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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동네한바퀴', 대전 두부 두루치기·오징어 국수·노산춘·동네 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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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동네 대전. 한밭이라는 옛 이름답게 산 아래 터전은 굴곡 없이 평평하다. 그 위로 잘 정돈된, 첨단 도시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언뜻 보면 수도권 여느 동네를 닮은 무색무취의 도시 같지만 뭐든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 대전은 큰 산, 푸른 바다 없이도 매력적인 동네. 제 빛깔을 가진, 저만의 이야기가 흐르는 곳이다.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팔도를 잇고 중부권 행정기관을 책임지며 기술 인재가 모인 과학도시로 미래를 이끌어가는 그곳.

'동네한바퀴' 이만기가 대전을 찾아간다. [사진=KBS]
'동네한바퀴' 이만기가 대전을 찾아간다. [사진=KBS]

15일 방송되는 KBS1 '동네 한 바퀴'에서는 볼수록 새롭고 알수록 더 알고 싶은 대전의 구석구석을 거닐어본다.

대전은 명실상부 과학의 도시다. 1970년대 초, 충남 대덕군(현 대전시 유성구 일원)이라는 농촌 마을에 연구 개발단지를 설립한 이후 굳어진 이미지이니 그 역사야 말해 무엇 할까. 50년 국내 과학의 요람으로서 대전은 국토의 중앙에서 전국의 이공계 인재들을 키워내고 있다.

대덕 연구단지 조성이 과학도시의 불씨였다면 그 불씨를 세상에 알린 건 1993년 대전 엑스포 개최가 아닐까. '새로운 도약의 길'이라는 주제로 93일간 대전에서 열린 엑스포는 개최국의 선진기술과 문물을 자랑할 국제행사였다. 덕분에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모색하던 대한민국은 슬로건 그대로 꿈을 이뤄냈다. 수도 서울이 아닌 곳에서 그 큰 과업을 이뤄낸 대전 또한 마찬가지. 엑스포를 근간으로 벤처 창업의 중심지가 된 대전은 지금도 끝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진정한 첨단 과학도시로 나아가는 중이다.

대전을 다 보고 싶다면 '동쪽'과 '서쪽'을 두루 둘러봐야 한다. 대전역이 있던 '동쪽'엔 구시가지, 1990년대 신도시가 조성된 '서쪽'은 지방에서도 손꼽히는 대형 초기 신도심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원도심'이라 부르는 동구는 1905년 대전역과 함께 조성돼 100년 남짓의 역사를 가졌지만, 격변의 시기를 관통했던 만큼 거리 곳곳에 근대의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동구 원도심은 대전이 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시간여행의 도시인지 알려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다.

허나 대전 사람들도 알기 힘든 원도심의 역사와 이야기를 외지인이 알기는 힘들 터. 그래서 대전시는 '트래블라운지'라는 공간을 시작으로 원도심 투어 코스를 만들었다. 개방 시간대만 맞추면 방문하는 누구나 무료. 이곳에 캐리어를 맡기고 해설사와 함께 원도심 한 바퀴를 돌면 무심코 스쳐 갔던 공간들의 가치를 알 수 있다.

오는 8월엔 이 근방 대전역~옛 충남도청 구간의 도로를 통제하고 명곡 '대전 부르스'의 추억을 이은 '대전 0시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는데. 길거리 문화예술공연, 전국 최대 규모 플래시몹 댄스, K-POP 콘서트 등 '꺼지지 않는 재미'를 예고하며 0시의 어둠을 밝힐 한여름 밤의 대전은 얼마나 다채로울까. 대전 최초 성당, 일제강점기부터 대전 시가지 초입이 된 목척교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원도심 명소들을 미리 살펴본다.

동구 길목에서 오래된 극장 하나를 발견한다. 1985년에 개관해 2022년에 문을 닫은 작은 마을 극장. 추억의 포스터와 낡은 간판을 달고 천천히 스러져 가는 극장에서 한 동네의 영화롭던 지난날을 상상한다.

극장 너머엔 1977년에 세워진 대전 최초의 주상복합, 인흥상가 아파트가 보인다. 그 건물 아래 1층은 요즘 보기 드문 쌀가게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데, 알고 보니 이곳은 한때 전국구 규모의 곡물 시장. 그만큼 대전에서도 가장 번화한 대전 최초의 원도심 상권이었단다. 사람 하나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했다는 인동의 한때. 그 모든 걸 기억하는 건 3대째 이어 온 한 부자(父子)의 기름집이다.

