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최성은에게 '로기완'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해준 작품이다. 불어를 처음 배웠고, 헝가리에서 로케이션을 했고, 상대 배우인 송중기에게 처음으로 '오빠'라는 호칭을 쓰게 됐다. 또 스태프들과 가까워져서 좋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 첫 현장이기도 했다. 환경 때문이기도 했고, 배우로서 한층 더 성장하고 여유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변화이기도 했다. 그래서 최성은은 좋은 기운과 에너지를 전해 준 선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한편, 제일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으로 '로기완'을 기억할 것 같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3월 1일 공개된 '로기완'(감독 김희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 분)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각색된 작품으로, 단편 영화 '수학여행'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 국제단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김희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처음엔 작가로 참여했던 김희진 감독이 연출까지 맡아 '로기완'을 이끌었다.
송중기는 살기 위해 베를린으로 간 탈북자 로기완 역을, 최성은은 벨기에 국적을 가진 한국인 사격선수 출신의 마리 역을 맡아 멜로 호흡을 맞췄다. 또 와엘 세르숩,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이상희, 서현우 등이 연기 앙상블을 이뤘다.
최성은은 사격과 불어 연습을 하며 마리가 되게 위해 열정을 불태웠다. 매 작품마다 색을 달리하며 깊은 연기를 보여준 최성은은 이번 '로기완'에서도 "첫 등장부터 마리 그 자체였다", "'화양연화' 같았다"라는 극찬을 얻으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다음은 최성은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캐릭터 설정상 사격과 불어 준비를 해야 했다. 힘들지는 않았나?
"사격은 한두 달 정도 했고, 불어는 촬영 2~3개월 전부터 불어 선생님과 같이 연습했다. 사격은 불어에 비하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불어는 유창하게 하는 설정이라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연기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다하나 싶어서 초반엔 걱정도 많이 했다."
- 그렇다면 완성본으로 본 후 만족도는 어땠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불어를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보니 불어를 모국어처럼 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느끼냐가 중요하다. 저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지만, 접근을 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영어 외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말하는 방법에만 초점을 맞춰서 했다. 기본적인 언어의 정보나 지식을 건너뛰고 했다. 최근 영어공부를 깊게 시작하면서 '천천히 가더라도 잘 밟고 갔으면 더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송중기 배우는 "행복할 자격이 있나"라는 대사가 기완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대사나 장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두 개 정도 떠오른다. 하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나'라고 할 때 '그런 자격은 나도 없고 우리는 충만하다'라고 하면서 기완을 안아준다. 그 말을 한다는 것이 원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구나 싶었다. 상대를 감싸 안아주고 손 내밀어줄 줄 아는 아이다. 순수하고 여리고, 우뚝 서 있을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잘 드러나는 대사인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지하실에서 '내가 다 망친 것 같다'라고 한다. 마리도 벨기에에서 오랫동안 외롭게 지냈을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있어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고, 외동딸로서 자기가 어떤 부분에선 충족시켜야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사격을 했을 거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엄마가 죽고 나서도 자신이 다 망치고 있고 잘못됐다는 것에 오래도록 빠져 살고 있던 애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 같다."
- 마리의 감정선이나 상황에서 아쉽다는 반응이 있기도 하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마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마리의 변화가 갑작스럽다 느끼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마리가 납득이 되어서 아쉬움이 크지는 않다. 제가 마리의 흐름 안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장면은 지금 영화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데, 마리와 기완의 관계에서 중단 도움닫기를 하는 장면이 편집됐다. 아쉽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또 아빠와 진솔하게 얘기하는 장면도 있었다. 마리가 왜 그 상황에서 못 벗어나는지가 드러나는데 편집이 됐다."
- 송중기 배우가 '화란'의 칸 진출 소식을 듣고 촬영장에서 "칸 간다"라고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던데, 어떤 장면인지 기억이 나나?
"제가 뛰쳐나가는 장면이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제 장면을 찍을 때다.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저에게는 따로 직접 얘기를 하지는 않았고 들리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촬영 끝나고 분장 지울 때 축하한다는 얘기를 했다. '화란'에 대한 정보가 없었지만, 중기 오빠가 새롭고 강하고 세 보이는 이미지로 나온 스틸을 봤다.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작품이 된 것 같아서 축하하는 마음이었다."
