더라"라며 "그전까지는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좀 딱딱하고 영화에 대한 정보만 전달하는 건 줄 알았다"라고 고백했다.
또 그는 "대본을 받아봤을 때 다들 영화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고,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정서도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을 하시는구나. 매력을 담아내려고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라며 "'미나리'도 연출을 하게 되고 위원회 홍보대사를 1년 정도 했다"라고 전했다.
"저만해도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었다"라고 말한 윤단비 감독은 "'남매의 여름밤'은 영어 자막을 되게 고심했었다. 그런데 내가 배리어프리에 대한 생각은 아예 안 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면서 배리어프리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저 또한 배리어프리가 딱딱한 것이 아니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됐고, 많은 이들의 인식을 재고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배리어프리 작업을 계속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특히 이 작업이 재미있었다는 윤단비 감독은 "영화를 깊게 들여다보면 새롭게 드러나는 요소가 많다. 그전까지는 영화가 되게 빠르게 흘러가기 때문에 놓치는 장면도 많았는데, 이렇게 문장으로 치환해서 바라보니까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더라. 그 부분에서 재미를 느꼈다"라며 "또 같이 작업을 해나가면서 처음에 많이 고심하면서 부딪히는 부분들, 더 발전시키려고 하는 모습이 건설적이고 투명하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배리어프리 상영회를 통해 '리빙: 어떤 인생'을 새롭게 접한 한 관객은 "'리빙: 어떤 인생'을 꽤 많이 봤는데 설명이 나오니까 다른 영화를 보는 것 같더라"라며 "메시지와 감정이 잘 전달이 된 것 같다는 생각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고 싶다"라고 배리어프리 버전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응원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에 대해 윤단비 감독은 "원작을 좋아하는 분들이 기대하는 바와 해석이 있을 테지만,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이번 '리빙: 어떤 인생' 배리어프리 버전은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고스란히 전하는 동시에 장면 설명 등 내레이션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특히 윤단비 감독은 영화의 결이 자신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하며 밝게 미소 지었다. 그는 "이런 따뜻하고 인생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영화가 좋다. 염세적인 영화도 좋긴 한데 기본적으로 사람이 잘 드러나는 영화가 좋다"라며 "이 캐릭터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지는 영화가 좋다. '리빙: 어떤 인생'은 일 처리 하는 건 공백으로 남겨놨다. 상상하게 만드는 구성이 좋았다"라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어 "배리어프리 작품은 외국 영화고 더빙이 되어 있다. 하지만 '미나리는 한국어 대사와 영어 대사가 섞여 있다.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 중 영어 대사는 성우가 하다 보니 혼선이 생겼다. 그런 지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라며 "또 제가 연출한 영화가 아니다 보니 제 편의상 변형을 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다. 음악 볼륨을 키워놓은 것도 다 의도가 있을 텐데, 음성이 맞물리는 것 때문에 그것을 줄이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용어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떠올리기 쉽게 얼마나 부연하고 설명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라고 배리어프리 영화 연출을 할 때 고심한 부분을 고백했다.
이번 '리빙: 어떤 인생' 배리어프리 버전엔 배우 박효주가 내레이션을 맡아 맑으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윤단비 감독은 "주인공이 남자다 보니 여성 배우가 내레이션을 했으면 좋겠고, 그 마음을 이해할 법한 화자가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라며 "박효주 배우님은 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략하게 피드백 정도만 나눴는데, 감정도 과잉되지 않게 해주셨다"라고 박효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런 윤단비 감독이 앞으로 배리어프리로 작업해보고 싶은 영화는 '아노라' 같이 조금은 마이너하고 발칙한 영화다. 그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남녀노소 대중이 많이 좋아하는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고민이 많으실 거다"라며 "조금 더 이야기할 요소가 많은 문제작이 제작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들의 취향을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영화를 하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제 주변에서 영화를 하는 분들은 배리어프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다. 창작자들은 비슷하다"라며 "실제 영화를 수요하는 관객층들에게까지 잘 전달이 되었는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라고 더욱 많은 이들과 영화를 공유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남매의 여름밤' 배리어프리 작업을 했을 때 극장에서 같이 봤는데 다양한 관객들과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저에겐 영화를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고무적이었다. 제가 연출한 영화지만 새롭게 보게 됐다. 비장한 마음이나 각오라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뜻하게 보시고 또 다른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다. 또 배리어프리가 이런 부분은 아쉽다 하는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얘기가 나와서 발전을 해나갔으면 한다.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에 다 같이 모여서 한 해를 마무리하다 보면 다음 해에 더 잘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나. 그런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영화라 이 시기에 영화가 상영되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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