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연상호 감독이 기이한 분위기의 가족 이야기로 돌아왔다. 제목만 봐도 뭔가 으스스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선산'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오컬트 장르는 아니다. 이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뒤틀린 가족 관계와 개인의 욕망 등 선산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낸 동시에 배우들의 열연을 보는 재미가 크다. 특히 연상호 감독이 '페르소나'라고 굳건한 믿음을 드러낸 배우 김현주의 새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지난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은 존재조차 잊고 지내던 작은아버지의 죽음 후 남겨진 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불길한 일들이 연속되고 이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부산행', '지옥' 등의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에 참여하고, 영화 '부산행', '염력', '반도'의 조감독으로 연상호 감독과 손발을 맞췄던 민홍남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우리의 뿌리에 닿아 있는 선산을 소재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가족의 민낯을 제대로 파고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는 '선산'은 각 인물이 가진 욕망에 집중하며 기이하고 다소 섬뜩하기도 한 이야기로 완성됐다. 캐릭터의 관계성에서 오는 긴장감과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재미는 무난하게 6회까지 완주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김현주는 선산을 상속받고 불길한 사건에 얽히게 되는 윤서하 역을, 박희순은 마을의 살인사건이 선산과 연관되었다고 직감하는 형사 최성준 역을, 박병은은 과거로 인해 선배인 성준에게 애증과 열등감을 품은 형사반장 박상민 역을, 류경수는 서하의 삶에 들이닥친 이복동생이자 선산 상속을 요구하는 김영호 역을 맡아 열연했다. 다음은 연상호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10년 전부터 '선산'을 구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10년 그 이전이다. '돼지의 왕'을 하고 나서 한국의 정서로 되어있는 스릴러에 관심이 많았다. 두 가지 정도의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선산에 관련된 친족과의 싸움이었다. '선산'을 가지고 있고 '부산행'을 먼저 했다. 그 이후 '방법'을 쓰기 전 드라마 제안이 있었고 '선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지상파에 하기엔 소재가 강하다 보니 좀 그렇다는 반응이 있었다. 넷플릭스가 성장하면서 이 얘기를 하니 '해볼 만하다'라고 하더라. 그때부터 기획하게 됐다. '선산' 아이템의 기조는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가족 얘기다. 가족에서 나올 수 있는 장르적인 요소를 찾다가 두 개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시놉시스 형태로 부산영화제에 가져갔다. 그게 10년이 된 거다. 예전 시놉시스를 봤는데 큰 골자 빼고는 다 바뀌었다. 그땐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 '선산'이라는 제목을 정하게 된 이유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전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족이라고 하는 통념을 보면 사랑으로 가득 찬 긍정적인 느낌이 있다. 하지만 선산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건 친척 싸움이다. 가족을 두고 상반된 통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최근 작품을 보면 가족이 주요 소재로 들어가 있다. '선산'으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가족의 민낯을 제대로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족에 집중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모든 인물이 가족과 연관이 되어 예상치 못한, 이성적이지 못한 결정과 선택을 하는 거로 채우고 싶었다.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의외성을 가지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보통 통념적으로 제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인물로 구성이 됐다. 그런 의외성이 긴장감을 가지고 천천히 조여오는 스릴러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재미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 가족 이야기에 무속신앙을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한 초현실적인 분위기도 당연히 있고,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었다. 사람을 합당하지 않게 움직이게 하는 기묘한 힘에 관심이 많은데 그게 가족이었다. 가족의 모습을 그리다 보니 비슷하게 맞닿아있는 것이 종교다. 가장 잘 어울리는 종교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업보, 혈연, 액막이 그들의 죄를 대물림하지 않는 표현들이 나오는데 그게 잘 어울리는 것이 무속신앙이라는 생각을 했다."
- 연상호 감독, 무속신앙이라고 했을 때 오컬트를 기대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선산'은 오컬트가 적었다.
"애니를 할 때는 사실적인 작품을 많이 했는데 영화나 시리즈로 넘어오고는 초현실적인 소재가 안 쓰인 최초의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초현실적인 것을 쓸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은데 리얼한 스토리다."
- 제작발표회에서 "선산이 없다"라고 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선산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나?