- 헝가리에서 쭉 촬영하다 보니 배우들끼리 굉장히 돈독해졌을 것 같다. 이들과 함께하면서 얻은 힘, 시너지가 있나?
"배우들도 그렇지만 스태프들도 다 같이 지내니까 좋았다. 그전까지는 스태프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배우로서 내 에너지에 집중해야 하는데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으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지레 겁을 먹어 거리를 뒀다. 그래서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해외 촬영은 다 같은 공간에 있다 보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그것에서 힘을 받았다. 이들과 가까워졌을 때 '너무 좋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한 현장이었다. 헝가리에 있으면서 행복했다. 저는 중기 오빠와 주로 있었고, 한철 선배, 상희 선배, 성령 선배는 촬영하고 가시곤 했다. 그래서 촬영 마치고 중기 오빠 집에 초대받아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얘기도 많이 했다. 선배들과 같이 걸어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고 하는 것이 촬영하러 온 것임에도 다른 나라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애틋함이 더 자연스럽게 생기더라. 사람들 덕분에 힘을 받았다."
- 그래서 송중기 배우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쓰게 된 건가? 지창욱 배우가 서운하겠다.(웃음)
"그렇게 말한 건 아닌데 그렇게 기사가 나서 창욱 선배가 서운해할지 모르겠다.(웃음) 중기 오빠가 촬영하기 전에 말 편하게 하라고 하기도 했고, 저도 멜로를 해야 해서 진한 감정을 나눠야 하다 보니 호칭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안 좋을 것 같았다. 저는 오빠라고 부르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말을 놓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가까워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빨리 놓으려고 했다."
- '시동' 때부터 '안나라수마나라', '로기완'까지, 또래보다는 상대적으로 경력이 많은 선배와 연기 호흡을 많이 맞췄다. 선배와 함께하면서 연기적으로 성장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돌아보면 어떤가?
"또래와 작업을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시동', '괴물', '안나라수마나라', '젠틀맨' 다 경력이 많은 선배와 같이했다. 그러다 보니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좋기도 했다. '이 선배는 이런 모습이 있고 이렇게 소통하고 접근하는구나' 보면서 많이 배웠다. 감사하게도 좋은 선배들과 작업을 했는데, 또래와 하면 또 어떤 느낌일지,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다를 것 같아서 궁금하다. 경험해보지 못한 작업을 해보면 새롭고 좋을 것 같다."
- 필모그래피를 보면 마냥 행복한 연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장르, 캐릭터가 있나?
"밝은 거 너무 하고 싶다. 사실 저는 어떤 걸 하고 싶은 건 없는데, 작년에 런던에 7개월 정도 있으면서 밝은 캐릭터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내가 이걸 하게 되면 좋은 영향을 받겠구나' 싶었다. 아픔은 있지만 밝게 살아가려 하는 모습에 받는 위로의 힘이 있다. 밝고 좋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데뷔작인 '시동'부터 큰 주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잘 성장해온 느낌이다.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저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사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현재를 위주로 생각하고 사는데,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이켜 봤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것도 있고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건 재미있고 행복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라며 저를 괴롭히는 마음으로가 아니라, 사람들과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며 한 작품 한 작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흥행을 떠나, 그 순간 제가 행복하고 재미있었는지에 포커스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 선택에 있어서 후회는 없지만, '이때 조금 더 스태프, 감독님, 배우들에게 다가가 볼 걸', '이렇게 했으면 현장을 더 즐겼을 텐데', '내가 더 많은 것을 담으며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일상에서도 현장에서도 다채로움을 많이 느끼며 살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고난이고 세상의 짐을 짊어진 것처럼 연기를 대했던 것 같은데, 좀 더 가벼워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현장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좋겠고, 그래서 꾸준히 노력한다."
- '로기완'은 배우 최성은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봤을 때 안아주고 싶은, 제일 마음이 가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그 인물 때문이기도 하고 제 경험 때문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작업을 돌이켜봤을 때 마음이 많이 가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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