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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포옹 <12>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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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그날따라 장인은 곧 퇴원한 환자처럼 수염도 깎고 머리도 단정히 빗어 넘긴 모습이었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는 평소와 다른 언행을 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공허했다.

"이북에서 내려온 지 올해로 꼭 40년이야. 이제 틀렸어. 부모를 만나고 친지를 만난다는 것은."

"설령 갈 수 있다 해도 이런 꼴로는 안 되지."

그때 나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위로했었다.

"수술을 해보세요. 의사 말로는 의외로 좋아질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요."

"내 병은 내가 잘 알지. 악화될 대로 악화돼버렸어."

"우선 마음을 굳게 잡수셔야죠."

"수술해봤자야. 겨우 앉은뱅이나 면하게 해줄 뿐이지. 보나마나 앞으로도 이 병원저 병원에 돈을 갖다 바쳐야 할 것이야"

입원비를 조금도 보태주지 못한 내 형편으로서는 돈 얘기에 가슴이 뜨끔했다.

"며칠 전에는 마누라하고 이런 얘기를 했지. 내생을 믿어보자고. 그랬더니 되레 나더러 그래보라고 권하지 뭐냐. 그러면서 윤회라는 것을 말하더구먼. 죽는다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거야. 육신만 썩어 없어질 뿐 영혼은 그가 지은 업(業)에 따라 새로 태어나는 누군가의 몸을 찾아간다는 거야. 어쨌든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 기분이 좋았지. 이렇게 괴로움을 겪다가 그냥 덧없이 죽는다고 생각할 때마다 두려웠거든. 그래서 이제는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지."

"아버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장모님은 어떡하고요."

"그 사람 걱정은 안 해도 돼. 스스로 내 손을 자기 손에 묶어 같이 죽자고 덤비고도 남을 사람이니께. 내가 외도 좀 할 때 말끝마다 그랬어. 내가 보기 싫다기보다는 좋아서 그랬겠지만. 다른 건 다 변했지만 그 사람 그 마음만은 아직 안 변했어. 아직도 처녀 같지. 나 없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할 거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던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장인, 장모의 자살이 잘된 일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지만 그것으로써 그분들의 사랑이 더욱 뜨겁게 느껴져 가슴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삶에 비교되는 우리의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살을 맞댈수록 갈등의 골만 깊이 패여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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