인동에서 대전역 근방으로, 다시 서구로 지역 중심 상권이 옮겨 갔지만 부자의 기름집은 어찌 된 일인지 나날이 손님이 는다고. 노하우의 힘일까, 아니면 정직한 성품의 힘일까. 부자도 그 영문 알 순 없지만 할 수 있는 건 그저 성실하게, 묵묵히. 하던 대로 살아가는 것뿐. 인동의 마지막 남은 기름집이 되어도, 대대로 기름때 묻히며 살아가고 싶다는 부자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대전역과 함께 공생하듯 성장한 중앙철도시장. 교통 요충지에 위치한 시장답게 없는 게 없는 만물상, 주단 한복 거리부터 먹자골목까지. 규모만큼 사철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그렇지만 시장에 LP 가게란 흔치 않은 일. 이 시장 외곽 헌책방 골목엔 뜬금없이 LP 음악이 흘러나온다. 숭고한 생계의 현장에 이 무슨 낭만(?)인가 싶지만 여유로운 LP 사장의 말인즉슨, 지금 본인은 28년 만에 받은 휴가를 만끽한다는데. 20대 불의의 사고로 모아뒀던 LP를 다 잃고 생계 전선에 뛰어든 그는 고물상 사업으로 꿈보다 돈을 앞세워 살았단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LP 가게 손님으로 와 판을 모으던 중 가게 인수를 제안받게 되고 그 계기로 연고도 없던 대전에 임시 정착. 딱 3년 목표로 LP 가게를 운영 중이다. 엄밀히 따지면 현 LP 가게 사장이라지만 이 또한 꿈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그. 추억의 음악과 함께 그가 추구하는 '인생의 멋'을 느껴본다.

대전 외곽 부근, 작은 식당 하나 없는 한적한 동네에 카페라니. 식물이 가득한 카페에 들어선 이만기가 또 한 번 놀란다. 손수 만든 디저트 하나 없이 오로지 커피 하나에만 올인한 카페다. 열정도 노력도 부족치 않은 젊은 부부 사장. 실은 목사가 주업, 주중엔 카페를 운영 중이란다. 근방 작은 교회에서 목회 일을 하는 걸로는 생계가 충분하지 않아 시작했다는 카페. 디저트가 없는 것도 아직 시간이 필요한 소위 'N잡러'의 숙명이라는데. 그럼에도 전문으로 배운 커피 빼곤 영 어설픈 부부, 카페를 이어나가는 덴 돈만큼 중요한 이유가 있단다. 바로 과거 교회였던 이 공간과의 인연 때문.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온 목사 부부가 교회를 카페로 차린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부부의 특별한 도전을 들어본다.

한 열차 승무원이 써 내린 공전의 히트곡, 대전 부르스. 그 곡에서 나오는 '대전발 0시 50분'은 서울에서 출발한 호남선 기차가 0시 40분 목포 방면으로 차를 돌리기 전 딱 10분 정차했던 그때. 이 찰나 같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대전역 플랫폼에서 국수 한 그릇으로 새벽의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하긴 그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든든히 배 채울 수 있는 음식은 국수 말고 더 있었을까.

그렇게 대전의 국수는 오랫동안 지역 명물로 자리매김, 철도 주변에는 자연히 국수 가게가 성행했단다. 지천이 국수 가게이니 대전역 국숫집 사장님들이야말로 무한경쟁에 눈코 뜰 새 없을 터. 그중 수많은 칼국수 집에 질려 새 메뉴를 내놓은 사장님도 있었다는데. 대전 향토 음식 두부 두루치기와 국수를 섞어 오징어를 곁들인 48년 오징어 국수 사장님, 한 골목에서 가게를 세 번 옮기는 동안 그 특유의 맛은 변함없이 지켰다고. 그런 오징어 국수의 대모가 인생을 건 메뉴를 넘길 생각을 했으니, 남편도 아들도 아닌 아르바이트생이다. 2년을 일한 아르바이트생 아가씨가 어찌나 마음에 쏙 들던지, 아들에게까지 귀띔해 '내 식구 만들기'에 돌입했다는데. 그렇게 고부로 끈끈한 연을 맺은 두 사람. 21년이 지난 이젠 세상 둘도 없는 동반자란다. 암만해도 모녀 아닌 고부 사이, 무슨 연유로 그리 애틋할 수 있을까. 웃음 많고 눈물 많은 띠동갑 두 바퀴 고부의 매콤달콤한 인생 한 그릇을 맛본다.

