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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20>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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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보름달이 떠 휘영청 밝다. 달빛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으려는 듯 여자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마치 피사체라는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들고양이 같다. 두 눈을 보니 그렇다. 탑 주위를 이리저리 돌고 있는 그녀의 눈도 달빛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탑 아래서 강헌은 자광스님의 어머니를 떠올리자 다시 답답해진다. 아무리 종교의 세계라지만 스님을 벌하지 않고 팔을 하나 가져가다니 착잡해지는 것이다. 스님이 술집을 묻지 않았다면 가르쳐주는 일도 없었을 터이다. 불심이 깊은 자광스님의 어머니가 어찌 먼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벌을 내리다니, 강헌은 자신의 어머니가 벌을 받은 것처럼 속으로 언짢았다.

"탑에 자주 오시네요."

"밤에도 사진이 찍힙니까?"

"어젯밤에는 찍으려다가 실패했어요. 구름이 낀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보름달빛이 아주 좋아요."

여자는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기 위해 경내를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김룡사의 모든 것을 담겠다고 작심한 여자인 것 같다. 자광스님의 제의에 의해서 김룡사 사진집을 만들기 위해 그러는지도 모른다. 탑이나 돌부처님 같은 피사체를 밤낮 가리지 않고 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여자가 감히 탑을 알가. 탑의 속모습까지 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침묵하는 탑의 소리를 과연 들을 수 있을까. 강헌의 어머니 같은 아낙네들이 탑에게 기도한 내용까지 필름에 담아낼 수가 있을까.

"무얼 찍습니까?"

"탑이에요."

"저 둥그런 달까지 찍어집니까?"

"아니에요. 노출을 1, 2분 주기 때문에 움직이는 달은 비행접시처럼 일자로 이지러져버리지요."

"아, 달이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군요."

"그런데 강 사장님은 왜 탑에 자주 나오죠?"

"글쎄요."

"탑 속에서 무얼 찾는 분 같아요."

"맞습니다."

"저도 탑 속에서 무얼 찾는 건 마찬가지예요."

"그게 뭡니까?"

"그냥 느낌이라서 뭐라고 표현하기가 그러네요."

여자가 사진 강의를 하듯 얘기한다. 그녀가 찾는 것은 탑의 살아 있는 듯한 입체감이란다. 그래서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 달빛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밝은 빛 속에서의 피사체는 평면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더 입체감이 살아난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렇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강헌의 삶에도 있다. 강헌에게 시절이 좋을 때의 어머니는 한낱 평면의 사진 한 장으로 족했었다. 그러나 형편이 몹시 어려워진 때부터 강헌은 사진이 아니라 진짜 어머니를, 그 흔적이라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는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저 탑만이 알고 있을 것 같다.

여자는 고정시킨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탑을 계속 담고 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마치 “이쪽을 잘 보세요”하고 얼러대는 것 같다. 그러나 탑은 꿈쩍 않고 묵묵부답이다.

잠시 후, 바위에 걸터앉은 강헌에게 여자가 다가온다. 여자도 바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강헌은 동물적으로 여자의 냄새를 맡는다. 송이버섯의 솔향기를 쐰 것처럼 콧속이 상큼하다. 그러더니 이미 서리가 내리고 있는 듯 어깨가 차가워진다. 여자도 추운지 진저리를 치고 있다.

갑자기 여자가 껴안고 싶어진다. 강헌은 그런 충동에 빠져 여자를 끌어안고 만다. 여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선선히 안겨온다.

"미안해요."

"뭘요?"

"탑 앞에서 이러는 게……."

"저도 카메라 앞에서 이러는 건 처음이에요."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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