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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포옹 <7>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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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이때 또 무전기가 삑삑거렸다. 이번에는 철수하라는 명령인 모양이었다. 무전병의 보고를 받은 조장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대원들에게 철수 준비를 지시했다. 그리고는 내게 다녀와도 좋다는 표시로 화장실 쪽을 향해서 턱짓을 했다.

나는 더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주인이 가리키는 뒷문으로 갔다. 역시 화장실 옆의 담은 높지 않았다. 주인 딸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그 길로혼신의 힘을 다해서 내달렸다.

그때 그곳에서의 탈출이 실패로 끝났다면 나는 어찌되었을까. 폭도로 몰려 중형을 언도받은 것쯤은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 암매장되어 뼈도 찾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장인이 다친 것은 그때였다. 도망치는 것을 방조했다고 죽지 않을 만큼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별거중인 아내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그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며 머리를 싸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하필이면 왜 그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것인지……… 물론, 아내와 마음 편했던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패랭이꽃이 새겨진 쪽빛 스카프를 선물했을 때나, 장인 허리에 좋다는 자석밴드를 사왔을 때는 아이들처럼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었다. 특히 스카프를 받고서는 그날 밤 잠자리에서 내 귀에다 이렇게 속삭이기도 하였다.

아기를 갖고 싶어요. 당신 닮은 아기를.

소위 나에 대한 사랑이 아내의 어두운 기억을 씻어내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그 군인들로부터 받았던 인간에 대한 환멸이 지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용서는 망각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서 싹트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 나는 아내의 공포스러운 기억을 말끔히 씻어줄 만한 아무런 방법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니 차라리 서로 안보는 게 마음 편할 뿐이었다. 하긴 부부싸움이 다 그것 때문에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기억과 결부되면 일주일도 좋고 보름도 좋았다. 그 언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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