"선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길래 내가 태어났는지 잘 모른다. 자기 미래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런 건 관심 없다. 할머니 장례에 모이면 어른들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너무 재미있다. 내 바로 선대에 있던 일들인데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 신기하고, 그걸 남 얘기처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자세하게 알아가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그 재미가 두려움과 연관이 되어있다. 옛날에 잘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어떻게 하면 시리즈에 녹여낼 것인가 하는 것이 기획의 포인트고 차별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그런 지점이 있어서 뻔한 스릴러에서 벗어날 수 있고 공식화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김현주 배우와 이번이 3번째 작품이다. 앞서 김현주 배우에 대해 '페르소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늘 김현주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연달아서 이렇게 같은 배우와 작업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나 걱정은 없나?
"김현주 배우뿐만 아니라 익숙한 스태프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익숙한 분들과 함께 하는 안정감이 있다. 동지다. 크루라는 개념으로 모여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의지가 된다. 이번 작품에 김현주 배우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민홍남 감독의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로덕션에 안정감을 선사하고 싶었다. 촬영 감독님, 미술 감독님도 '부산행'부터 오래 같이 했다. 너무 잘 알고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민 감독에게 힘이 될 것 같았다. 김현주 배우도 그랬다. 믿을 수 있는 동료이기 때문에 민 감독에게 힘이 될 거라 했다. 작품적으로도 그동안 봤던 것과 다른 것을 표현하는 능력, 열망, 열의를 봤다. '선산'에서 익숙하지 않은 김현주를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 시청자들에게 이 작품이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작품을 쓸 때 가장 고민했던 건 결말에서 드러나는 통념에서 벗어난 반전이 충격의 소재로만 쓰이지 않길 바랐다. 통념에서 벗어난 일을 한 사람이 엄청난 사랑을 가지고 있다. 대비가 된다. '선산'을 기획할 때와 마찬가지다. 그것을 관객이 어떻게 바라봐줄까 하는 기대가 있다. 6부의 마지막 모습에서 울컥한 것이 있다. 더러운 죄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본 관객이 어떤 감정을 가질까. 김현주 배우와 얘기를 많이 한 것이 '가족이에요'라는 대사를 어떤 식으로 읽을 것인가다.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애매모호한 감정인 건데 그것이 시청자에게는 질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최성준(박희순 분), 박상민(박병은 분)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아무리 과거의 일이 있기는 해도 최성준이 박상민의 어마어마한 멸시를 견디며 계속 밑에 있는 것이 의문이기도 했는데 어떻게 바라본 건가?
"최성준이 어마어마한 멸시를 견디는 것은 박상민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크게 포함이 됐다고 생각한다. 선을 그어버리면 아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기 때문에 붙잡고 있는 거다. 후반부에 가면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거다. 그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의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후반부 대사에도 나오는데 가족이니까 말을 안 해도 알 줄 알았다고 한다. 최성준은 가족이라는 단어를 착각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가족은 이중적, 양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선산'을 표현할 때 '한국형 스릴러'라고 하는데, 한국적인 정서라고 했을 때 떠오른 것은 무엇인가?
"찾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적이라고 하는 건 제목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제목만 줘도 한국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작품을 하면서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감정 자체가 한국적이라고 생각한 건 '사이비', '방법', '선산'이었다. '방법'도 제목에서부터 한국적이다. 표준어는 아니고 은어인데 할머니가 있는 집에서는 아는 단어더라. 제목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주고 싶고, 그런 것이 요즘엔 있나 싶어 생각해봐도 찾기 어렵더라."
- 이번 '선산'을 집필할 때 특별히 어려운 부분이 있었나?
"'방법'을 쓸 때 오히려 깜깜했다. '뭘 봐야 되지?' 했는데 그 이후엔 몇 작품을 했고 '선산'은 강한 색채가 있지는 않다. '방법'을 할 때 조사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그럼에도 기획부터 공개까지의 과정을 놓고 봤을 때 제일 괴로운 때가 대본을 쓸 때다."
- 전사에 대한 궁금증도 남는 작품이다. 혹시 프리퀄에 대한 생각도 있나?
"단호하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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