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형사가 살고 있다는 4.19탑 부근은 나에게도 낯익은 곳이었다. 대학 3학년 때 그곳에 있는 저택에서 집지기로 자취를 하며 한 해 동안이나 보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곳을 가려면 광화문으로 나가서 6번이나 8번 버스를 타고 가다 내리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그곳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산행을 나가는 사람처럼 방한복에다 흰 면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빈말을 한번 던져본 것이 고작이었다.
"사람들이 보면 북한산으로 등산가는 줄 알겠구만요."
"이놈아, 이런 날씨에 등산하는 사람이 어딨냐?"
잔뜩 내려앉은 허공을 보면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만 같았다. 허공은 먹물을 흩뿌려 놓은 듯 짙은 잿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버지는 광화문 행 좌석버스에 앉자마자 김 형사 얘기부터 늘어놓았다.
"김 형사 잡을 어떻게 찾아낸 줄 아냐? 그 꼬마 녀석 때문에 찾아냈지 뭐냐, 니 에미허고 북한산 백련사엘 들렀다 내려오던 길이었을 것이다. 백련사허고 4.19탑 중간쯤에 버스종점이 있제. 그 종점 옆 공터 돌밭에 애기가 자빠져 있지 뭐냐. 난 귀찮아서 그냥 가자고 그랬는디 니 에미가 절에 갔다 온 사람덜이 그러믄 쓰겄냐고 하더라. 그래 그 애기헌테 가봤더니 애기 이마가 아주 겁나게 찢어져 있지 뭐냐. 얼른 피를 닦아주고 애기를 살살 달개서 지 집에 데려다 주었제."
"……"
"아, 그런디 세상 인심도 알만 허지. 애기엄마가 정육점을 하고 있더라만. 애기에게 상처를 주어 미안허니깐 거기까지 데려온 줄 알더란 말이다. 나중에야 애기에게 확인을 해보고는 의심을 풀더라만, 민망허니께 고개를 돌리더니 지 남편인 듯한 사람에게 욕을 허드라. 그것도 영업허가증에 박혀 있는 사진을 보고 말이여. 쯧쯧."
"욕을 하길래 쳐다봤더니 그 사진이 김 형사였다는 말이군요."
"영락없드라."
"호구지책으로 정육점을 한 거구만요."
"그 여자 말로는 요양을 허기 위해서 형사를 잠시 그만두었다고 허드라만 난 고게 수상쩍단 말이다. 몇 달 전만 해도 펄펄 날던 사람이 요양은 무신 요양이냔 말이여. 학생들이 그 사람 손아귀에 잽히기만 허면 모가지 비틀어진 닭같이 맥을 못 췄다고 허지 않더냐."
"하는 일에 염증을 느껴서 잠시 그만두었을 수도 있겠지요. 뭐."
"건강이 정말 안 좋아서 그런 것도 같고, 사실은 오늘 가는 것 빼고도 다섯 번이나 정육점을 찾아가지 않았겠냐. 근디 그때마다 북한산엘 가고 없더란 말이다. 또 어찌 보면 보복이 두려운께 그런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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