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니 9년이 지난 일이었다. 법성이 H사를 찾아간 것은 사숙 월적이 입적하기 며칠 전이었다. 월적은 대중이 서너 명밖에 되지 않는 낙동강 강변의 퇴락한 H사 조실이었다. 이름만 조실이었지 선방이 없는 절이었으므로 월적의 존재는 유명무실했다. 평생 선방만 다닌 선객이었으므로 상좌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변변한 절 한 채 차지하지 못한 데다 참선만 고수했던 탓에 상좌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행자가 드물었다. 행자들 사이에 힘 있는 주지나 고명한 조실을 은사로 삼으려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런데 법성만은 달랐다. 하안거나 동안거가 끝난 산철에는 반드시 월적을 찾아가 안부를 살폈다. 우멸도 은사 법성을 따라가 월적에게 인사를 드렸다. 산철 동안 H사에 와 있는 월적을 뵈러 갈 때는 무엇이든 승용차에 싣고 갔다. 봄에는 화개나 보성으로 가서 녹차를 구하거나 진주 포교당에서 보시 받은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한약, 풀 먹인 깔깔한 장삼 등을 가져가기도 했다. 월적은 특히 차를 보면 도반을 만난 듯 반가워했다.
"어디서 오신 햇차인가?"
"화개에서 덖은 야생찹니다."
"칠불암 생각이 나는구먼. 칠불암에 살 때 나도 차를 만들어 보았지."
언젠가 법성이 화개와 보성의 차맛을 묻자 마지못해 대답하기도 했다.
"차를 마시면서 이러쿵저러쿵 시비 분별하는 것이 뭣하지만 내가 마신 화개 차맛은 돌밭에서 자라선지 단맛이 돌고, 보성 차맛은 바닷바람을 쐬서 그런지 간간하더구먼."
어느 때나 법성은 한두 마디 묻고 말았다. 그러나 우멸은 궁금한 것이 많았다.
"조실스님, 좋은 차는 어떤 차입니까?"
"어째서 묻느냐?"
"다음에는 더 좋은 차를 구해 오겠습니다."
"분별하지 마라. 그것이 집착이다. 다만, 네가 물었으니 답하겠다. 혼자 마시면서 차 한 잔에 내가 풍덩 빠질 수 있는 차지."
"무슨 말씀인지요?"
월적이 미소만 짓고 있자, 법성이 찻잔을 내려놓고 대신 말했다.
"중국의 동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추울 때는 추위 속으로 들어가고, 더울 때는 더위 속으로 들어가라고 했어. 사숙님께서 찻잔에 풍덩 빠지신다는 얘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된다는 것이야. 선(禪)이란 그것이 아니겠느냐?"
"하하하. 법성스님 경지가 나보다 위네."
"사숙님, 과하십니다. 저에게 견처(見處)가 있다면 아직도 겨자씨만한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사숙 월적과 차담을 하는 시간은 늘 상쾌했고 가을바람처럼 소쇄했다. 우멸에게는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법성도 마찬가지였다. 고지식한 법성도 월적 앞에서는 부드럽고 융통성이 많아졌다. 일찍이 은사가 입적한 탓에 법성은 월적을 사숙보다는 은사로 여기었던 것이다.
우멸은 그렇게 믿었다. 9년 전에 마지막으로 월적을 뵀을 때 그의 법을 이을 법상좌는 법성이 아닐까 싶었다. 이틀 전에 내린 장대비로 낙동강 강물은 흙탕물로 변해 누렇게 소용돌이치며 흐르고 있었다. 전해 들었던 소식보다 월적의 노환은 위중했다. 월적의 유일한 상좌 법일은 벌써 심신이 지쳐 있었다. 법성을 만나자마자 법일이 월적의 중한 상태를 알려주었다.
"병원으로 모시려고 해도 거절하십니다."
"사람을 알아보는가?"
"정신은 총총하십니다. 다 알아보시는지 간간히 말씀도 하십니다."
"공양은 좀 드시는가?"
"일부러 곡기를 끊으신 것 같습니다."
"얼마나 됐는가?"
"열흘 됐습니다."
"허허. 가실 날을 스스로 아시는 모양이네."
법당으로 들어가면서 우멸이 법성에게 물었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수좌라면 그래야지."
우멸은 법당 부처님 앞에서 삼배를 하고 난 뒤에도 참지 못하고 말했다.
"조실스님께서 가실 날을 정해두셨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래야 수좌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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