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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26>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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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해우소 옆 그늘진 곳에 세워둔 승용차에도 서리에 젖은 낙엽들이 붙어 있었다. 이틀 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승용차가 낙엽으로 모자이크되어 있는 것이다. 여자는 그 풍경이 재미있는지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강헌이 승용차 열쇠를 꺼내 보이자 정색을 하며 물었다.

"가시게요?"

"네."

"지금요?"

"그런데 운곡스님이 안 보이는군요. 갔다고 전해주시죠."

그러자 여자가 맥없이 창에 붙은 낙엽을 떼어내며 말한다.

"명함 있어요? 김룡사 사진 보내드릴게요."

"아니오. 전화번호나 주소가 바뀔 겁니다."

강헌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자 여자가 또 낙엽을 떼어내고 있다. 낙엽을 하나하나 떼어낼 때까지 만이라도 가지 말라는 듯이. 그런 인상을 받자 강헌도 왠지 망설여진다.

사실, 깊은 잠에 들지는 못했지만 이틀 동안 얼마나 편안한 날이었던가. 어머니 흔적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대신 불안을 잠재워준 김룡사를 만났던 것이다. 어찌 보면 염치없이 이틀간이나 김룡사에서 무위도식한 셈이다. 다시 바라보니 여자의 큰 콧구멍이 이국적이다.

"강 사장님."

"네?"

"한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어요."

"말씀하시죠."

그러고 보니 강헌 자신이야말로 김룡사에서 가장 비밀스런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정을 발설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김룡사 행의 내막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여자가 샛노란 은행잎을 들고서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김룡사에는 왜 왔죠?"

"글쎄요."

강헌은 엷은 미소로 대답하고는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여자가 걱정스럽게 말한다.

"뭔가 쫓기는 분 같아요. 처음 봤을 때 표정부터 그랬어요."

"지금도 그런 표정인가요?"

사진작업을 하는 여자여서 그런지 사람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눈이 놀랍다. 편안했던 이틀이었지만 언뜻언뜻 초조한 표정을 내비쳤을 수도 있었겠지. 바로 그런 순간을 여자는 훔쳐본 것이리라. 어쩌면 여자는 어젯밤 자신의 젖무덤을 더듬던 강헌의 손길에서도 본능적으로 그런 심리를 느꼈을 것만 같다. 성욕이 아니라도 불안한 남자는 여자를 어머니처럼 찾기도 하니까.

"서울로 가는데 동승하려면 타시죠."

"아니요. 작업이 덜 끝났어요."

여자가 손을 흔들자 강헌은 목례를 했다. 하루라도 더 묵고 싶지만 이제는 김룡사를 떠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길은 모태에서 시작하는 탯줄처럼 전나무 숲 사이로 멀리 나 있다.

강헌은 승용차를 서서히 몰다가 일주문에서 멈추었다. 청소를 요령 있게 잘 하는 운곡이 출타중인지 빗자루 자국이 나 있지 않다. 낙엽이 문 안팎으로 뒹굴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풍스런 편액扁額에까지 낙엽이 몇 잎 얹혀 달랑거리고 있다. 거미줄이 쳐진 편액에도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운달산 김룡사.

일주문 안이 아늑한 안식의 공간이라면 밖은 어수선한 열뇌熱惱의 세상일 것이다. 낙엽의 무더기는 하염없이 일주문 안팎에서 뒹굴고, 강헌은 그 경계에 서서 김룡사에 작별을 고했다. <끝>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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