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한국의 콜롬보' 박영한이, 배우 이제훈을 통해 2024년에 다시 살아났다. 시그니처처였던 '파~하' 웃음에, 마지막엔 바바리코트까지 척 걸쳤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권력에 굴하지 않고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젊은 박반장이다.
이제훈은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MBC 드라마 '수사반장 1958' 종영 인터뷰를 갖고 작품을 마친 소회를 전했다. 부담감과 무게감이 컸던 '수사반장 1958'과 박영한은 그에게 자랑스러운 '훈장'이 됐다.
지난해 7월부터 8개월 동안 박영한으로 살았던 이제훈, 시청자들이 박영한을 만난 시간은 5주였다. 이제훈은 "매주 본방사수를 하면서 봤는데, 중반부터 '왜 이렇게 빨리 끝나는 것 같지?' 생각이 들었다. 미니시리즈 10부는 짧다. 16부는 해야 할 것 같다"라며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사연도 많이 녹여서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고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수사반장 1958'은 레전드 국민 드라마이자 대한민국 수사물의 한 획을 그은 '수사반장'의 프리퀄이다. 야만의 시대, 소도둑 검거 전문 박영한 형사가 개성 넘치는 동료 3인방과 한 팀으로 뭉쳐 부패 권력의 비상식을 상식으로 깨부수며 민중을 위한 형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제훈은 '수사반장 1958'에서 최불암이 연기했던 박영한을 맡아 활약했다. 촉 좋고, 넉살 좋고, 인물 좋은 난공불락의 촌놈 형사다. 이제훈은 '박영한의 성장사'가 궁금해서 극에 합류했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갔다.
"('수사반장'은) 전설이 된 드라마고, 우리 윗세대는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어르신들에게 많이 들었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 선배님이 짜장면 먹으면서 오프닝 시퀀스를 들었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었어요. 오리지널을 보진 않았지만 그 음악이 제게 인식 됐던 것을 보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및니 것 같아요. 드라마 프리퀄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부터 관심이 갔고, 기획 때부터 의견을 많이 냈어요. 이야기 구성도 좋았지만, 저는 박반장이라는 캐릭터의 성장사가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종남서에 왔을까, 저들은 어떻게 한팀이 됐을가.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겠지. 미성숙하고 좌충우돌하고 좌절도 하는 모습이 있을텐데. 그런 것들을 거치면서 하나하나 배우고 성숙해지는 모습이 시청자로서 참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수사반장 1958'에 뛰어들었지만,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오리지널 '수사반장'은 1971년부터 1984년까지 방영된 형사물의 시초이자, 시청률 70%를 기록한 '국민드라마'다. 무엇보다 '수사반장'의 상징적인 인물, 최불암의 박영한의 존재감은 엄청 났다.
"(최불암) 선생님이 출연했던 '수사반장'의 에피소드를 많이 찾아봤어요. 박반장으로서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 형사 콜롬보로서 수트와 바바리 코트를 입고 누비는 모습, 피해자들을 다독여주는 휴머니즘이 있는가 하면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단호한 모습이 있었죠. 계속 해서 따라하려고 했어요. 톤도, 말투도 복사본처럼 성대모사를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최불암) 선생님처럼 똑같이 할 수가 없었죠."
오리지널 작품을 보며 '연구'했지만, 위기에 봉착했다. 그는 "따라하는 것에 매몰돼 한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고백했다. 정답은 '최불암' 그 자체에 있었다.
"제가 봤던 최불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어릴 적 주말마다 봤던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아버지면서 로맨티스트였어요. 저렇게 상냥하면서 따뜻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최불암 시리즈'를 통해 개그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도 발견했고, '한국인의 밥상'도 봤죠. 한 사람의 모습에서 다양한 말투와 표정이 있구나. 오히려 최불암 선생님의 모습이 박영한의 젊은 시절에 투영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사반장' 오리지널에 함몰되지 말고 선생님의 모습을 표현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바뀌었어요."
무려 20년 가까이 박영한으로 살았던, 배우 최불암과의 만남은 큰 단서가 됐다.
"대본 리딩할 때 최불암 선생님께서 '박영한이 범인을 잡아내고 싶은 화를 깊이 새기고 표현해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냉철한 한국의 콜롬보이자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가 동시에 존재해요. 실제로 찍으면서 범인을 잡아내고 싶은 고민과 울분을 삭히려 노력했던 마음을 전달하려 했죠."
이제훈은 박영한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동시에 박영한의 손자 역할까지 1인 2역을 소화했다. 이제훈과 최불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을 선사했다. 손자가 노년의 박영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은, 이제훈의 애드리브였다.
"(최불암) 선생님이 '한 20년 만에 한거 같아'라고 했어요. 떨리고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텐데 많은 준비를 해오셨어요. 실제 최불암 선생님은 정정하고 건강하신데, 박영한은 지팡이를 짚어요. 걸음걸이와 몸의 표현을 준비해 오셨어요. 전 할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서 기억이 없어요. 만약에 내게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이런 존재지 않을까. (최불암 선생님이) 저를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봐주니깐 그것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대본에 쓰여져 있지 않지만 할아버지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했어요. 잠깐의 신인데도 그 하나만으로 우리 사이가 잘 표현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에, 놀라운 표현이 나왔어요."
'수사반장 1958'의 시작과 마지막은 이제훈이 아닌 배우 최불암이 장식했다. 노년의 형사 박영한이 동료들의 무덤을 찾아 참배하는 장면이었다. 최불암이 '수사반장 1958'을 함께 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모습은 뜨거웠고 또 울컥했다.
"감동이 어마어마했어요. 제가 나오는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덤에 가서 돌아가신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며 꽃을 나눠주는데 드라마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였죠. 제가 박영한 연기를 한 것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라마 '수사반장 1958'은 추억 소환 드라마에 그치지 않고 2024년에도 사랑 받았다. 그 시절의 사건들이 2024년의 범죄와도 맞닿아있기 때문일 터. 외압이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은 쾌감을 안기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비춘다.
"6,70대 때 사건을 다루는 방식이 아날로그였다면 지금은 첨단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래도 핵심적인 건 바뀌지 않는 것 같아서 다들 흥미롭게 본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건 촉법소년 에피소드에요. 아이들이 저지른 사건은 미숙함이나 환경 때문에 참작을 해주는데 이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해요. 세상에 대한 개탄스러움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이미 잘못한 것을 사과할 수 있는 나이지만, 악마 같은 행동을 해요. 그런 것들에 대한 물음을 갖고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싶었어요."
이제훈은 드라마 '모범택시' 시리즈에서도 악인들을 단죄하는 정의로운 택시 기사를 연기했다. 비슷한 지점이 있는 캐릭터인데, 이제훈은 정의로운 캐릭터에 끌린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다보니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환경, 가족 혹은 친구, 지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호기심을 갖게 되요. 사건 사고에 대한 것들이 포인트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권선징악이나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갈구하고 사필귀정,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에 끌려요.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그 진실을 확인하고, 정의구현에 대해 캐릭터로 구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요."
이제훈은 올해 7월 영화 '탈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은희 작가가 집필 중인 '시그널'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이제훈은 "너무 꿈꿔왔던 순간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다 모여서 날짜를 잡고 촬영장에 나가는 날을 꿈꾸고 있다"고 활짝 웃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