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특정 인물을 쫓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의 밸런스가 탁월하게 유지된 작품."
이입하는 인물에 따라 느끼게 되는 감정은 물론이고 엔딩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달라진다. 그 정도로 각 인물들이 그려내는 서사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이 생기고 몰입도 역시 높아졌다는 의미일테다. 극이 끝난 후에도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지난 9일 개봉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재난 드라마로,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등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완벽한 합을 이뤄냈다.
거대한 지진이 모든 콘크리트를 휩쓸고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아파트 안팎에 살아남은 인간들의 각기 다른 심리와 관계성을 탄탄하게 그려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들의 큰 호평 속 개봉 7일째 2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개봉 2주차 300만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
이에 엄태화 감독은 지난 16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페셜 GV를 열고 관객들을 만났다. 이날 모더레이터는 영화 '차이나타운', '뺑반'과 넷플릭스 'D.P.' 시리즈의 한준희 감독이 맡았다. 1시간여의 시간 동안 엄태화 감독은 한준희 감독의 질문을 바탕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시작부터 고민하고 심혈을 기울인 지점, 이병헌과 박서준, 박보영의 새 얼굴, 호평에 대한 소감 등을 솔직하게 전하며 관객들과 소통했다.
- 개봉 후 호평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
"10년 전 '잉투기' 때 제가 만든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그때 1만7천 명 들었다. 매일 관객 수를 보면 몇천 명씩 보시더라. 이 사람들은 어디서 보고 찾아서 돈을 내고 보는 걸까 신기했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개봉된 '가려진 시간'은 흥행이 되진 않았지만, 1만7천 명보다는 많이 들었다.(누적 관객수 51만 명) 기분이 이상하더라.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틀 만에 '가려진 시간' 관객수를 넘었다. 이 또한 기분이 이상했고, 그 앞의 경험들이 소중했구나 싶어서 한분 한분 다 감사하다."
-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 웹툰 1부를 재미있게 봤는데, 2부에서 후킹이 걸린 것이 배경인 아파트였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이고 대한민국 사람 50% 이상은 아파트에 살고 계신다. 이런 장르를 다루기에 이만큼 좋은 배경이 있을까 싶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면서 박해천 교수님의 책을 보게 됐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만들어진 시점부터 브랜드가 되기까지, 아파트를 의인화해 보여주는데 재미있다. 근현대사를 볼 수 있는 책이다. 영화의 1분 오프닝에 이 책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KBS '모던 코리아' PD님에게 연락을 드렸고 제작을 하게 됐다."
-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아파트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중간에 잠깐 주택에서 산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았다. 복도식이라 문을 열어놓고 살다 보니 옆집 들어가서 밥도 얻어먹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옆에 누가 사는지 모르지 않나. 세상이 바뀌어간다는 것을 체감하게 해주는데 그걸 영화에 녹여내고 싶었다. 혜원(박지후 분)이 아파트 내부로 들어왔을 때 옆집 아저씨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만들고 싶었고, 영탁(이병헌 분)의 비밀과 연결점이 되는 것도 표현하고 싶었다."
- 원작을 각색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원작은 1부에서 살아남은 두 아이가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로 간다. 시스템이 갖춰진 아파트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내용이다. 초고는 혜원을 주인공으로 썼다. 꽤 많이 쓰다가 예산이 많이 들어갈 것 같은데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다 보니 세계관 속에서 수동적일 것 같아서 한계를 느꼈다. 이걸 확장할 수 있는 영화를 생각하다가 아파트가 메인 배경임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주인공엔 신혼부부가 좋겠다 싶었다. 영혼을 끌어모아 아파트에 들어온 신혼부부 민성(박서준 분), 명화(박보영 분)에게 각자의 입장이 드러나는 능동적인 역할을 부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각색했다. 제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라는 게임을 재미있게 했다. 주인공이 셋인데,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엔딩이 수십 개가 있다. 저는 평화를 끝까지 사수했다. 하지만 누군가는 친구가 죽어 나가는데도 복수를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선을 지키려 한다. 그렇게 딜레마를 주는데, 해피엔딩을 맞이했을 때 저 자신을 지켜낸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에게 특성을 부여해 관객들이 따라가고, 그 인물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 보통의 재난 물에는 재난이 나타났을 때 혼란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엔 그게 없다. 의도한 바는?
"애초에 재난엔 큰 관심이 없었다. 재난이 벌어진 이후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그래서 기존의 재난영화처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만들 때 저의 무의식이 담기는 것 같다. 그 시기에 꾸는 꿈 같다. 꿈을 내놓고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피드백을 받고 반성한다. 그래서 지금의 제 상태까지 온 것 같다. '잉투기' 때 처음 관심이 생긴 건 '왜 저렇게 싸울까'다. 10년 전 저의 이유는 외로움이었던 것 같다. 관심을 받지 못해 생긴 외로움이다. '가려진 시간'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은 세월호다. 마음이 괴로웠다. 뭘 봐도 믿을 수 없는 마음, 누가 선인지 악인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그걸 영화에 투영하고 싶었다. 그때보다 더 세분화가 되어 '프레임이 나눠지고 다투고 혐오하는 건 왜일까' 고민하던 와중에 웹툰을 보고 아파트 키워드가 들어왔다. 주거는 자산이고 애증이다. 거기서 문제가 비롯됐다는 느낌으로 나오게 됐다."
- 엔딩도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찍었나.
"엔딩을 정말 많이 바꿨다.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명화와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라는 시스템 속에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 멸망한 세상엔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의 계급이 올라가고, 군필자들이 모여서 음식을 가져오고 대우를 받는다. 이런 세계관 안에서 명화는 자기 역할을 하지만 그 이상을 할 수 없는 답답함을 가졌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 보니 집착하고 광기의 순간도 맞이한다. 마지막에 그런 일을 겪고 아파트 주민들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녀 스스로도 아파트의 세계관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민들을 변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남편일 수도 있고 더 확장된 것일 수도 있다. 그 말을 던지는 것이 아파트 주민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고 연민하는 시선으로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 이입했다. 개봉 후 여러 리뷰를 보는데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많았다.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그 대사를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지금의 결말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것 같긴 한데, 생각했던 결말은 어떤 것이 있었나.
"정말 많았는데, 마지막 대사를 다른 사람이 하는 것도 있었고 혜원이 하는 버전도 있었다. 죽는 인물이 달라지기도 하고, 태평양 마트 모녀를 만나는 장면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결말이 가장 맞다고 생각했다."
- 명화가 인간성을 붙드는 인물이지만, 답답하다는 반응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답답할 수 있다. 관객들이 이입하는 인물에 따라 감상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탁에 이입하면 명화를 빌런으로 보시기도 하더라. 다각도의 시선으로 볼 수 있고, 그런다는 건 그만큼 몰입했다는 의미다."
- 명화는 간호사이고 유산을 했었다는 설명 외에 상대적으로 서사가 명확하게 그려진 인물이 아니라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세상이 무너진 상태에서 하나만 남은 아파트라는 세계관이 군필자 중심, 힘의 논리로 잡혀 있다 보니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그걸 대변하는 인물에 포커싱을 둘 수밖에 없었다. 영탁, 민성이 잘 잡혀야 세계관이 보이고 그걸 뚫고 나가지 못해야 약자로 취급되는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것이 잘 보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선택의 문제였다. 명화가 누군가를 치료하는 장면이 조금 더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최근 하게 됐다. 그 부분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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