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봤지? 나 어떤 사람인지?" "나 프로거든."
어쩌면 이 대사는 김선호를 위한 것이 아닐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온몸으로 외치듯, '연기 프로' 김선호가 작정하고 '귀공자'로 돌아왔다. "김선호 외엔 대안이 없었다"라는 박훈정 감독의 믿음에 완벽하게 부응한 김선호다. 제대로 맑게 미친 김선호가 '귀공자' 속에서 휘몰아친다.
'귀공자'(감독 박훈정)는 필리핀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강태주 분)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 귀공자(김선호 분)를 비롯한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세력들이 나타나 광기의 추격을 펼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귀공자의 잔혹함을 드러내며 시작된다. 그의 첫 마디는 "오랜만이다, 친구야." 타겟을 '친구'라 부르는 귀공자는 여유롭게 웃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지만, 자신의 구두에 피가 묻자마자 신경질을 부리며 분노를 터트린다. 이는 자신의 차가 망가질 때도 마찬가지다. 추격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상황에서도 말끔한 슈트와 포마드 헤어를 고수하는 그의 착붙 아이템은 손수건, 거울, 콜라, 껌이다.
귀공자의 다음 타겟은 필리핀에서 불법 경기장을 전전하는 복싱 선수 마르코다. 코피노(한국 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 합성어로, 어학 연수·사업 등으로 필리핀에 체류하는 한국 남성이 필리핀 현지 여성과 자녀를 낳은 후 관계를 단절해 편모 가정에서 양육되는 자녀를 뜻한다.)인 그는 병든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으로 향한다.
귀공자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처음으로 마르코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누구냐 묻는 마르코에게 "친구"라고 대답하는 귀공자. 그는 끝없이 마르코를 추격하고, 재벌 2세 한이사(김강우 분)와 미스터리한 인물 윤주(고아라 분)도 이 추격전에 합세한다. 마르코는 이들이 왜 자신을 쫓는지 그 이유도 모른 채 목숨을 걸고 죽기 살기로 도망을 친다.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광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전, 그리고 또 다른 반전이 펼쳐진다.
'귀공자'는 김선호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신세계'와 '마녀' 시리즈 박훈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당초 '슬픈열대'로 알려졌지만 최종 '귀공자'로 제목이 결정되면서 더욱 귀공자 역 김선호가 보여줄 파격 연기 변신에 이목이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귀공자'는 김선호를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맑은 눈의 광인' 귀공자로 가득하다. 김선호로 시작해 김선호로 끝이 난다. 액션의 중심에도 김선호가 서 있다. 카체이싱, 와이어, 총격 액션은 물론이고 무기를 이용한 타격감과 맨몸 액션의 리얼함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3일을 촬영했다는 막판 액션신은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자랑한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의 끝, 피칠갑한 얼굴의 김선호는 지금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강렬함' 그 자체다.
"깔끔한 미친 사람을 좋아한다"라는 박훈정 감독의 말처럼, 김선호는 표정과 눈빛만으로도 '광기의 추격자'를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느릿느릿 여유가 가득한 얼굴 속 미소는 의중을 알 수 없어 더욱 미스터리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낸다. 극 내내 '도대체 정체가 뭐야?'라는 궁금증을 이끌며 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적재적소에 치고 들어오는 위트도 빼놓을 수 없다. 김선호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특유의 능글미가 대폭발한다. 적들을 다 쓸어버리는 광기를 보여주다가 다친 다리가 아프다며 칭얼거리며 울상을 짓고, 예상치 못한 상대의 반응과 결과에 당황해하는 등 귀공자의 반전 매력은 김선호의 폭넓고 유연한 연기력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무려 198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귀공자' 주연으로 발탁된 강태주는 '마녀' 시리즈 김다미, 신시아를 잇는 대형 신예답게 김선호, 김강우 등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엄청난 훈련량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복싱 실력과 탄탄한 근육, 끝없이 내달릴 수 있는 체력 등은 그가 마르코 역을 위해 얼마나 열정을 불태웠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유창한 영어 실력과 신인답지 않게 묵직한 감정 연기 역시 일품이다.
김선호가 최강 빌런이라 칭한 김강우의 한이사도 '귀공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캐릭터다. 이글거리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상대를 제압하는 김강우의 카리스마와 무자비하면서도 가장 솔직한 한이사가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낸다.
다만 스토리는 아쉽다. '프로'라고는 하지만 귀공자가 어떻게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 '깜짝' 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보니 개연성에서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또 후반 밝혀지는 추격의 이유도 식상하고 진부하다. 그럼에도 추격 액션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끝까지 긴장감과 재미를 끌고 가는 구성과 영민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나는 '귀공자'다.
6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118분. 청소년 관람불가. 쿠키영상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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