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전하고자 하는 '구원 서사'의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 도달하는 길이 영원처럼 길고 멀다. 배우부터 미장센까지,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아쉬운 '트렁크'다.
지난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연출 김규태)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 노인지(서현진)와 한정원(공유)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다.
과감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를 연출한 김규태 감독과 '화랑'을 집필한 박은영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기간제 결혼이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를 바탕으로, 서로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표면에는 미스터리가 도드라지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인물의 관계성과 사랑이다.
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 NM(New Marriage) 소속 노인지는 네 번째 결혼을 마치고 다섯 번째 결혼을 준비한다. 결혼 상태인 한정원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불안과 외로움에 잠식된 음악 프로듀서다. 그는 이혼한 아내 이서연(정윤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그녀가 요구한 기간제 결혼 서비스에 마지못해 응한다. 노인지와 한정원은 매뉴얼에 따라 어색하고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다.
이서연은 윤지오(조이건)와의 새로운 결혼 생활을 즐기는 듯하지만, 한정원과 노인지에게 온 신경을 쏟는다. 맹목적 애정을 시험하듯 자신에게만 매달리고 의지하는 한정원에 만족감을 넘어 우월감까지 느낀다. 하지만 한정원의 일상은 노인지로 인해 점차 달라진다. 매일 밤 꾸던 악몽은 줄고 약 없이도 잠에 든다. 이서연과 살 때는 느낀 적 없던 낯선 온기가 집안을 채운다. 한정원은 노인지에게 끌리고 "자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한다. 노인지 또한 한정원을 신경 쓰게 되고,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뒤엉킨다.
어느 날 이들 앞에 수상한 남자 엄태성(김동원)이 맴돌며 위기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미스터리가 증폭된다.
전처가 제안한 기간제 결혼이라는 다소 자극적이고 이상한 설정 속 극 분위기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무겁기까지 하다. 초중반엔 네 남녀의 관계성과 상황을 아주 천천히 보여준다. 노인지가 왜 NM 소속 직원이 됐는지, 한정원이 왜 약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는지, 이들이 떨쳐내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가 뚜렷하게 드러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매 순간 긴장감을 느끼고 불편해하던 남녀가 서로에게 서서히 빠져들고 구원이 되기까지, 감정을 탄탄히 쌓아가는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토마토를 뺀 치즈버거를 함께 먹고, 공포 영화를 함께 보며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건 물론이고, 내면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서로의 위안과 힘이 되어주는 관계로 발전하는 서사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감정에 너무 치중됐기 때문인지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방식은 투박하고 다른 인물의 사연은 너무 대충 소비되다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강하다. 곁가지만 많고 실속은 없다. 특히 극 말미 윤지오의 선택은 너무 뜬금없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5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전 남자친구(이기우 분)의 행동 역시 '왜?'라는 물음표를 그려 넣게 한다.
가장 큰 의문은 노출 수위다. 정윤하의 베드신은 한정원과 이서연의 삐뚤어진 관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너무 긴 시간 여러 번에 걸쳐 등장하다 보니 굳이 이렇게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되묻게 된다. 과유불급 그 자체다.
여기에 엄태성의 등장과 함께 벌어지는 사건도 과하다. 광기의 스토킹을 넘어 살인, 몰카에 대한 협박, 총격전까지 이어지니 장르가 바뀐 건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 회에서 모든 사건이 급하게 해결되고, 엔딩에선 애틋함 가득 묻어나는 서현진과 공유의 로맨스물로 반전된다. '트렁크'를 켰을 뿐인데, 몇 개의 드라마를 본 건지 아리송하다.
그럼에도 '트렁크'를 봐야 할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역시나 서현진과 공유의 멜로 호흡이다.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많은 감정을 담아내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배우임을 입증하며 극의 무게를 꽉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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