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人]① "항상 그리운 故이선균" 조정석, 기회·도전의 '행복의 나라'

[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조정석이 코믹한 얼굴을 지우고 울분을 쏟아내는 변호사로 변신했다. 故 이선균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행복의 나라' 촬영 당시를 떠올리면 행복함만 가득했다.

최근 개봉된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는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의해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 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故 이선균의 유작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인 10.26 대통령 암살 사건과 12.12 사태를 관통하는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조정석은 정당한 재판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 하는 변호사 정인후를 연기해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이선균은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를 맡았으며, 유재명은 밀실에서 재판을 도청하며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권력의 중심 합수부장 전상두 역으로 열연했다. 다음은 조정석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행복의 나라' 정인후를 통해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같은데 스스로는 어땠나?

"시나리오 받았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역할을 제안받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뭔가 서민적이고 유쾌하고 재미있는 코미디 장르 제안을 주로 많이 받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라는 생각에 해보고 싶었다. 촬영 때부터 저는 굉장히 좋았다.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는 웃음기, 유쾌한 기조를 약간 덜어내고, 저도 모르는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고 기대가 됐다. 솔직히 결과물을 처음 봤을 땐 제 연기를 보진 못했다. 영화를 보게 되더라. 그래서 좋고, 잘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정인후는 박태주를 만나 변화한다. 정인후를 만들어갈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나?

"박태주에 대한 안타까움도 분명히 있지만, 동질감이라고 해야 하나. 미러링이 됐던 것 같다. 정인후가 아버지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재판에 뛰어들고, 박태주라는 인물을 변호하게 됐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인데, 그 자체가 정인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마지막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장례를 치를 때 박태주의 딸이 와서 귤을 전해줄 때 심정이 미러링이 되는 것 같다. 그런 것이 디테일하게 쌓여 인간적인 정이 생기고, 이 사람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신경을 많이 썼다. 감정적으로 북받치는 장면이 많아서 얼마나 분배하고 조절해야 할지가 중요했다."

- 작품 선택에 있어서 고민되는 지점은 없었나?

"하나도 없었다. 선택 이유 중 골프장 장면이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저는 판타지를 되게 좋아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영화적으로 가공이 되고 길잡이가 되는 인물이 정인후다. 저는 골프장 장면이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일개 변호사가 그 인물에 대해 일갈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되게 통쾌한 느낌이 들었다. 그 부분이 매력이다."

- 영화를 보면서 이선균 배우에 대한 그리움도 컸을 것 같다.

"항상 그립다. 맨 처음 볼 때 재명이 형이 선균 형이 보여서 마음이 좀 그랬다고 했다. 저는 영화 자체를 보고 싶어서, 그런 마음을 배제하고 봐야지 했었다. 성공적으로 잘 보고 있었는데 취조실에서 하이파이브 하는 장면에서 무너졌다. 그 장면이 유일하게 서로 웃는 모습이다."

- 현장에서는 어땠나?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재명이 형, 선균이 형, 저 이렇게 삼 형제처럼 재미있었다. 변호단까지 끈끈해서, 다른 현장보다 소중하고 기억에 많이 남는다. 회상을 해보면, '행복의 나라'만큼 좋았던 현장은 드문 것 같다. 그만큼 끈끈하고 좋았는데, 그 중심에 있던 분이 선균 형이다."

- 외형적으로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흙 감자처럼 나왔다. 주변에서 '막 캐낸 흙 감자' 같다고 하더라. 그렇게 보여서 전 더 좋았던 것 같다."

- 추창민 감독은 어떤 스타일인가?

"차분하고 조용조용하고 악착같으시다. 되게 섬세하다. 너무 힘들었다가 아니라 저는 그게 더 잘 맞았다. 더 해보고 싶으면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하고 한다. 저도 끈질기게 하는 성향인 것 같다. 그런 것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너무 좋았다."

- 추창민 감독은 골프장 신에서 얼음이 안 얼어있어서 아쉬웠다고 하더라.

"정말 추운 날이었다. 12월이라 입김이 마치 '타이타닉'처럼 나왔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너무 안 살았더라. 제가 느끼는 추위와 고생한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입김이 더 안 나더라. 정말 너무 추웠고, 따뜻하게 입고 저 멀리서 골프채를 들고 있는 재명이 형이 부러웠다. 감독님이 제가 추웠던 거 아시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나 하다가도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다. 얼어있어야 그걸 깨고 들어가는 정인후의 모습이 더 신에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그렇게 힘들게 찍었는데, 영화로 보고 난 후의 만족도는 어떤가?

"만족한다.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많이 찍었다. 일갈하는 대사를 약간 자조적인 느낌으로 읊조리기도 하고 조롱하듯이도 해보고 조소도 해봤다. 그러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토해내듯이 나왔는데 저는 그 테이크가 좋았다."

- 초반에 정인후와 전상두가 마주하는 장면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준 느낌이다. 그래서 그 장면도 중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첫 대면 장면이고 서로 대치하는 것이라 중요한 장면이었다. 재명이 형의 분위기, 눈빛, 아우라 등에 계속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놀라웠다.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밖에 없는 느낌이 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약자니까, 그런 의미에서 형이 그렇게 해줘서 좋았다. 전상두가 정인후에게 호통을 세게 치고 소리 지르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혼자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라 완전 새로운 느낌이라 좋았다."

- 이선균 배우가 조정석 배우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얘기를 했다. 배우고 싶다는 말까지 했는데, 배우로 만난 이선균은 어땠나? 역으로 나 또한 배웠다 하는 부분이 있나?

"제가 진짜 많이 배웠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편한 분위기였는데, 슛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상대적으로 제 대사가 많다. 대사를 하고 상대 배우에게 에너지를 줘도 잘 받지 못하면 안 된다. 어찌 보면 받아주는 역할이 되게 중요한데 형은 받아주는 역할을 너무 잘해주셨다. 그런 점에서 이선균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고, 제가 더 많은 걸 배웠다."

- 조정석 배우가 발견한 자신의 새로운 얼굴은?

"영화에 쓰이진 않았지만, 최종 진술 법정신이다. 마지막으로 변호하는 신을 롱테이크로 찍었다. 사이드에서 넓게 찍었는데 제 얼굴을 보고 새로움을 느꼈다. 울분도 울분인데,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고 이렇게 될 것만 같은 현실의 억울함도 느껴지는 얼굴이 있었다."

- 제일 많은 테이크를 갔던 장면은 무엇인가?

""이럴 거면 재판을 왜 하는 겁니까"라면서 난동을 피우고 끌려나간다.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와 우현 선배님에게 혼난다. 이 장면도 롱테이크로 길게 찍었다. 26번인가 찍었다."

- 본인이 생각하는 명장면은?

"엔딩 장면을 좋아한다. 박태주가 마지막으로 최종 진술하는 모습, 정인후와 박태주가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