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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풍경 <8>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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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광기(狂氣). 그것은 전투적인 폭력성을 띠고 있었다. 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강간을 하듯 일을 저지르고 싶어지며 마음속으로 선을 긋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꿈들거리는 광기에 의해 한쪽은 우익이 되고, 한쪽은 좌익이 되어 무익한 싸움이 시작되곤 하였다. 물론 나는 동생처럼 내 생각을 남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이해를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활에 파묻혀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새 고개를 쳐들었던 광기는 제풀에 꺾여 가슴속 어딘가로 잠복을 해주기 때문이었다.

"식구들을 괴롭힐 바에는 차라리 없어져버릴 것이지."

이러한 말도 역시 광기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을 것이었다. 녀석의 순수한 동기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 결과로 나타난 녀석의 행동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녀석과 언쟁 끌에 따귀를 갈긴 것도 그랬다. 솟구치는 광기를 자제하지 못하고 손찌검을 하게 된 것이었다.

"너의 신념도 좋지만 식구들 입장도 생각해야 될 거 아니냐?"

"전 형하고 달라요. 공부해서 좋은 직장 얻어 돈 잘 버는 게 꼭 식구들 위하는 길이라고는 생각지 않거든요. 삼촌을 가슴에 묻고 사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응어리를 풀어줘야만 해요. 그러려면 삼촌이 왜 그때 죄 없이 죽었는가, 그 이유를 명명백백 밝혀내야 해요. 이 일은 남의 일이 아니죠, 바로 우리 식구들이 누명을 벗자는 거 아닙니까? 우리 집은 폭도의 집안이 아니잖습니까?"

"넌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는 모양인데 아직 멀었어. 아직 가해자가 살아 있어. 그러니깐 역사에 맡기고 기다리자는 거야."

"형 말은 패배주의자의 변명일 뿐이죠, 기회주의자의 태도구요."

"기회주의자라니……"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패배라는 말에는 별로 거북한 느낌이 들지 않았으나 '기회주의자'라는 말에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자신의 이득과 보신을 위해서 그러는 태도와 불가항력의 현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때를 기다리자는 것은 그 순도가 다르지 않은가.

"그래, 난 투사가 아니다. 현실을 피해가는 패배자라고 해도 좋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학비를 대준 결과가 이것뿐인가 하는 배반감까지 들어 폭력을 쓰고 말았다.

동생은 입 가장자리에 피가 나오는데도 닦을 생각을 않고 나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자기한테 불만이 있으면 후련하게 퍼부어대 보라는 그런 얼굴이었다. 나는 속으로 찔끔했지만 내친 김에 더욱 큰 소리를 질렀다.

"니 학교 뒷바라지해준 게 억울해서 이런 게 아니야. 기회주의자란 말, 형한테 할 소리냐? 니 하는 일도 좋지만 사람이 먼저 돼야 할 게 아니냐!"

손찌검과 큰 소리가 주효했는지는 몰라도 녀석은 마침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내 발등에 눈물을 두어 방을 떨어뜨리더니 휙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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