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자]
찬바람이 연일 불면서부터 풍경(風磬)은 더욱 녹이 슬었다. 그것의 표면에 저승꽃 같은 거무튀튀한 반점들이 군데군데 돋아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풍경은 식구들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애물덩이가 되어 딸랑거렸다. 어머니가 가끔 풍경 소리를 넉 달째 소식이 없는 동생의 울음소리로 들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곤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베란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풍경을 떼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더러 동생이 무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풍경을 향해서 합장을 한 채 연신 뭐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풍경을 처음 본 곳은 청계천 7가에 있는 '현등사'라는 고물상이었다. 고물상 돌출간판 밑에 걸려 있던 풍경은 몸뚱어리가 다섯 살 난 아이의 주먹만 하였고, 놋쇠 판으로 된 고기 모형은 어미 붕어를 연상시켰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 풍경을 사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동차의 소음과 노점상들의 고함과 건물들이 내뱉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들 속에서 맑은 풍경소리에 잠시 발길을 멈추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버스가 한강다리를 중간쯤 건너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콧병(비염)에 영험하다는 탕약을 두 제나 지어 바로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강물은 석양빛을 받아 싱싱한 고기비늘 같은 제 물결을 번쩍거리며 뒤척이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 콧물을 훔치면서 고기 모형이 달린 그 풍경을 다시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 콧병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위안거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믿어보면서…. 며칠 후 별 수 없이 나는 '현등사'를 찾아갔다. 산사(山寺)에 가서나 들어볼 수 있는 청정한 소리를 내는 그 풍경을 사기 위해서였다. 풍경은 여전히 거기에 꾀죄죄한 모습으로 걸려 있었다.
고물상 주인은 풍경을 꼭 팔려고 그곳에 걸어놓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찌해서 고물상까지 굴러온 그것을 쓸 만한 것쯤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였다.
"주물로 만든 엉터리가 아니오. 자, 이 소리를 잘 들어보더라고. 망치로 오래 두들겨 맹근 수공품이지라."
주인의 설명대로 풍경은 청정한 소리를 길게 내었다. 맑은 소리가 여음에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쇳물을 부어 맹근 주물은 여음이 짧고 거칠지라. 어느 절에서 굴러왔는지 모르겄소만 소리가 괜찮응 것인께 걸어둘 만허지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곧장 바람이 드나드는 베란다 천장 한가운데에 시멘트 못을 친 다음, 거기에 매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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