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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10> - 정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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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편집자]

창문이 확 열리는 소리에 강헌은 눈을 떴다. 가수상태로 드러누워 있었는데, 여름에 친 모기장 밖의 창문이 바람에 열린 것이다. 그러니 고정시킨 모기장 때문에 안에서 창을 닫을 수도 없었다. 순간 강헌은 누군가가 창문을 열어젖힌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조금씩 열린 것이 아니라 확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바람, 동광, 여자, 운곡.

강헌은 밤이면 눈을 뜬다는 김룡사의 바람을 의심했다. 그런데 바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을 탐냈을 리는 없다. 바람이 잠든 사람의 영혼을 훔치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액수란 그제 오후 늦게 회사를 나오면서 경리 담당 미스 김에게 건네받은 125만원이 전부이다.

"사장님, 금고에 남은 현금 다예요."

"어음은?"

"서점 주인들이 발행한 약속어음이 한 다발 있구요."

듣고 싶지 않은 미스 김의 보고였다. 말 그대로 폭풍 전야였다. 하루만 지나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은행에서는 부도를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 형사고발할 것이고, 사채업자들은 우르르 몰려와 회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것이었다.

강헌은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켰다. 그러자 어디서 나왔는지 지네 새끼 같은 벌레들이 무리를 지어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 검은 마디마다 수염 같은 다리가 붙어 꼬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강헌은 바글거리는 벌레들을 보고는 내심 질려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저놈들이 얼굴이며 목이며 팔다리를 가렵게 했던, 깊이 잠들지 못하게 한 장본인 같다. 눅눅한 이불 밑에서 잠자코 있다가 이방인이 나타났다고 저러는 것 같다. 아니면 강헌의 번뇌와 고민들이 저런 갑각류로 환생하여 몸속에서 빠져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검고 못생긴 미물들에게도 감사를 해야 할지 말지 강헌은 입맛이 씁쓸하다. 형광등 불빛을 무서워하는지 벌레들은 곧 자취를 감춰버린다.

밖으로 나온 강헌은 창문을 들이밀어 꼭 닫았다. 아늑한 경내는 어둡긴 했지만 군데군데 켜놓은 전깃불이 스며들어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온 김에 해우소까지 들린 강헌은 인기척을 느꼈다.

동광이었다.

그는 성대를 보호하려고 목에 허연 수건을 두툼하게 감고서 목탁을 들고 있었다. 도량석을 하기 전인데 해우소를 먼저 들른 모양이었다.

천왕문 아래쪽의 불빛이 좀 더 훤한 데로 나오니 벌써 그의 머리에도 무서리가 내린 듯 젖어 보였다. 동광이 하얀 의치를 드러내며 말했다.

"처사님, 그 여자 조심하십시오."

"사진작가를 말하는 겁니까?"

새벽부터 신성한 도량에서 이성異性의 얘기를 듣는다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무슨 일이 있었다면 강헌 자신도 술을 함께 마셨으므로 일말의 책임이 있는 셈이었다.

"어젯밤에 말이에요. 내 참."

"그 여자, 많이 취했을 겁니다."

"취한 건 취한 거고…… 막 잠을 자려는데 여자가 내 방으로 들어오겠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평소 아는 사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까?"

"그 여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스님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스님 자지를 보러 오는 것 같다 이겁니다. 처사님, 그런 여자들 의외로 많습니다. 많아요."

"글쎄요. 뭐가 뭔지……."

"법당으로 가서 부처님 허락을 받아와라, 그러면 당장 스님 자지라도 주겠다고 면박을 주어 쫓아버렸다 이겁니다."

동광의 말대로라면 낮과 밤 동안 시간에 따라 얼굴이 달라지는 여자다. 절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하고, 독신 수행자들과 놀아나는 것이 절을 찾아온 그녀의 목적이 되는 셈이니까.

김룡사의 밤바람이 그녀에게 무슨 마술을 부려 걸려들게 한 것은 아닐까. 낮에 보았던 통통한 그녀는 관능적인 아름다움 말고도 친절하고 귀여운 데까지 느껴졌던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광의 얘기대로라면 그녀의 귀여움은 사라지고 관능만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동광이 잘못 보았는지도 모른다. 여자는 동광이 자고 있던 방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불교설화에 수도승의 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흔히 여자로 나타나는 관세음보살의 이야기에서처럼 그녀는 문을 두드렸을 뿐인 것이다. 그런데 동광은 이미 머릿속에 파계를 상정하고 있다. 동광에게 그녀는 색녀色女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광은 15년 동안이나 선방을 돌아다녔다고 하지만 아직도 관세음보살과 색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승려다. 수행을 지금보다 몇 갑절이나 더 간절하게 해야 하는 승려인 것이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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