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최근 '음반 밀어내기' 논란으로 설전을 벌였다. 민희진 대표는 지난달 하이브로부터 뉴진스의 앨범 10만장 밀어내기를 권유 받았으나 이를 거부했다며 내부고발성 항의를 했다고 주장했고, 반면 하이브는 "우리는 음반 밀어내기를 하지 않는다. 민희진 대표는 다른 아티스트들의 음반 판매량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했다"며 이를 반박했다. 양측은 음반 밀어내기 논란을 주장하고 반박하며 여전히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음반보다 더 이상한 음원 시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실상 '음원 사재기'의 수법으로, 그 노래를 듣고 싶지 않고 스트리밍 하지 않아도 스트리밍이 되는, 기이한 음원 바이럴 마케팅의 형체가 존재하는 것. 100억원을 쓰면 1위가 된다는 설이 나오고, 돈을 쓰면 유튜버들이 '광고 표기' 없이 '실체 없는 인기'를 만들어 주는 신기하고 잘못된 세상. 과연 누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 노래 안 듣고 싶은데, 계속 스트리밍 돼요"…100억 바이럴의 힘
30대 자영업자 A씨는 최근 희한한 현상을 겪었다. 업장에서 틀어놓는 힙합 알앤비 플레이리스트에 한 신인 걸그룹의 데뷔곡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다. 영업장의 분위기와 맞지 않아 수 차례 노래를 넘겼으나, 이 곡은 이후로도 7~8회 가량 갑자기 튀어나와 A씨를 당혹케 했다. "이젠 더이상 그 걸그룹의 노래를 듣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지만, A씨는 원치 않게 7~8회 이상 걸그룹 노래를 스트리밍한 상태가 됐다.
30대 회사원 B씨도 마찬가지. 회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들을 요량으로 유튜브에서 즐겨 듣던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클릭한 B씨는 쌩뚱맞게 등장한 한 신인 보이그룹의 데뷔곡을 듣게 됐다. 노동요라는 콘셉트에 안 맞는 청량 상큼한 노래에 다른 노동요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봤으나 그 리스트에도 해당 보이그룹의 노래가 들어있었다. 회사 동료들은 이제 이 노래를 흥얼거릴 줄 안다. 하지만 다들 "내가 왜 이 노래를 알고 있지?", "이 노래 부른 사람이 누군데?"라고 말한다. 리스너의 선택과 의지가 배제된 스트리밍이 발생한 것이다.
A씨와 B씨가 혼란을 겪고 있는 건, 과도한 SNS 바이럴 마케팅 때문이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글로벌 인기를 높이기 위해 유튜브나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멜론 플레이리스트에 무작위로 해당 노래가 삽입된다. 어느 누구도 플레이리스트에 노래를 끼워넣지 않았지만, 바이럴 마케팅으로 노래가 들어가면서 '아무도 스트리밍 한 적 없지만 엄청나게 스트리밍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 노래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도 원치 않게 스트리밍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수를 모르고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순위가 높아진다. 돈을 많이 쏟아부을수록 더 많은 플레이리스트에 더 자주 곡이 삽입된다.
이와 관련, 바이럴 마케팅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최근 조이뉴스24에 "가수의 인기와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플레이리스트 삽입으로 순위를 높이는 방식의 바이럴 마케팅이 있다. 약 100억 원 가까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이상도 있다"고 귀띔했다.
◇순위에만 목숨 거니…티켓값↑·사재기 의혹·해외 시선까지 망친다
문제는 이같은 방식이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행된다는 점이다. SNS 바이럴 마케팅이 절대 위법은 아니지만,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전세계 차트를 교란시킬 정도면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해외 공연 규모로 팬덤이 입증된 가수라면 모를까, 어떻게 K팝 시장의 '생 신인'들이 해외 차트의 톱 랭크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건 수십, 수백 억원의 돈을 써서 '실체 없는 인기'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이 모든 건 순위에만 목숨을 거는 K팝 시장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물론 SNS 바이럴 마케팅이 대중에게 통해 신인 그룹의 팬덤이 단숨에 형성되고 공연 규모를 키워 돈을 벌 수 있다면 최고의 결과겠지만, 바이럴로 성장한 그룹 대부분은 국내, 해외에서 거둔 엄청난 성적에 비해 공연 규모가 따라오지 못한다. 회사 입장에선 성적을 올려놨으니 공연장을 마냥 작게 잡을 순 없는 터. 관객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성적에 맞는 공연장을 잡는다. 그렇다면 만석을 기록하지 못하는 공연장에서 수익은 어떻게 거두는가. 팬들의 고혈을 빨 듯 티켓값을 올리면 되는 것이다. 물론 물가가 오르며 공연 세트장을 짓기 위한 자재 비용이 매우 올라간 것이 티켓값 상승의 주 요인이나, 이같은 비화도 존재한다는 걸 함께 알리는 것이다.