모든 게 화면 하나로 이어지는 디지털 시대. 근래 보기 드문 인쇄소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한두 곳도 아니고 무려 300여 곳, 모두 건재한 걸까. 한때 충남도청, 대전지방법원, 대전시청이 밀집해 행정 도시로 이름났던 선화동. 그 근방 동구 정동, 중동, 삼성동 일대는 관공서의 영향으로 자연히 인쇄소가 밀집했다. 인쇄소가 사라지면 공공기관이 멈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인쇄 특화 거리는 대전의 성장과 발맞춰 나아갔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절이 무색하도록 쇠퇴의 길도 불현듯 찾아왔으니 바로 1990년대부터 주요 관공서가 서구 신도시로 이전한 것. 이후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사양 산업이 된 인쇄소는 근근이 골목 한자리만 지켜가는 중.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건 추억과 정,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의리 때문이란다. 시절 따라 예전 같진 못해도 여전히 존재해야 하는 것들. 빛바랜 순간들을 갈고 닦아 또 하루를 여는 인쇄 골목 사람들을 만나본다.

지역을 알리는 명물이 있다는 것, 그 명물을 발굴해낸다는 것. 그 자부심으로 술을 빚는 이가 있다. 바로 사라진 대전의 전통주, 노산춘을 발굴해낸 이미리 씨다. 하지만 그가 빚는 술은 다른 문중 집안의 유산이었으니 '노 씨' 집안사람들이 숱한 시간,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어도 복원해내지 못했다고. 그렇게 역사 속으로 잊혀가던 차, 문헌을 꺼내 꼬박 1년 노산춘에 매달린 그녀. 상품화시킬 수 없어 돈이 되지도 않는 술에 매달린 데는 단 한 번의 깨달음이 있었다고 한다. 대덕 연구단지 내 전력연구원, 대대로 내려오는 노 씨 집성촌 작은 재실에서 그녀는 왜 백일주를 빚는 걸까. 대전의 명주를 꿈꾸는 이 씨 여인의 굳건한 자부심을 따라가 본다.

평범한 동네의 좁은 골목길, 그 끝으로 들어가면 다른 세상처럼 펼쳐지는 공간이 있는데 이름하여 '동네 수목원'. 수목원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아담하지만 그 앞에 '동네'라는 단어를 붙인 순간 '아' 하는 탄성이 나올 만큼 아기자기하다. 언뜻 보면 잘 꾸며진 마당에 불과한 이곳을 구태여 수목원이라고 한 데엔 24시간 활짝 열린 대문 때문. 그래서 이 근방 이렇다 할 명소가 없는 주민들은 아침마다 이 골목을 걸어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는데. 심지어 어린이집 버스까지 들어와 한나절을 보내고 간다는 동네의 핫 플레이스다. 이는 연구원 생활 은퇴 후 대전의 한적한 동네로 이사 온 노부부의 애정 어린 솜씨 덕분이란다.

꼬박 40년, 대도심에서의 치열하던 이전과 반대로 살고 싶어 만든 동네 수목원. 딱 떨어진 답을 찾아가던 '천생 이과' 남편은 이곳에서 글을 쓰고 식물을 가꾸며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여기에 아내를 위한 밥상까지. 평생 '안 하던 짓(?)'을 하는 남편의 변화에 가장 기뻐한 건 단연 아내라는데 좋은 마음은 순환한다고 늘그막에 제2의 신혼을 맞이했다는 부부.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선물처럼 찾아온 삶의 여유를 즐기다 보면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단다. 매일 인생의 소소한 기쁨을 만끽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평범하지만 서로를 향한 배려와 노력으로 이뤄가는 노부부의 꽃 같은 일상을 함께 해본다.

무더위로 길어진 여름밤, 대전 엑스포 과학 공원에서는 한빛탑 미디어파사드와 음악 분수가 긴 밤의 열기를 식힌다. 빛나는 공원은 야간관광 특화도시, 대전의 새 자랑이다. 이곳에서 대전 엑스포가 펼쳐진 지도 어느덧 30주년. 이만기는 한빛탑 아래 지난날을 추억해보는데, 수많은 인파 속 반가운 얼굴을 만난 그. 1993년 대전 엑스포 당시 전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은 스타 중 스타였다고.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꿈꾸는 대전처럼, 여전히 꿈을 잃지 않는 이들은 누구일까. 반가웠던, 특별한 만남 속 도시의 눈부신 야경을 만끽한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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