바이럴 마케팅으로 실체 없는 인기를 만든다면 곧 해외에서 K팝을 보는 시선도 나빠진다. 과거 7~8년 전 국내 음원 사재기 논란 당시 차트에 갑자기 튀어나와 1위 하던 가수들을 대중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가. 팬덤과 리스너가 입증되지 않은 K팝 신인들이 대뜸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해외 리스너들이 그 가수들과 K팝 업계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결국 순위에 목숨 거는 상황들이 K팝의 기반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K팝은 사람을 상대로 하는 산업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망가진다면, 회사는 물론 업계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 한 가요 업계 종사자는 조이뉴스24에 "수백 억원의 돈을 쏟아 실체 없는 순위를 만드는 것, 말이 좋아 'SNS 바이럴 마케팅'이지 사실상 음원 사재기 아니냐"며 "특정 노래를 듣고 싶지 않은 사람, 관심 없는 사람들도 자기도 모르는 새 스트리밍 하게 만드는 게 어떻게 사재기가 아닐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과연 이 방식이 옳은 것일까. 업계에서는 모두 한 목소리로 "자본의 힘만 믿고 수백억원을 쏟아부어 차트를 교란시키는 SNS 바이럴 마케팅에는 일정 부분 제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정위 "바이럴 제재 어렵지만, 소비자 기만·경쟁법 위반 가능성有"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아직 이같은 과도한 바이럴 마케팅 방식이 가져다주는 K팝 업계 악영향에 대해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같은 사태가 지속된다면 분명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공정위 관계자는 22일 조이뉴스24에 "바이럴 마케팅에 거액의 돈을 쓰는 것은 광고의 영역이므로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황이 소비자 기만으로 이어지는 여지가 발생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음원차트 교란이나 사재기처럼 느껴져 소비자 기만이 의심된다면 추이를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 밝혔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이 상황이 경쟁법 위반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광고 표기 없는 인플루언서 노래 홍보 '철퇴'…공정위 "표시광고법 위반"
또 조이뉴스24는 취재 과정에서 잘못된 방식의 바이럴 마케팅을 또 하나 찾아볼 수 있었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광고 표기' 없이 노래를 추천하거나 특정 뮤직비디오를 보는 장면들로 특정 음원을 홍보하는 것.
만약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서 인플루언서 회사와 연계를 맺어 일정 금액을 주며 노래를 홍보할 때, '광고 표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 가수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뒷광고나 뒷돈을 받는 형식이 되기 때문이다.
도통 노래 추천이라고는 하지 않던 유튜버가 갑자기 특정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노래를 추천한다면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 유튜브 중심으로 활동하던 유튜버가 돌연 인스타그램으로 노래를 추천하면서 바이럴 업체에게 돈을 받았다면 문제가 된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이는 위법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22일 조이뉴스24에 "표시 광고법, 추천 보증에 관한 심사 지침의 대원칙은 '경제적 이해 관계가 있는 경우에는 그 이해관계를 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걸 하지 않으면 기만 광고가 될 가능성이 있다. 광고를 원하는 연예 기획사, 실질적으로 인터넷에 쇼츠나 글을 실어주는 인플루언서, 이들을 매개해주는 업체들이 광고를 목적으로 이같은 행위를 했다면 표시 광고법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정위 측은 "노래라는 게 실체가 없다며 광고 표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틀린 주장"이라며 "상품이라는 것은 재화와 서비스 모두를 포함한다. 거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상품이 되는 것이다. 음원 역시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이므로 광고 기준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